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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30년 전 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어 위기를 모면한 주부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당시의 시대상에 비추어 놀랄 일은 아니지만, 성폭행 피해자는 오히려 과잉방위로 기소되고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다행히 항소심에서 뒤집혔고 대법원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었다. 여성의 성과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된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이 영화는 성폭력 피해자를 당해도 싼 부도덕한 여자로 몰아세우고 여성의 인권보다 혀 잘린 성폭행범 청년의 구만리 같은 앞길을 걱정해 주는 등 한국 사회의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당시 피해자의 마지막 대사는 현재의 성범죄 피해자를 그대로 대변한다. “재판장님, 만일 또다시 이런 사건이 제게 닥친다면 순순히 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여자들에게 말하겠습니다. 반항하는 것은 안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안된다고, 재판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고 말입니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성범죄 피해자에게 수사와 재판의 관문은 여전히 높다. 수사과정과 언론을 통해 2차 피해까지 더해져 고소를 꺼리게 하고, 이를 악용한 가해는 늘어만 간다. 성폭력을 폭행·협박을 동원한 강간으로 한정하고, 그것도 항거할 수 없을 정도의 폭행·협박이었는지 법정에서 따지다 보니 피해자의 의사는 사라지고 가해자는 처벌에서 벗어날 무기를 쥐게 된다. 강간 중심의 성범죄는 디지털 성범죄를 그저 포르노나 음란물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게 했다. 성차별, 성희롱, 성폭력이 뉴스거리가 아닌 날이 없다. 권력형 성범죄에 맞서는 힘겨운 미투는 끊이질 않는다. 기성세대는 오프라인에서 젊은 세대는 온라인에서, 그 방법과 공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땜질식으로 틈을 메워보지만 이에 호응하지 못하는 실무는 성범죄의 변형·진화를 방기하고 있다.
이번에도 강한 처벌법 개정이다. n번방 재발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넘었다. 형법과 성폭력처벌법,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불법 성적 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한 자도 처벌된다. 자신이 직접 촬영한 영상물이라도 다른 사람이 본인 의사에 반해 유포하면 처벌한다. 불법 영상물 촬영·제작에 대한 법정형을 대폭 상향했다. 미성년자 의제강간 나이를 만 13세에서 16세로 높이는 형법 개정도 이루어졌다. 디지털 성범죄와 범죄수익 간 입증책임을 완화해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도록 했다.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에는 성매매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을 ‘피해자’로 명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총선 국면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자 국회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인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도 인신매매형 성착취라 부를 정도의 중범죄임을 일깨워줬다. 물론 온라인사업자 의무 강화나 스토킹 처벌 개정안, 비동의간음죄와 같은 성형법 강화 등 갈 길 먼 입법도 있지만 첫 단추가 끼워졌다.
이제는 법적용이다.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인식이 n번방 재발방지법에 맞추어 변해야 한다. 수사관이 가해자의 대변인처럼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고, 어쩔 수 없는 합의가 감경 요소로 작동하는 재판 관행을 탈피해야 한다. 강한 처벌법으로 개정했으니 강한 법으로 살아있게 만들어야 한다. 법에 안 걸린다고, 걸려봐야 다 빠져나간다고, 처벌이라곤 솜방망이라는 경험은 쉽게 퍼지게 마련이다. 수많은 범죄자 가운데 몇 명만 걸려들어 일벌백계한다고 법이 살아있음이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집행결손이 생기면 오히려 법은 무기력해진다. 그저 법전에 존재하는 상징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긴 호흡으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줄이는 일이다. 가해자 처벌에 그치면 범죄자 개인의 규범 위반으로 치환되고 국가의 책임은 축소·은폐된다. 디지털 성범죄의 원인은 전방위지만 그 근원이 어디인지는 다 안다. 누구나 지적하지만, 누구도 듣지 않을 뿐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경쟁과 생존의 세계다. 가족, 이웃, 친구 등 다른 사람과 교감하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하거나 그런 경험이 없는 성장 과정이 원인이다. 그 세계에서 밀려나 소중한 존재로 대우받지 못하면 자신보다 약한 자를 찾아 우월감을 보이고 싶다. 상대적 약자인 여성, 아동·청소년이 그 대상이다. 디지털세계에서는 현실세계의 약자도 익명성으로 강자가 될 수 있다. 차곡차곡 쌓인 분노와 열등감을 디지털세상에서 인정 욕망, 극단적 여성비하와 혐오로 해소하려 한다. 그래서 사회문제이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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