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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은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남에게 빌붙어 사는 삶이다. 공생처럼 보이지만 다른 생물의 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얹혀살이 관계다. 우리는 남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는 사람에게 ‘기생충 같은 놈’ ‘빈대 붙지 말라’고 힐난한다. 자립할 의지도 생각도 없는 것이라면 어디든 기생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일 수 있다. 독자적인 노선도 정책도 없고, 선거 공약도 없이 다른 정당 것을 그대로 복사해서 활용하면 기생충과 다를 바 없다. 기생정당이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관계가 그렇다. 전자가 숙주요, 후자가 기생생물이다. 기생의 티는 강령과 당헌에 그대로 드러난다. 비례대표 의석 확보용으로 급조한 정당이라 강령은 대여섯 줄에 불과하고 당헌에는 목적 조항도 빠져 있다. 한 줄짜리 비전과 몇 줄의 강령으로는 당의 이념과 비전, 정강정책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미래통합당이 숙주이기 때문에 굳이 애써서 내용을 채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가짜정당이라는 논란에도 법정 요건이라는 형식은 갖추었으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성립했다. 아무리 정당 설립이 자유라지만 독자성도 없고 숙주에 빌붙어 시한부 인생을 사는 기생정당이 민주주의국가에서 버젓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정당정치의 오점이다. 비례대표 배분용 정당투표는 정당의 정책과 선거공약이 있어야 가능한데, 미래한국당은 비례후보 명단만 있을 뿐 아무것도 내놓지 않을 것이다. 당명에 붙여진 미래라는 장밋빛 수식어가 무색하게 미래는 없다. 총선 후에는 숙주에 포식되어 사라질 몸이다. 

기생정당의 설립주체는 미래통합당이다. 범여권 주도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때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위성정당 설립의 꼼수로 제도의 취지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던 세력이다. 어느 법학교수가 지적한 알바니아의 역사적 경험을 경고와 교훈으로 새겨듣지 않고 묘수라며 덥석 그 길을 택했다. 제도의 결점을 파고들어 범여권 ‘4+1’의 잘못을 입증하겠다는 전략이란다. 악법에 대한 불복종이자 정당행위라고 강변한다. 불법 선거법 개악에 대한 정당한 응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수준을 위성정당이 난립했던 알바니아 수준으로 전락시킨 장본인이 바로 이를 경고한 당사자들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후진적인 것이 아니다. 위성정당 창당으로 도입취지를 무너뜨리려는 그들의 꼼수가 문제다. 준연동형 비례제의 빈틈을 파고든 위헌적이고 탈법적인 기생정당의 출현은 의석 챙기기에 몰두한 자들이 만들어낸 정치후진성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성공한 뉴질랜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면 스스로 구린 구석이 있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이제 대한민국도 정치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없는 국가에 비교되는 정치흑역사를 남기게 되었다. 앞으로 알바니아와 함께 후진정치의 예시로 회자될 것이다. 탈당과 합당, 정치적 이합집산이 선거철 풍경인데 이에 더해 시한부 정당까지 창당하는 후지디 후진 정치생태계는 변함이 없다.  

미래한국당 대표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 더불어민주당도 꼼수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미래통합당과 그 기생정당의 위력을 간파한 여당과 진보시민사회가 분주하다. 비례용 위성정당 창당으로 맞불을 놓을 것인지, 범진보세력의 ‘선거연합정당’으로 대응할 것인지 논란 중이다.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제1당 고수에 대한 조바심과 원칙론의 팽팽한 대립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전 당원 투표로 정하기로 했다. 이에 반해 정의당은 어떤 경우라도 ‘비례용 선거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반칙에 반칙으로 맞서는 저열한 수를 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집권여당의 움직임에 대한 미래통합당의 격한 비난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이번주가 고비다. 만일 집권여당이 비례대표용 정당창당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비난의 화살은 몇 배가 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의 취지를 몰각시키는 비민주적 정치행위이자, 야당이 기생정당을 급조할 때 고발까지 했던 터라 ‘내로남불’이라는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비난은 잠깐이라며 몇 석 더 얻어 제1당이 되려는 현실론은 소탐대실이다. 의심스러울 때는 편법과 꼼수가 아니라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정치개혁을 위해 손잡은 ‘4+1’ 협의체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떠올려야 할 시간이다. 정치는 게임도 아니고 수학, 공학도 아니다. 공동체를 살리려는 노력이라는 미국 사회운동가의 말이 와 닿는다. 계산기 두드리며 꼼수를 찾을 시간에 정책과 공약을 가다듬어 정책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게 대의민주주의를 지키고 공동체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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