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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 | 동양고고학연구소장


 

최근 중국의 국가문물국은 자국의 역대 장성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장성의 총길이가 2만1196㎞라고 발표했다. 이들 장성이 서쪽으로 신장위구르자치구로부터 동쪽으로 헤이룽장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15개 성과 시, 자치구에 걸쳐 있으며 장성 관련 유적 4만3721개소를 조사했다고 한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중국 동북지방의 랴오닝성과 지린성 그리고 헤이룽장성의 장성이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고대사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으로 고조선시대부터 부여, 고구려, 발해시대까지 우리 민족이 활동하던 지역이다.



만리장성(경향신문DB)



 중국은 2009년 9월에는 압록강 북안에 있는 랴오닝성 단둥시 후산의 고구려 박작성(泊작城)을 명나라 때의 후산장성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랴오닝성의 일부 학자들이 1990년대부터 후산에 있는 산성 일부를 확인하고 이를 명나라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동단기점(東端起点)이라고 주장하며 허베이성 산하이관의 만리장성처럼 복제해 놓았다. 그러나 현지를 답사한 필자는 후산의 북단에서 성곽이 북쪽으로 이어지는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중국은 또 2009년 12월 지린성 퉁화시(通化市)에서 한나라 때의 만리장성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듬해 4월 난타이즈성(南台子城)과 지바이쑹산성(赤柏松山城)을 답사하고 이 지역 학자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이들 성이 부여성일 것으로 추정했다.


지린성 난타이즈성이 한대 장성유적이라고 알려지기 이전까지는 랴오닝성 신빈현(新賓縣) 왕칭먼(旺淸門) 고성(古城)을 한대 장성의 동단기점이라고 했다. 이 성과 같은 시기의 신빈현 융링진(永陵鎭) 남성(南城)에서 출토된 유물이 부여 유물과 매우 유사한 점으로 보아 이 성은 부여성일 가능성이 많다. 성과 성 사이를 연결하는 성벽이 존재하지 않는, 주민이 거주하는 거성(居城) 또는 전시용인 술성(戌城)과 같이 독립된 성이기 때문에 장성(長城)으로 볼 수 없다. 지린성 내에서는 퉁화지구의 한대 장성 외에 옌볜(延邊) 룽징시(龍井市) 외곽의 ‘옌볜볜장(延邊邊墻)’을 중국 학자들도 발해 중경(中京)을 에워싼 발해의 성곽으로 보는가 하면 금(金)나라 혹은 동하(東夏) 시기의 방어시설로 보고 있는데, 이를 장성으로 집계했을 수 있다. 이번엔 헤이룽장성까지 중국의 장성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발해시기의 성을 일컫든가 아니면 금나라의 장성을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중국 동북3성의 장성유적은 모두 중국 중화족(中華族)과는 거리가 먼 동이족(東夷族)의 것이다. 


중국 정부가 장성유적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것은 여러 민족이 여러 대에 걸쳐 내려온 역사유적을 중국의 역사로 통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중국 동북3성이 고조선시기에 우리 민족이 활동하던 지역이었으며 또한 부여시기와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기 때문에 이들 지역의 장성을 한낱 보호 차원을 넘어 중국의 장성으로 편입하는 등 다른 의도가 있다면 동북아 역사상 크게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지난 수년 동안 우리 고대사를 무리하게 중국 역사로 편입해 서술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때그때 대응하는 소극적인 대처보다는 적극적이고 항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고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국 동북3성의 고대사 연구를 위해서는 만리장성이나 이 지역의 자료조사 수집 및 연구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학술교류가 절실하다. 중국은 모든 학술활동이 국가 주도와 지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반면 우리는 개인 차원의 연구가 대부분이어서 중국의 학문적 성과를 따라갈 수 없다. 중국 역사와 우리 문화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개인에게도 정부의 폭넓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조속히 중국 장성연구에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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