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 시민혁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혁명은 체제(시스템)의 교체를 의미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결의안이 통과되었지만, 아직 탄핵이 된 것도 아니고 박근혜·최순실을 만든 시스템도 여전히 그대로다. 그래서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너무 빠르다. 아직은 혁명이 아니다. 물론 탄핵소추가 성사된 것은 시민의 승리이다. 그러나 지금의 승리는 견고하지 못하다.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시스템의 교체는커녕 정권교체도 이루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1987년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87년 6월 100만명이 거리에서 최루탄과 맞서서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외쳤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겠다는 6·29선언이 나온 후에 상황이 급반전했다. 여당과 야당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8인회의’라는..
존경하는 동료시민 여러분. 이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가 어떤 추악함을 품고 있는지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는 4%라는 기록적인 대통령 지지율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사람들이 청와대를 에워싸고도, 광화문과 종로거리에 여전히 엄청난 인파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거리는 여전히 깨끗했고, 불타거나 깨지는 것 하나 없이 질서정연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광장의 질서가 어떤 두려움들을 깔고 있다고 느낍니다. 폭력과 희생자는 없을수록 좋고, 누구에게나 안전한 광장이 되자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일까요? 이미 권위를 상실한 대통령일까요? 차벽 뒤의 경찰일까요? 아니면 선진국의 언론일까요..
촛불이 헌법이다. 유사 이래 최대의 집회로 기억될 민중총궐기에서 우리는 100만개의 촛불과 100만개의 헌법전을 목도한다. 그것은 저항권이라는 고루한 법용어에 그치지 않는다. 침탈당한 주권을 되찾기 위한 항의의 수준을 넘어 그 주권이 담아내어야 할 내일의 세상을 도모하는 우리 모두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한 외신이 ‘공동통치’(mitregieren)라 이름하였다는 대통령과 그 일행의 막장 스캔들은 문제의 시작일 뿐이다. 암종의 뿌리는 청와대와 고위공무원과 정치권과 검찰과 언론과 재벌, 심지어 학계에까지 펼쳐진 이 땅의 모든 권력에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향해 공모하고 담합하여 비선조직으로 국정을 농단하며 세상을 우롱하였다. 샤머니즘이나 말타기와 같은 ‘창조’적 문화는 그로 인한 구정..
2016년 11월12일은 시민혁명의 날이었다. 서울 도심을 밝힌 100만 평화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퇴진이 시민의 명령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이게 나라냐”는 분노를 넘어 “이게 민심이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3차 주말 촛불집회는 규모로도, 내용으로도 역사에 남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가족이나 연인, 중고생 등 참가자 범위가 넓어졌고 시위는 축제를 방불케 했다. 박 대통령의 출신 고교인 성심여고 학생들은 무대에 올라 “선배님 같은 후배가 되지 않겠다”고 했다. 시민들은 나뒹구는 쓰레기를 줍고 길바닥에 떨어진 촛농까지도 휴대전화 손전등을 비추며 긁어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재외 교포들도 같은 시간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많은 참가자들이 “집회..
광화문에 시민들이 모이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약 20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1987년 6월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박근혜의 국민이었다는 사실에 치를 떤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숨이 멎을 것 같다고도 한다. 유체이탈 화법과 기만의 언어, 봉건적 권위와 여제적 행태로 채워진 ‘박근혜의 시간’은 국민에게는 자학의 시간이었다. 박근혜의 오만과 기만과 불법과 무능은 ‘우리가 도대체 지난 대선에서 무슨 짓을 한 건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가슴속 깊이 파인 상처를 자학으로 가리고 있었다. 자학이 분노의 경계를 넘지 못한 것은 권력과 언론의 굳건한 ‘협업’ 탓이었다. 굳건한 협력의 빗장을 풀고 은폐의 육중한 문짝을 열어젖힌 것은 흥미롭게도 보수권력이 자신의 입으로 삼고자 했던 종편방송이..
광화문광장, 세월호를 기억하며 모인 시민들의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유민 아빠 김영오님은 단식 40일째 되던 지난 금요일 병원으로 이송되었지요. 병원에서도 단식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유민 아빠가 머물던 천막의 빈자리를 보면 가슴 한쪽에 아련한 슬픔이 밀려오지만, 요즘 광화문광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더 많은 시민들께서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루 단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시민들, 벌써 여러 날째 단식을 이어가면서 광장을 떠나지 않는 시민들도 있고, 잠시이지만 시간을 내어 지지방문으로 성원을 보태주는 분들도 많지요. 보태는 방식은 서로 달라도, 그 마음은 하나일 것입니다. 특별법을 제정하여 성역 없이 철저하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자는 것, 그리하여 앞으로 우리 사회가 다시는 그와 같은 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