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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시민들이 모이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약 20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1987년 6월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박근혜의 국민이었다는 사실에 치를 떤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숨이 멎을 것 같다고도 한다.       

유체이탈 화법과 기만의 언어, 봉건적 권위와 여제적 행태로 채워진 ‘박근혜의 시간’은 국민에게는 자학의 시간이었다. 박근혜의 오만과 기만과 불법과 무능은 ‘우리가 도대체 지난 대선에서 무슨 짓을 한 건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가슴속 깊이 파인 상처를 자학으로 가리고 있었다. 자학이 분노의 경계를 넘지 못한 것은 권력과 언론의 굳건한 ‘협업’ 탓이었다.

굳건한 협력의 빗장을 풀고 은폐의 육중한 문짝을 열어젖힌 것은 흥미롭게도 보수권력이 자신의 입으로 삼고자 했던 종편방송이었다. JTBC가 확보한 최순실의 태블릿PC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박근혜의 시간은 최순실의 시간으로 확인되었다. 드디어 시민의 자학은 거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등에 배반의 칼 하나씩 꽂힌 채 망연자실한 시민들에게 대통령은 마음 없는 성명서를 독백처럼 읊조리고 들어갔다. 총리를 일방적으로 지명하고, 국회의장실의 카펫을 패션쇼의 런웨이 걷듯 휘돌아 나왔다.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아주 오래된 기만, 아주 익숙한 대통령의 오만을 다시 떠올리며 이제 시민들은 거대한 저항행동에 돌입했다. 2016년의 시민항쟁이 시작되었다. 모든 역사적인 저항행동이 그렇듯 시민항쟁은 불만이 누적된 결과다. 불만의 직접적 계기가 무엇이든 시민항쟁의 근저에는 피폐한 경제와 고단한 시민의 삶이 있다. 청년의 미래를 닫아 버리는 수저계급론과 헬조선의 현실, 심각한 양극화와 불평등, 줄어드는 소득과 늘어나는 부채, 노동계를 압박하는 재벌·대기업 친화정책, 모든 세대가 불안을 벗을 수 없는 현실 등이 저항의 심층에 시퍼렇게 자리 잡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에 대한 시민의 분노와 저항의 뿌리는 그만큼 깊다.

지난 주말부터 대규모 저항의 물꼬를 튼 시민의 물결에서는 냉철한 이성적 분노가 감지된다. 광장의 시민들은 질서 있는 ‘이성적 군중’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위군중의 표정이 밝다.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군중이 아니다. 배신의 칼을 맞은 시민의 표정이 왜 이토록 밝은가? 오랜 자학의 시간에서 벗어난 ‘해방감’ 때문일 수 있다. 독재자의 딸을 선택한 자학과 세월호, 메르스, 경주 지진으로 이어지면서 누적된 불안의 원천이 온전히 드러나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는 듯하다. 덧붙일 수 있는 설명 하나는 ‘자신감’이다. 성공에 대한 확신과 승기를 잡았다는 자신감이 그것이다. 5%로 곤두박질친 대통령 지지율과 보수언론의 변화를 보며 광장의 시민들은 끊임없이 “더 모여야 된다”고 서로를 독려한다.

2016년 항쟁의 시민들에게 인지된 기회구조가 자신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저항행동에서는 주어진 기회구조를 운동주체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정부의 통제역량에 대한 인지가 중요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조직과 동원의 역량에 대한 인지 또한 중요하다. 말하자면 광장에 모인 군중의 밝은 표정에는 적을 알고 나를 안다는 냉철한 이성이 담겨 있고, 이제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 그래서 2016년의 시민항쟁은 어느 때보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거대한 군중의 냉철한 이성과 고도의 집단지성이 비추는 렌즈 앞에선 어떤 것도 숨길 수 없고, 어떤 것도 피해갈 수 없다. 국민을 배반한 권력의 마지막 꼼수도, 정치권의 주판알 튕기기도, 궤변의 책임논리나 돌발적 소영웅주의도 시민의 눈을 속일 수 없다.

박근혜의 모래시계에서 마지막 모래알이 흘러내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직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국정공백, 헌정중단보다 더 큰 재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그래서 민심과 공감하는 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민들은 국정의 정상화를 기대하며 그 역할을 야당이 떠안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야당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사로운’ 정치에서 시작된 위기이기 때문에 사사로운 잇속을 노리는 정치는 이 국면에서 가장 예리하게 포착될 것이다. 야 3당은 오로지 시민의 뜻에 따라 국정을 정상화하는 길을 올곧게 선택해야 한다.

경제 위기와 트럼프의 미국 대선 당선은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급박한 현실을 자신이 물러나지 않아야 할 이유로 들이대는 것은 반상식과 비정상의 절정이라는 것을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이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나쁠 순 없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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