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의 대학입학시험은 학력고사였다. 선 지원이었고, 전기, 후기, 전문대 각각 따로 원서를 쓰고, 따로 시험을 봐야 했다. 전기대 입시는 지원한 대학교에서 있었다. 택시 운전을 하는 아버지가 택시로 교문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긴장을 하면 소화가 안되니 먹을 것 같지도 않았다. 점심시간에 나를 받아줄지 거절할지 알 수 없는 교정에 앉아 같이 시험을 보는 친구가 나눠주는 초콜릿 한 조각을 점심 대신 먹었다. 예외 없이 입시한파가 몰아친 날이었을 텐데, 거짓말처럼 환하던 햇빛만 기억난다. 시험이 끝나고 터벅터벅 교문을 걸어 나가는데, 익숙한 얼굴이 웃으면서 나를 불렀다. 아버지였다. 만나자는 약속도, 기다리겠다는 약속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곳에서 우연처럼 만났다. 그 많..
오늘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대학 입시의 공정성과 엄밀성은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입시에서는 단 한 명이라도 불이익을 받거나, 특혜가 주어져서는 안된다. 수능 문제는 전 영역에서 한 점 흠결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 수험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혼란이 크고 입시 공정성이 훼손된 상황에서 시험을 치르게 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 딸의 이화여대 입시부정에 수험생들은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학은 실세의 딸을 위해 입시요강을 바꾸고, 면접 점수를 조작했다. 특혜는 입학 이후에도 계속됐다. 교수들은 일개 학생에게 상상할 수 없는 편의를 제공했다. 중학생 수준도 안되는 비문 투성이 리포트에 높은 점수를 주고 수강신청을 대신 해줬다. 그런데도 당사자는 부끄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길 기대하는 것은 고3 수험생뿐만이 아니다. ‘수험표 할인’을 통한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는 성형외과들도 수능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최근에는 성형외과에서 제공하는 수험생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응시료를 내고 시험장에는 가지 않는 ‘수능 성형 체리피커’들도 있다. 수험생처럼 당락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정치인도 성형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제 끝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패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지난해 4월 유튜브를 통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유권자들의 입길에 올랐다. 깊이 파인 주름살과 늙은 외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클린턴의 선거전략이었다. 2008년 대선 도전 당시 까칠하고 매몰찬 이미지가 패인 중 하나였다는 분석에 따라 이번엔 보..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를 지금의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어제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큰 방향은 이미 잡혀 있고 마지막 단계로 더 논의해 발표하는 수순만 남은 듯하다. 2017년이나 2018년 도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고, 그 전에라도 수험생들이 받아들이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연착륙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게 황 장관의 말이다.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은 수험생의 과도한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 경감 차원에서 올해 들어 유력하게 논의됐던 사안이다. 영역별로 석차를 매겨 9등급으로 나누는 현행 상대평가는 학생을 서열화시키고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제도인 것은 분명하다. 1등급(4%)을 변별하기 위해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