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 헤이더라는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있다. 만 24세. 한 이닝당 거의 두 개의 삼진을 뽑아내는 무시무시한 구원투수다. 지난 7월17일, 일생의 꿈이 이루어지던 올스타 게임 당일, 헤이더는 경기를 마친 후 첫 올스타 게임 출전 소감이나 그날의 경기 성적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인종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주의, 여성 혐오주의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가 17세 때 트위터에 썼던 글들이 엄청난 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흑인과 게이를 비하하고 조롱하고 증오하는 내용들이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투수 션 뉴컴도 올해 깜짝 스타로 떠오른 2년차 신예이다. 지난 7월29일 다저스와의 경기에서는 9회 투아웃까지 단 한 개의 안타도 맞지 않는 완벽한 투구로 각광 받았다. 하지만 바로 그날,..
요 근래 정치권의 동성애 호들갑을 보노라니 좀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다. 마치 오랫동안 외항선이라도 타다 내린 것 같다. 언제부터 동성애 문제가 고위 공직자의 역량과 자질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됐나 싶어서다.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라고 거칠게 다그치는 국회의원, 곤혹스러운 표정의 대법원장 후보자,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에 등장한 황당무계한 ‘후미에’(17세기 일본 에도막부가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을 국민들. 이미 후미에의 피해자도 나왔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졸지에 ‘동성애 옹호자’로 몰렸다. 군형법의 ‘군대 내 동성애 처벌’ 규정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위헌 의견을 냈던 것이 동성애 찬성으로 ‘둔갑’한 것이다. 모호한 법으로 피해 보는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지난 25일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동성애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반대한다”며 “합법화를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론 말미에 문 후보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이 무색할 정도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동성애는 찬반 사안이 아니다. 이성애를 놓고 찬반을 따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권 선진국가라면 문 후보의 동성애 반대 발언은 혐오 표현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만에 하나라도 문 후보가 사회의 다수인 이성애자의 표를 얻기 위해 성소수자를 폄훼했다면 민주주의 사회의 지도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 후보가 동성애와 동성혼을..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암호체계를 해독해 1400만명의 목숨을 구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말해지는 앨런 튜링의 생애를 영화화한 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앞부분은 천재 수학자가 에니그마라는 강력한 암호체계를 푸는 장면이다. 독일군의 공습이 행해지는 영국 런던에서 수학자, 논리학자, 암호학자들이 모여 적국의 암호를 풀어나가는 장면은 박진감이 넘친다. 그러나 암호를 풀고 전쟁이 끝난 후의 앨런 튜링의 운명은 너무나도 쓸쓸하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1952년 남자 매춘부에게 성매매를 하려다가 체포돼 당시 영국에서는 범죄였던 동성애 혐의로 화학적 거세를 당할 것인지, 형을 살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는 화학적 거세를 선택하고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다가 1954년 청산가리가 들어있는 사과를 먹..
오는 12월10일 ‘세계인권의 날’에 서울시가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선포할 예정이다. 하지만 “서울 시민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인권을 직접 만든다”는 헌장 제정 취지가 성소수자 혐오 앞에서 무색해질 위기에 있다. 150명의 시민위원들이 마련한 인권헌장 초안은 9월, 10월 두 차례 권역별 토론회를 통해 일반 시민에게도 공개됐다. 이 토론회에 일부 개신교, 보수 단체 회원이 대거 참석했는데 인권헌장의 차별금지 사유 중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에이즈 감염에 대한 편견과 공포를 조장하면서 성소수자를 혐오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인권헌장이 없는 게 낫다는 식의 발언들을 쏟아냈다. 성소수자 인권보호를 논하는 자리면 어김없이 재현되는 이런 난동은 성소수자 ..
가톨릭교회가 전통적으로 금기시해온 동성애·이혼·혼전 동거에 대해 포용하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가정 문제를 다루기 위해 바티칸에서 소집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는 “교회가 동성애자와 이혼자, 결혼하지 않은 커플은 물론 이들의 아이들도 환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중간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이 보고서에 가톨릭이 그동안 죄악시해온 동성애를 종교적으로 인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은 실로 놀랍고 뜻깊은 변화다. 가톨릭은 남녀 간의 결혼만 인정하는 성경 교리에 따라 지난 2000년 동안 동성애를 ‘내재적인 장애’로 여기며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혼과 동거도 금기시했다. 하지만 그간 가톨릭이 교리주의에 갇혀 동성애·이혼·동거가 늘어나는 세상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현실과 교리의 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