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가톨릭교회가 전통적으로 금기시해온 동성애·이혼·혼전 동거에 대해 포용하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가정 문제를 다루기 위해 바티칸에서 소집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는 “교회가 동성애자와 이혼자, 결혼하지 않은 커플은 물론 이들의 아이들도 환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중간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이 보고서에 가톨릭이 그동안 죄악시해온 동성애를 종교적으로 인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은 실로 놀랍고 뜻깊은 변화다.

가톨릭은 남녀 간의 결혼만 인정하는 성경 교리에 따라 지난 2000년 동안 동성애를 ‘내재적인 장애’로 여기며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혼과 동거도 금기시했다. 하지만 그간 가톨릭이 교리주의에 갇혀 동성애·이혼·동거가 늘어나는 세상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현실과 교리의 괴리가 가톨릭 쇠퇴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따라서 이번 시노트 보고서는 달라진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혁명적 전환’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이혼.동성애.미혼모 등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들 (출처 : 경향DB)


이번 회의에서도 개혁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한다. 교황은 취임 후 일관되게 ‘상처받은 가족들’을 언급했다. 그가 지난해 9월 “만약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이고 그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면 누가 그를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은 동성애에 대한 교황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이번 보고서가 곧장 가톨릭 교리의 변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종 결론까지는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한다. 보수적인 주교들이 반발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신(神)의 대리자급 권위를 가진 교황의 뜻이 세계 가톨릭교회의 지침이 될 것은 확실해보인다.

가톨릭계의 이런 변화는 동성애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체계의 변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이제 우리가 가톨릭의 이런 변화를 한국의 ‘상처받은 가족들’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때다. 우리 사회처럼 동성애자, 이혼자, 미혼모 등에 대한 차별이 심한 곳도 드물다. 성적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한국 가톨릭이 동성애자나 다른 소수집단의 법적·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에 앞장섰으면 한다. 예컨대 국회에서 계속 미뤄지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가톨릭의 역사적인 동성애·이혼·동거 포용의 뜻이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전해져 소수자에 대한 종교적·법적·제도적 차별을 없애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