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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헤이더라는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있다. 만 24세. 한 이닝당 거의 두 개의 삼진을 뽑아내는 무시무시한 구원투수다. 지난 7월17일, 일생의 꿈이 이루어지던 올스타 게임 당일, 헤이더는 경기를 마친 후 첫 올스타 게임 출전 소감이나 그날의 경기 성적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인종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주의, 여성 혐오주의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가 17세 때 트위터에 썼던 글들이 엄청난 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흑인과 게이를 비하하고 조롱하고 증오하는 내용들이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투수 션 뉴컴도 올해 깜짝 스타로 떠오른 2년차 신예이다. 지난 7월29일 다저스와의 경기에서는 9회 투아웃까지 단 한 개의 안타도 맞지 않는 완벽한 투구로 각광 받았다. 하지만 바로 그날, 7, 8년 전 그가 쓴 트위터가 유포되었다. 인종차별적이고 동성애 혐오적 단어들(nigga, faggot)이 섞여 있었다. 뉴컴은 인생 최고의 경기를 한 후 한 시간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트레이 터너는 2016년 신인왕 투표에서 2등을 한 24세의 엘리트 유격수다. 올해도 인상적인 활약을 하며 올스타 최종 예비후보로까지 뽑혔다. 그 역시 과거 흑인과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글을 쓴 기록이 드러났다. 대학 신입생 때의 일이다.

세 선수 모두 팬과 동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뉴컴은 “깊이 사과한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터너는 “모욕적인 단어와 나의 둔감함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진정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소속 구단들도 별도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 세 명에게 인종·젠더 감수성 훈련을 받도록 명령했다. 사무국의 ‘사회적 책임과 통합’ 분야 부사장인 빌리 빈(유명한 <머니볼>의 저자 빌리 빈과는 다른 사람이다)이 훈련의 책임을 맡았다. 그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다.

태평양 건너의 세 야구선수가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던 거의 같은 시간, 우리나라의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지칭하면서 “성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자”가 ‘군 개혁’을 이야기한다며 비난했다. “화장을 많이 한 모습”이라고도 했다. 날이 바뀐 후에도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했고, 같은 당의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이를 “원내대표의 소신 발언”이라고 두둔했다. 당 대변인은 “(임 소장이) 자신의 ‘민감한’ 부분이 꼬집힌 데 대해” 반발하는 것이라는 조롱 같은 논평을 발표했다.

자신의 한때 실언을 진심으로 사과한 20대 중반의 야구선수에게 ‘감수성 훈련’을 권유하는 것이 적절한 대처라면, 자신의 발언이 무슨 잘못인지도 모르는 60대의 공당 대표나 미국 같으면 범죄로 간주될 수 있는 발언을 ‘소신’이라 부르는 교수 출신 비대위원장에게는 어떤 조치가 적절할까. 김성태 원내대표의 홈페이지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가슴에 품고 처절한 진정성으로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써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역구에 장애학생 특수학교 신설이 추진되자 이 부지에는 국립한방의료원을 설립해야 한다며 교육청과 각을 세워 장애아 학부모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방송토론회에서 최순실씨를 가리켜 태연하게 ‘미천한 여성’이라는 표현을 쓴 적도 있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약자’는 누구인가? 그에게 젠더·인종 감수성은 무슨 의미인가?

최근의 메이저리그 사태에 대해, 스포츠평론가 댄 클라크는 “이제 ‘문화’에 대해 질문할 때다. 이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모두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이런 시각을 갖고 있던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우리도 질문해야 한다. 자면서도 약자를 위한다는 말을 할 것 같은 정치인들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동성애자를 향해, 여성을 향해, 혹은 장애인이나 노인이나 이주민을 향해 뻔뻔스러운 혐오발언을 하는 ‘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가 자신에게 인종차별적인 제스처를 취했던 율리 구리엘에 대해 (격한 비난을 참으면서) 이 사건이 그저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길 원한다”고 밝혀 찬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정곡을 찌른 것은 NBC 뉴스의 빌 베어 기자의 글이었다. “다르빗슈의 대응은 우아하고 품위 있었지만, 모든 혐오의 피해자들이 그처럼 주위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진 않다. 만약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가 화내면 왜 다르빗슈처럼 관대하지 않냐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분노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고, 특히 편협(한 혐오발언)에 대응하는 적절한 반응이다. 분노는 사회변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다르빗슈가 구리엘에게 했던 방식이었다면, 우리는 여성의 참정권이나 인종차별 철폐를 성취할 수 있었겠는가?”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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