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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암호체계를 해독해 1400만명의 목숨을 구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말해지는 앨런 튜링의 생애를 영화화한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앞부분은 천재 수학자가 에니그마라는 강력한 암호체계를 푸는 장면이다. 독일군의 공습이 행해지는 영국 런던에서 수학자, 논리학자, 암호학자들이 모여 적국의 암호를 풀어나가는 장면은 박진감이 넘친다.

그러나 암호를 풀고 전쟁이 끝난 후의 앨런 튜링의 운명은 너무나도 쓸쓸하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1952년 남자 매춘부에게 성매매를 하려다가 체포돼 당시 영국에서는 범죄였던 동성애 혐의로 화학적 거세를 당할 것인지, 형을 살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는 화학적 거세를 선택하고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다가 1954년 청산가리가 들어있는 사과를 먹고 자살한다. 동성애자라는 단 하나의 범죄(?)에 수학적 천재,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인공지능의 아버지라는 이름은 다 묻히고 만다.

우리는 영국의 유명한 동성애자를 또 하나 알고 있다. 바로 엘튼 존이다. 1947년 영국 미들섹스에서 태어난 그는 국가별 판매량 인증 합산에 따르면 무려 1억6000만장의 음반을 판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1990년대에 존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첫 남성 팝스타였으나 그로 인해 활동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1998년에는 음악과 자선활동의 공헌이 인정돼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2006년 영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자 지난해 오랫동안 동성애 파트너였던 데이비드 퍼니시와 결혼했다.

한 시절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하던 영국이 동성애 커플에게 이성 부부와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시민동반자법’을 제정했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에 대한 발언도 파격적이었다. 성경에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한 의지로 주님께 손을 내민다면 그걸 누가 심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동성애자를 소외시키지 말고 그들이 사회에 잘 통합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과학계에서는 동성애가 유전하는 것인지, 자신의 선택인지에 대해 논쟁이 뜨겁다. 2000년 베일리 등은 4901명의 호주 쌍둥이 연구를 통해 남자 일란성 쌍둥이의 20%, 여자 일란성 쌍둥이의 24%가 일치율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또한 2001년에 허시버거는 8개의 논문에 대한 메타분석을 통해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보다 훨씬 높은 동성애 일치율을 보여 유전적인 성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현재 학계 입장은 성적인 경향은 유전자, 호르몬, 사회적 환경에 의해 복합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뇨의 유전적 성향이 있더라도 사회적 환경에 의해 미국에서 태어나면 음식 섭취가 달라져 비만이 될 확률도 높아지고, 당뇨에 걸릴 확률도 더 높아지지만, 에티오피아에 태어난다면, 당뇨가 발현되지 않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게이 3명이 한커플로 태국서 3각 동성결혼 (출처 : 경향DB)


아직도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은 싸늘하다. 그러나 동성애를 범죄로 취급했던 영국이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하지 않는 것에서 벗어나 결혼까지 합법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것인가? 또 동성애를 범죄로 기록하고 있는 성경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지 않고, 포용적으로 받아들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가치는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고, 다양한 가치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성숙한 사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인류의 스승이라고 일컬어지는 소크라테스, 르네상스를 이끌어 간 위대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두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다. 이들은 위대한 인간이었으며, 인류에 기여했다. 동성애자들이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이들을 차별할 권리는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서홍관 | 국립암센터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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