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선언문 1조인 이 짧은 문장을 쓰면서 모든 사람이란 말을 반복해 되뇐다. ‘모든’에서 제외된 사람과 장소를 떠올린다. 인권을 거리와 농성장, 삶의 현장 곳곳에서 매일 외쳐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투, 청소년 참정권, 난민 혐오와 인종차별 반대,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반대,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 또 높은 굴뚝에 선 파인텍 노동자와 최근까지 청와대 앞에서 단식노숙했던 잡월드 노동자…. 인권을 말하기 위한, 지키기 위한 무수한 싸움은 칼바람 부는 12월에도 계속된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은 제정이 지연된 채 11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지난 11월엔 1심에서 2명의 피고인이 각각 10년과 8년을 선고받았..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독재라는 거대한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면서 각계각층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요란함을 걷어내고 보면 사람들은 삶을 되찾기 위해, 아니 더 정확하게는 삶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2000년대, 여전히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 위기는 설득으로부터 왔다. 거악이 희미해지고, 삶들이 분절되고, 격차는 커져갔지만 그 모든 것이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왜 아직도 세상을 바꿔야 하고, 왜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이때 동원되었던 방식은 문제들을 개인화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당신은 성소수자가 아..
지난 15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무지개색 깃발이 휘날리고 사람들이 몰렸다. 이 축제는 성소수자들로 분류되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의 인권을 알리기 위한 행사다. 올해로 18회째를 맞으면서 규모가 커지고 참가자들도 대폭 늘었다. 국가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참여했다. 성소수자에 냉담했던 불교계와 진보성향의 개신교 단체도 뜻을 같이했다. 미국·영국·호주 등 13개국 대사관과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 인권단체 등이 101개 부스를 마련해 동참했다. 이에 반대하는 종교단체의 ‘맞불 집회’도 열렸지만 퀴어문화축제는 많은 시민과 단체의 관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하지만 퀴어문화축제만으로 성소수자들의 권리가 보장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섣..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지난 25일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동성애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반대한다”며 “합법화를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론 말미에 문 후보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이 무색할 정도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동성애는 찬반 사안이 아니다. 이성애를 놓고 찬반을 따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권 선진국가라면 문 후보의 동성애 반대 발언은 혐오 표현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만에 하나라도 문 후보가 사회의 다수인 이성애자의 표를 얻기 위해 성소수자를 폄훼했다면 민주주의 사회의 지도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 후보가 동성애와 동성혼을..
사회적 약자들이 서로 돕는 활동을 하겠다는데 국가기관이 돕거나 보태기는커녕 외려 걸림돌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폭력과 혐오, 그리고 배제의 위험에 처해 있는 성소수자들을 위해 장학과 의료, 상담과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설립한 ‘비온뒤무지개재단’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성소수자들의 부모와 활동가들이 힘을 모아 이런 재단을 만들고 등록하려 하자 서울시와 국가가 돕기는커녕 1년이 넘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등록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와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법무부가 서로 자기 업무소관이 아니라고 난색을 표하며 다른 기관을 알아보라고 넘기거나 황당한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로 작년에 설립등록을 하러 갔을 때 서울시가 ‘미풍양속’을 근거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미풍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