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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무지개색 깃발이 휘날리고 사람들이 몰렸다. 이 축제는 성소수자들로 분류되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의 인권을 알리기 위한 행사다. 올해로 18회째를 맞으면서 규모가 커지고 참가자들도 대폭 늘었다. 국가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참여했다. 성소수자에 냉담했던 불교계와 진보성향의 개신교 단체도 뜻을 같이했다. 미국·영국·호주 등 13개국 대사관과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 인권단체 등이 101개 부스를 마련해 동참했다. 이에 반대하는 종교단체의 ‘맞불 집회’도 열렸지만 퀴어문화축제는 많은 시민과 단체의 관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13일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건물 외벽에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6색 무지개 깃발이 눈에 띈다. 대사관은 14∼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미 대사관 건물에 무지개 깃발이 걸린 것은 처음이다. 강윤중 기자

하지만 퀴어문화축제만으로 성소수자들의 권리가 보장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섣부르다. 한국보다 먼저 성소수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졌던 서구에서 동성애가 정신장애의 목록에서 사라진 것은 불과 30여년 전이다. 1950년대 미국 정신의학회는 동성애를 ‘사회병리학적 인격장애’의 하나로 취급했다. 서구에서도 성소수자들의 인권보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한국 상황은 그런 외국의 현실과 비교하더라도 너무 열악하다.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동성애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도 수년째 답보상태다. 동성애자 군인을 처벌하는 군형법(제92조의 6항)은 꿈쩍도 않고 있다. 이 문제로 30여명의 군인이 수사를 받고 있다. 대신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면 에이즈가 확산된다는 얼토당토않은 루머만 퍼지고 있다.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보호는 걸음마 수준이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통계조차 없다. 편견과 무관심 속에 성소수자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동성애자이든, 트랜스젠더이든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하나의 인격체로 살 수 있어야 한다. 혐오와 차별을 거두고, 소외자들을 우리의 가족으로 품는 사회가 돼야 한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도 당당한 동료시민임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별 없는 성숙한 시민사회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는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한국 사회, 지금부터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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