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료인·언론인·교수·회계사 등 전문직 여성들의 상당수가 직장에서 각종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5일 전문직 여성 10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올해 불붙은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은 현직 검사인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상급자의 성추행 사건에서 시작됐다.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성폭력이 전문직이자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검사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이번 조사결과는 이 같은 잘못된 성문화가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541명)이 ‘외모, 옷차림, 몸매 등을 성적으로 희롱·비하·평가받는 행위’를 직·간접적으로 당..
지난해 초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을 때 나는 희망을 품었다.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며 ‘이제는 여성들의 삶이 바뀌겠구나!’ 희망에 가슴이 벅찼다. 올해는 미투 운동으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망을 품은 여성들이 그동안 겪었던 차별과 폭력을 증언하며 사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여성혐오 사회에서 자신의 발화가 어떤 어려움과 파장을 가져올지 알면서도 여성들은 용기를 냈다. 변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 미래는 없으니까. 여성의 삶에도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여성들의 용기가 밑거름이 되어 변화를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정부는 신속하게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범정부협의체를 꾸리는 등 범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경..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가 진실의 햇빛 아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상처받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또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와 이어지며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견고한 장벽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 모든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관계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오랜 시간 동안 뿌리내렸던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인 권력구조가 가해자에게 압도적인 권력을 주었고,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침묵을 강요해왔다. 지금 드러나는 수많은 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된 가장 큰 이유다. 같은 이유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피해자가 여기에도 있다. 한국에 머무는 많은 이주여성이다. 얼마 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실시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12.4%가..
어느 대학으로부터 자문 요청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했기에 즉시 위원회를 소집해 성희롱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징계절차에 회부했단다. 그런데 징계절차 중 학내 근거 규정을 다시 살펴보니 이 사안이 과연 성희롱이 맞는지 반론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변호사 자문을 구했더니 법률상 성희롱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회신이 왔다고 했다. 성희롱으로 보이지만 성희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당혹스러운 의견은, 적어도 법리적으로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해당 대학의 규정에는 “이 지침에서 사용하는 ‘성희롱’이란 양성평등기본법 제3조 제2호에 따른 성희롱을 말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하에서..
모든 것이 그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것만 같다. 모두들 제각기 다른 생각과 입장, 각양각색의 고민들을 머리와 마음속에 가득 안고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우리 모두를 하나 되게 한 것은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타오르는 열망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또 다른 작은 목소리들을 그 거대한 포효 속에서 우리가 잠시 잊어버렸던 것도 사실이다. 기억하고 있는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단 내 성폭력’ ‘미술계 성폭력’ 등 온갖 분야에서의 이른바 ‘성폭력 피해 고발’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왔다는 것을. 비록 이제는 거의 모든 언론 지면을 송두리째 점령해 버린 그 사건에 묻혀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심지어 한 언론은 “최순실이 고마운 사람들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카드뉴스를 ..
고용노동부가 채용정보사이트 ‘워크넷’에 성차별적 면접 요령을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삭제했다. 지난 14일 오후까지 워크넷에 올라 있던 여성 구직자용 예상질문과 모범답안은 이런 것들이다. “성희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가벼운 말이라면 신경 쓰지 않겠고, 농담으로 받아칠 여유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장 내 성차별 해소에 앞장서야 할 주무 부처가 외려 성차별을 조장하는 격이니 개탄스럽다. 워크넷에 실려 있다 삭제된 예상문답은 황당하다. “커피나 복사 같은 잔심부름이 주어진다면?”이란 질문엔 “한 잔의 커피도 정성껏 타겠다. 사무실 청소도 할 수 있다”를 답변으로 제시했다. 결혼·출산에 대해 물으면, 결혼 후 퇴사를 전제로 하는 회사도 있으니 신중하게 답하라고 권했다. 이들이 내놓은 모범답안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