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닷속 세상을 그린 그림이었는데, 물고기들의 집으로 고층 아파트를 그린 게 아닌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온 곳이 늘 아파트였으니, 아이가 ‘집’ 하면 아파트를 떠올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야생을 사랑하고 생태적 삶을 지향하면서 막상 아이는 아파트에 가둬 키우다니. 평생을 살아갈 정서의 토대가 유년기에 형성되는데, 삭막한 아파트에서 아이의 유년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도시를 박차고 시골로 간 사람들의 페이스북 담벼락을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봐오던 내게도 드디어 기회가 왔다. 서울에서 먼 지역으로 이사할 일이 생긴 것이다. 불편함도 따르겠지만 ‘기회는 이때다’라고 생각했다. 기왕에 멀리 이사 갈 거면 시골에서 살아..
오는 10월9일 강원도 삼척에서는 원전 유치 찬반을 놓고 민간 차원의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본래는 주민투표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중앙정부가 방해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민간 차원의 주민투표로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주민투표의 의미는 매우 크다. 과거에 전북 부안에서 핵폐기장 유치 여부를 놓고 민간차원의 주민투표를 한 적은 있지만, 원전을 둘러싸고 주민투표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여러 차례 원전을 둘러싼 주민투표가 있었고, 투표 결과에 따라 원전이 백지화된 사례도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도 원전 확대 정책을 계속 펴면서, 단 한번도 민주적인 의견수렴과정을 밟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주민투표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
현직 경찰서장이 한국전력의 경북 청도 송전탑 건설공사를 반대해온 주민들에게 돈봉투를 뿌린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분쟁이 일고 있는 지역이라면 당연히 엄정중립의 자세로 주민과 기업 양측의 위법 여부를 판단·감시해야 할 경찰 책임자가 주민들을 회유하기 위해 기업의 ‘돈 심부름꾼’을 자처했다고 하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경찰의 직무 범위는 범죄의 예방·진압과 수사, 경비 및 대간첩작전,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기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 등이라고 경찰관직무집행법은 규정하고 있다. ‘분쟁지역 주민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기업이 내놓은 돈을 주민들에게 대신 살포하는’ 행위는 법에 규정된 경찰의 직무 범위를 아무리 확대해도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청도 345㎸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
“송전탑 때문에 신령님이 노하셨어.” 경북 청도 삼평리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노인봉에 22호 송전탑이, 산신제를 지내던 당산나무 부근에 24호 송전탑이 섰다. 노인봉에 22호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발파작업이 있었고 며칠 뒤에 마을에 큰 우박이 떨어졌다. 이외생 할머니는 “세상 천지에 그런 우박은 처음 봤다”고 말했고, 실제로 주민들은 그해 농사 수확이 없었다. ‘제2의 밀양’이라 불리는 청도 삼평리의 ‘할매’들이 서울을 포함한 전국을 순회했다. 청도 할매들은 청도군 삼평리에 건설 예정인, 34만5000V 초고압 송전탑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무더위에 길을 나섰다. 70~80대 할매들이, 어떻게 6년째 한전과 경찰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지,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 만나러 갔다. 할머니들은 생각보다 너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