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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9일 강원도 삼척에서는 원전 유치 찬반을 놓고 민간 차원의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본래는 주민투표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중앙정부가 방해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민간 차원의 주민투표로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주민투표의 의미는 매우 크다.

과거에 전북 부안에서 핵폐기장 유치 여부를 놓고 민간차원의 주민투표를 한 적은 있지만, 원전을 둘러싸고 주민투표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여러 차례 원전을 둘러싼 주민투표가 있었고, 투표 결과에 따라 원전이 백지화된 사례도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도 원전 확대 정책을 계속 펴면서, 단 한번도 민주적인 의견수렴과정을 밟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주민투표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원전도 민주주의의 사각지대였지만, 송전탑 문제도 그렇다. 최근 경남 밀양, 경북 청도 등지에서 ‘돈봉투’ 사건이 논란이 되었다. 송전탑 건설과 관련해서 한전이 ‘검은돈’을 뿌려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출처 불명의 돈이 주민들에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뿌려졌다. 심지어 경찰서장이 돈봉투를 전달하는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

이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송전탑 건설과정에서 민주주의란 없었다. 한전은 오로지 경찰력과 돈에 의존해 송전탑 건설을 밀어붙이기만 했다. 그래서 밀양, 청도 등지의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국가적인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막무가내식의 송전탑 건설을 가능하게 한 ‘전원개발촉진법’ 등의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건물외벽에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원전의 폐쇄를 주장하는 대형 현수막을 펼치는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1978년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은 일방적인 송전탑 사업을 뒷받침하는 법이다. 주민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에는 토지를 강제수용하도록 하고 있다. 밀양, 청도 등지의 주민들은 이 법을 개정해 제2, 제3의 밀양과 청도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송전탑 문제는 밀양, 청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근 경기 양평, 여주, 이천, 광주 일대가 들썩이고 있다. 한국전력이 신경기변전소 후보지로 발표한 다섯 군데가 이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신경기변전소’는 동해안의 신울진 원전에서 출발한 76만5000V 송전선이 도착하는 곳이다. 한국전력은 이 변전소까지 230㎞의 송전선을 건설하려 한다. 강원도와 경기도를 가로지르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유사한 초고압 송전선이 또 한 가닥 추진될지도 모른다. 동해안에 워낙 많은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서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발전소들은 수도권의 대공장, 대도시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전기소비가 증가하기 때문에 발전소와 송전선을 계속 지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이야기다. 지금 웬만큼 산다고 하는 나라들 중에 대한민국처럼 전기소비량이 급증하는 국가가 없다.

2011년 말 기준으로 국내 총 전력소비량은 45만5070GWh로 2002년에 비해 63%나 증가했다. 연 평균 전력소비량 증가율은 5.6%에 달한다. 경제성장률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유럽의 선진국들과 일본은 오히려 전기소비를 줄이는 추세다. 미국조차도 전력소비량이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의 전력소비만 이렇게 급증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잘못된 전기요금 정책에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너무 싸게 해 주다보니 전체 전기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력소비가 계속 늘어나 왔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며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다.

정부는 이렇게 전력소비 증가를 부추기는 전기요금 정책을 펴면서 원전과 송전탑을 계속 지으려 하고 있다. 이제는 이런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소 50% 이상 인상해야 한다. 국책연구기관인 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따르면 이렇게 전기요금을 올려도 기업활동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동안 싼 전기요금으로 산업용 전기를 공급해 온 것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에 엄청난 특혜를 줘 온 것이다. 이제는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승수 |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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