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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때문에 신령님이 노하셨어.” 경북 청도 삼평리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노인봉에 22호 송전탑이, 산신제를 지내던 당산나무 부근에 24호 송전탑이 섰다. 노인봉에 22호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발파작업이 있었고 며칠 뒤에 마을에 큰 우박이 떨어졌다. 이외생 할머니는 “세상 천지에 그런 우박은 처음 봤다”고 말했고, 실제로 주민들은 그해 농사 수확이 없었다.

‘제2의 밀양’이라 불리는 청도 삼평리의 ‘할매’들이 서울을 포함한 전국을 순회했다. 청도 할매들은 청도군 삼평리에 건설 예정인, 34만5000V 초고압 송전탑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무더위에 길을 나섰다. 70~80대 할매들이, 어떻게 6년째 한전과 경찰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지,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 만나러 갔다. 할머니들은 생각보다 너무 작고 야위었다. 그러나 그 내면에서 나오는 힘은 철탑보다 강했다.

이차연 할머니(77)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 할매들이 참혹하게 당한 모습은 하나도 TV에 안 나옵니다.” 말하는 내내 할머니의 입술이 떨렸다. 2012년 여름, 송전탑 공사 강행을 위해 건설업체 직원들과 용역들이 할머니들을 폭압적으로 끌어내릴 때, 이차연 할머니는 의식을 잃어 단기기억상실증을 겪었고,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입이 떨리며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내 평생 살아온 땅 지키려는데, 한전과 용역들에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치료비를 받아도 부족한 우리에게, 법원은 하루에 20만원씩 벌금을 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한테 나온 벌금이 1억6000만원입니다. 경찰은 국민이 아니라 한전만 지키고, 법도 늘 한전 편입니다. 이런 정부가 어딨습니까.”

밀양송전탑전국대책회의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전의 경북 청도 삼평리 송전탑 공사 강행을 규탄하고 있다.


밀양과 마찬가지로 청도 또한 공사의 전 과정이 철저히 비민주적이고 폭압적이다. 1978년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은 발전소와 송·변전소 시설 부지를 토지 소유자의 동의 없이도 강제로 수용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전원개발사업 승인을 얻게 되면 10여개 각종 인허가 절차를 생략하게 된다. 농민들이 대대로 일구어 온 논밭이 강탈당하고 주민들의 건강권과 생존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이에 저항하는 것이 ‘불법’으로 매도되는 것이다. 법원은 청도의 전 마을 이장이 송전탑 공사를 위해 ‘주민의견서’를 위조한 사건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고 기각했다. 또한 주민설명회 개최를 공고하지 않은 각북면장과 청도군청 담당 공무원을 상대로 주민들이 고소했으나 법원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밀양-청도 송전탑의 당위성으로 주장되는 신고리 3호기 원전은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되었을 뿐 아니라 취수구 배관공사 품질검사가 위조되었음이 밝혀졌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가느다란 할매들이 어떻게 수년째 한전과 용역, 경찰의 물리력에 맞설 수 있었을까. 무엇이 할매들을 저토록 강하게 만들었을까. <밀양에 살다>와, 오늘 갓 나온 <삼평리에 평화를>을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두 책은 각각 밀양과 청도 주민들의 밀알 같은 삶과 사연들을 기록한 구술서이다. 이 책들을 보면, 그들에게 땅이란 무엇인지, 땅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들에게 한전의 일방적인 송전탑 공사 선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일제의 수탈과 전쟁, 가난과 고난 속에 평생을 살아야 했던 김말해. 그녀는 땅에 의지해 80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송전탑 공사를 한다고 난리가 났다. “이 골짜기에서 커갖고 이 골짜기에서 늙었는데. 6·25 전쟁 봤지, 오만 전쟁 다 봐도 이렇지는 않았다. 이건 전쟁이다.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 할매들을 투사로 만든 것은, 부조리함과 폭력에 대해 인간이기에 맞설 수밖에 없는 의당한 저항이고, 땅의 순리를 거스를 때 일어나는 하늘의 노여움에 대한 직관이며, 한평생 자신과 자손들을 먹여 살려온, 그리고 후손들을 먹여 살릴 땅에 대한 예의, 그것에 대한 일방적인 침탈을 견딜 수 없는 마지막 자존심인 것이다.


황윤 |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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