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달러를 넘어섰다. 1960년대 초 100달러에 불과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고속성장의 이면에는 산업화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수도권 집중화 문제는 물론 지역 간 발전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소득 양극화와 부의 편중 현상도 심화되었다.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제조업 중심,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성장정책이 낳은 결과물들이다. 불균형 성장이 남긴 상흔은 농업과 농촌에서 특히 현저히 나타났다. 농업이 장기 성장정체에 빠지면서 농가소득은 도시의 60% 수준까지 추락했다. 텅 빈 농촌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기고,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지도 오래다. 전국 읍·면 농촌지역의 43%가 소멸위험지역이라는 암울한 연구결과도 나왔다..
최근 아마존 인공지능 채용 시스템이 이력서에 ‘여성’이라는 단어가 포함되면 감점을 해서 논란이 일었다. 원인은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에 있었다. 아마존에서는 지난 10년간 회사에 제출된 이력서 데이터를 학습시켜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현하였다고 한다. 남성 직원 비율이 60%인 아마존의 현실이 영향을 주어 여성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서비스가 제대로 검토되지 않고 사용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의사결정을 블랙박스에 비유한다. 의사결정 과정이 감춰져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채용 등 고도화된 업무영역까지 맡게 되면서 의사결정의 투명성에 대한 요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5월 발효된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을 통해 알고리즘에 의한 자..
최근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된 경향신문 ‘생태계가 바뀐다’ 기획의 마지막 기사는 ‘2050년의 기상예보’였다. 최고기온이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아열대 지방처럼 예측 못할 비가 쏟아지기도 하며, 따뜻해진 바닷물 대신 인공동굴에 들어가는 것으로 피서를 하고, 스키를 타려면 해외로 나가야 하는 2050년의 기후 풍경을 보여주었다. 지난여름의 폭염을 겪은 사람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미래였다. 공상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올 법한 미래의 날씨를 제시했다는 이 기사에서는 각종 미래 예측에 그동안 단골로 등장하던 인공지능 기술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홀로그램 기술을 사용하는 인공지능 기상캐스터가 폭염 소식을 전하고, 손목에 찬 스마트칩에서 요즘의 재난문자 비슷한 메시지를 가상 영상으로 띄우는 게 전부다. 오히..
최근에 영국 공영방송 BBC는 한국이 인공지능산업에 가장 최적의 문화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극찬한 바 있다. 곰이 인간이 되고 자연물 등에서도 초인간적인 능력이 있다는 전통 무속신앙이 이를 지원하는 기초배경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비아냥거림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국이 좀 더 인공지능에 친화적인 것은 사실로 보여진다. 다만 최근 한 세미나의 인공지능에 관한 발제에서 너무 윤리적인 문제를 집중부각한 사례를 보고 그 방향성에 대하여 간단하게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인공지능 등에 있어서 윤리적인 문제가 자주 화두가 되는 것은 불가피한 점이 있다. 그러나 그 논의의 중심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들 문제를 너무 추상화하거나 이론적으로 접근..
이세돌 9단에 이어 세계 1인자인 중국의 커제(柯潔) 9단까지 완파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바둑계 은퇴를 선언했다. 알파고의 개발자인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는 “이번 행사가 알파고가 참가하는 마지막 바둑 대국”이라고 발표했다. ‘인간계를 완전 정복했으므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거냐’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터져나올 만큼 알파고의 바둑 실력은 대단했다. 그러나 이번 대국을 단순히 인공지능과 인간 대표의 대결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서는 안될 것 같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제 9단과의 2차전에서 보여준 119수가 단적인 예다. 바둑기사들이라면 쉽게 착상할 수 없는 수였다. 그러나 막상 알파고의 수가 놓이자 커제의 돌들이 꼼짝달싹..
영화 를 보고 나서 큰 의문과 회의에 휩싸였다. 여기저기서 가져왔다지만 장면들은 예뻤고, 평범한 대로 음악도 듣기 좋았다. 특히 ‘달콤 쌉싸름한’ 사랑 이야기가 관객들의 호응을 얻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결정적으로 영화의 큰 줄거리에 도무지 공감하기 어려워, 마음속 ‘별점’을 두 개 반 정도만 줬었다. 약간의 고뇌와 좌절을 겪지만 젊은 백인 미남 미녀가 젊은 날의 ‘꿈’이라는 것을 장쾌하게 이뤄버린다는 성공 서사가 단순하고도 이상했다. 내가 본 LA는 트럼프가 싫어한다는 멕시코, 코리아, 차이나 등에서 온 키 작은 노동자들의 도시이기도 했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판타지의 미감이 더 빛을 발할 수 있고 이야기를 깊이 있게 하는 데 제약이 있는 뮤지컬 양식을 빌렸다는 점을 감안해도 납득이 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