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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된 경향신문 ‘생태계가 바뀐다’ 기획의 마지막 기사는 ‘2050년의 기상예보’였다. 최고기온이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아열대 지방처럼 예측 못할 비가 쏟아지기도 하며, 따뜻해진 바닷물 대신 인공동굴에 들어가는 것으로 피서를 하고, 스키를 타려면 해외로 나가야 하는 2050년의 기후 풍경을 보여주었다. 지난여름의 폭염을 겪은 사람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미래였다.

공상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올 법한 미래의 날씨를 제시했다는 이 기사에서는 각종 미래 예측에 그동안 단골로 등장하던 인공지능 기술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홀로그램 기술을 사용하는 인공지능 기상캐스터가 폭염 소식을 전하고, 손목에 찬 스마트칩에서 요즘의 재난문자 비슷한 메시지를 가상 영상으로 띄우는 게 전부다. 오히려 에어컨 대신 ‘패시브쿨링 컨디셔너’를 사용해서 만드는 ‘마이크로 기후’가 미래 첨단기술처럼 들린다. 2050년쯤이면 세상을 놀랍도록 멋지고 편한 곳으로 만들어 준다던 인공지능은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제 할 일을 부여받지 못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두 차례 폭염을 겪었다고 해서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각종 인공지능에만 의존하지 않으면서 30여년 후 미래를 예측하게 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대신하여 미래 예측의 중심에 등장한 것은 폭염에 시달리는 ‘인공지구’다. 인공지구는 인간이 만든 지구,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이 망친 지구를 뜻한다. 인간이 지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애초에 지구가 인간을 만들었다고 해야겠지만, 지금 지구의 모습에 인간의 발자국이 너무 크고 깊게 남아 있기에 “인간이 지구를 새로 만들고 있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긴 지구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시대’, 즉 ‘인류세’가 시작되었다고 할 만하다. 인공지구란 바로 그 인간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지구의 처지를 일컫는다.

인공지능과 인공지구 모두 인간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거나 변모한 존재들이지만 우리는 양쪽에 대하여 사뭇 다른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인공지능을 보면서 경이와 두려움을 고백하는 데 익숙하지만, 인공지구에 대해서는 이것이 우리 손으로 빚어낸 결과임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인공지능은 막 성장을 시작하고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먼 훗날 이것이 불러올 변화를 상상하면서 미리 호들갑을 떤다. 반면 인공지구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인데도 우리는 여전히 무심하다.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을 향해 달려들면서 인공지구로부터는 도망치고 있다.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은 우리가 만든 지능이 어떤 파국을 불러올지 모른다면서 우리가 망친 지구를 버리고 화성으로 옮겨 가자고 한다.        

인공지능과 인공지구에 대한 관심과 행동의 심각한 불균형은 학계와 정부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세상 모든 변화의 중심에 인공지능이 있다는 생각은 식상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 가령 유발 하라리가 쓰는 ‘사피엔스’의 역사와 미래 서사는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근대 기술을 통해 자기 외부의 세계를 정복한 사피엔스에게 남은 목표는 자기 자신의 영생과 행복이며 그 새로운 탐구 혹은 정복의 핵심에 인공지능이 있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거울처럼 손에 들고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로 향한다. 하라리도 ‘생태학적 위기’를 말하기는 하지만, 그의 역사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공지구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산업 성장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공’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정부의 정책도 인공지구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향한다. 인공지능은 돈이 되고 인공지구는 돈이 되지 않는다. 무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 앞에서 인공지구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공지구는 쉽게 정책의 공간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어떻게든 산업으로 만들어야 겨우 관심을 받는다. 예를 들어, 인공지구의 한 현상인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공기산업’이라는 참신한 개념과 분야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공기산업은 새 제품을 내놓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가를 양성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각과 대책은 인공지구를 인공지능과 비슷한 방식, 즉 새로운 경제적 기회로 대하고 있고, 따라서 인공지구의 근본적 문제들을 직시하지 못한다.

인간은 인공지능에 의해 구원받거나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영생을 얻거나, 인공지능을 통해 사피엔스를 넘어선 존재가 되어 다른 행성으로 도망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인간을 공격하고 정복하려 드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인공지구에서 먹지 못하고 숨 쉬지 못하게 되어 사라질 것이다. 폭염 끝에서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운명이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지구에 달렸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자기 몸 주위에 스마트하게 ‘마이크로 기후’를 만들어 버틴다고 해도 인공지구의 힘 앞에서 무력할 것이다.

만능 해결사 같은 인공지능에 한계를 부여하는 것은 인공지구이다. 인공지능의 가능성도 인공지구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더 현실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2100년에도 인간은 인공지능과 결합해서 신이 되지 못한 채, 여전히 인공지구의 땅과 대기 속에서 발버둥치고 살면서 이런저런 일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인류세의 인간은 인간이 만든 지능과 인간이 만든 지구라는 조건 사이에서 살게 되었다. 

인공지능과 인공지구를 함께 고민하는 작업은 그동안 인공지능으로 가득 차 있던 미래 예측과 미래 정책에 인공지구를 더 많이 등장시키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인공지구에 대해서도 얘기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현실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폭염과 다음 미세먼지가 올 때까지 인공지구는 잊고 다시 인공지능에 몰두할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전치형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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