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군중이 매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의 의회’를 열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능가하는 분노의 함성과 외침이 만추의 광화문광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드러난 ‘권력의 사유화’로 박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고 통치불능의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듯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한 지도자는 국가를 이끌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1974년 7월25일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범죄행위를 저지른 닉슨 대통령을 탄핵 소추한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바버라 조던 하원의원은 “국민의 공적신뢰(public trust)를 배신한 대표는 탄핵될 수 있다”고 연설하였다. 대의 민주주의하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대표에게 권력을 한시적으로 ‘위임’..
검찰이 어제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의 주요 피의자를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최씨 등의 공범으로 규정했다. 검찰은 “현재까지 확보된 제반 증거자료를 근거로 피고인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여러 범죄 사실 중 상당 부분과 공모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정식 입건, 특별검사의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 추가 조사를 통해 내용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던 입장을 뒤집고 검찰의 수사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이 지휘하는 검찰에 의해 형사범죄의 피의자로 규정된 것도 초유의 일인데 사법체계마저 거부하다니 충격적이다. 국가적 비극이자 이런 막장이 따로 없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박 대통령의 혐의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한 결과만 보더라도 박 대통령은 제3자 뇌물죄 등을 저지르고, 국정을 파탄으로 이끈 몸통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면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물러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특별검사가 진행해야 할 수사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원내 야당이 해야 할 몫과 광장의 촛불이 해야 할 몫도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이 ‘국정복귀’ 운운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지킬 수 있다. 원내 야당은 탄핵 절차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야 3당 대표들이 모여서 범국민 서명운동을 결의했다고 하는데, 자기 역할을 못 찾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국회 ..
분노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이다. 분노를 유발하는 외부 자극은 인간의 표정과 몸짓, 생리적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표정은 일그러지고 눈썹 근육은 위축된다. 눈을 부라리며 분노의 대상을 응시하고, 근육이 긴장하면서 권투 선수의 기본자세와 같은 몸짓이 생겨난다. 사람이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언제든 주먹을 내지를 수 있도록 손으로 향하는 혈류량도 늘어난다. 화가 나면,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외부 자극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내뱉는 언어도 과장되고 공격적으로 된다. 분노를 유발하는 외부 자극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과 도발에서부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회적 부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분노는 이런 외부 자극에 대한 ..
“초코파이 받아가세요!” 혼잡한 광화문역을 겨우 빠져나오자마자 들린 첫 음성이었다. 엄마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준비했다며 사람들에게 초코파이를 하나씩 나눠준다. 나도 받아들었다. 초코파이는 달콤하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활기가 넘친다. 차가 사라진 거리는 이미 남녀노소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많이 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실제 인파를 확인한 사람들 사이에 묘한 동질감이 흐른다. 줄줄이 서 있던 통신사들의 중계기가 무색하게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은 터지지 않고 전화도 끊기기 일쑤였지만 불편하지 않다. 말 그대로 인파를 헤치며, 아니 떠밀리듯 이동했다. 집에 가는 지하철 막차 안보다 사람이 더 많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에서 사람에 밀려다니는 경험은 또 처음이다. 짜증이 날 법..
바야흐로 국민대각성의 시대다. 쇠고기 촛불 이후 영 꺼진 줄 알았던 촛불이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연일 봇물 터지는 보도에 국민은 아연실색, 분노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보수의 아성 대구도 그렇다. 지난 백년 우리나라에 정의가 승리할 절호의 기회가 몇 차례 찾아왔으나 우리는 한번도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기회주의자, 권력파들이 노상 승리하고 정의와 양심을 사랑하는 민주파는 패배하고 좌절해왔다. 그래서 ‘정의고 양심이고 소용없다’ ‘권력과 돈이 최고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이런 못된 풍조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정의는 패배해 왔다. 우리가 선진국이 못되는 이유는 소득이 낮아서가 아니고 바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는 구조에 있다. 첫번째 기회..
광화문에 시민들이 모이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약 20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1987년 6월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박근혜의 국민이었다는 사실에 치를 떤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숨이 멎을 것 같다고도 한다. 유체이탈 화법과 기만의 언어, 봉건적 권위와 여제적 행태로 채워진 ‘박근혜의 시간’은 국민에게는 자학의 시간이었다. 박근혜의 오만과 기만과 불법과 무능은 ‘우리가 도대체 지난 대선에서 무슨 짓을 한 건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가슴속 깊이 파인 상처를 자학으로 가리고 있었다. 자학이 분노의 경계를 넘지 못한 것은 권력과 언론의 굳건한 ‘협업’ 탓이었다. 굳건한 협력의 빗장을 풀고 은폐의 육중한 문짝을 열어젖힌 것은 흥미롭게도 보수권력이 자신의 입으로 삼고자 했던 종편방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