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아르바이트·단시간 일자리 등은 청년층으로 채워진 지 오래다. 낮은 임금, 낮은 고용의 질, 낮은 삶의 질 등은 청년층을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가 돼 버렸다. 소득양극화와 취업난, 주거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은 ‘N포 세대’를 넘어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1일 내놓은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는 청년세대가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하위 20%)의 한 달 소득은 80만7000원으로 집계됐다. 취업난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탓이다. 한때 저소득 청년층을 일컫던 ‘88만원 세대’가..
시인 김해자는 미발표 근작시 ‘여기가 광화문이다’에서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자고 우리는 여기에 모이지 않았다”고 일갈한다. 이것은 지금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는 수많은 시민들의 공통적인 심경일 것이다. 우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빛이 사방을 덮어 세상 곳곳으로 퍼진다는 광화문”으로 모이는 까닭은 명백하다. 세습권력들과 그들에게 빌붙어 충성해온 직업정치인, 관료, 언론, 각종 전문가들로 구성된 지배체제를 탄핵하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연민과 분배와 정의가 얼어붙은 사이/ 농촌은 해체되고 청년들은 미래를 빼앗기고 노동자들의 삶은 망가져버린” 나라를 다시 일으켜 “만인이 만인에게 적이 되고 분노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 만인이 만인에게 친구가 되고 위안이 되는 세상을” 열자고 한목소리로 ..
대한민국 최고 금수저인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은 닮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한 줌도 안되는 지분으로 권력을 향유하고 있다. 지지율 4%에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지만 박 대통령은 여전히 새누리당과 정치권을 쥐락펴락한다. 이정현 같은 친박계 의원들을 내세워 새누리당을 장악하고, 새누리당을 통해 입법·행정·사법부 관료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재벌 총수들은 더 심하다. 지분율이 1%도 안되지만 순환출자를 이용해 그룹 계열사 전체를 지배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에버랜드 대주주로 등극한 뒤 에버랜드 보유 지분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등을 지배했다. 형제자매와 연을 끊고 산다는 점도 비슷하다. 박 대통령 동생 지만씨는 “피보다 진한 물이 있다”는 말로 누나와의 관계를 표현했다. ‘진한..
광화문광장에 시민이 촛불을 들고 모였다. 시민은 당장에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을 주장하나, 그 발언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바른 정치’에 대한 갈망이다. 안전한 대한민국, 공명정대한 대한민국, 만인이 법과 규범 앞에 평등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대의 민주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니 광장에 나온 시민의 바람과 주장은 정치인을 향하는 것이다. 사실, 정치인들이 제각각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했다면 시민이 이 추운 겨울에 광장에 나와 목이 쉬어라 구호를 외칠 일도 없다. 그러나 지금의 이 난국을 그저 정치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나의 영역이 아니라 여겼던 내 탓은 아닌지 돌아봄 직도 하다. 일상이 정치이다. 내가 어떤 밥을 먹고 어떤 직장을 다니며 ..
전국에서 넘실대는 거대한 저항행동을 일단 ‘2016 촛불대항쟁’이라고 불러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한국을 경이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한 것이 촛불대항쟁이었다. 바로 이 촛불시민이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주판알을 굴리던 국회를 내몰아 마침내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게 했다. 촛불의 힘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우라는 촛불의 염원은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2016 촛불대항쟁은 이미 그 자체로 정치사적 의미가 되기에 충분하다. 외환위기 이후 점점 더 고단해진 시민의 삶은 민주주의를 아득히 잊어버린 듯했고 위임권력은 권력자들만의 것이 되었다. 이 황폐한 정치의 시대에 놀랍게도 2016 촛불대항쟁은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를 완전히 진화된 형..
몇 주째 아내는 발뒤꿈치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했다. 족저근막염이라고 진단이 나왔는데 집에서도 발바닥이 편한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촛불집회에 나가지 못해 좀이 쑤시던 아내가 내게 따져 물었다. “100만 촛불이니 230만 촛불이니 하지만 거리에 나간 촛불만 세는 건 아니라고 봐. 광화문에 나가진 못해도 마음속에 촛불을 켜는 나 같은 사람들은 왜 빼놓는 건데.” 듣고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집, 가게, 공장에서 타오른 ‘국민 촛불’까지 염두에 두면 숫자는 무의미해진다.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촛불의 방향에 대한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지역 민회를 구성하자는 움직임도 있고,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 도입을 내세우는 쪽도 있다. 촛불 시민혁명의 역사적인 의의를 짚는 토론도 시작됐다. 자..
청와대 앞 자유발언대 트럭에 선 초등학교 5학년 아이와 진주의 19살 젊음이의 명징한 정치발언, 민회나 시민평의회 논의 등을 보면 오늘의 광장은 촛불만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정동(情動)의 정치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요즘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담론화되고 있는 ‘스트리트의 사상’(모리 요시타카), 그리고 분노의 정동이 자본과 권력에 의한 ‘하이재킹 당하는’(이토 마모루) 국면과도 다르다. 타격 대상에 대한 즉각적인 정치적 단죄를 이루고 아래로부터 정치사회를 구성해 가고자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직접정치 실험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수구체제는 ‘잘살아보세’의 유신망령과 허구적 복지담론을 한국 사회가 허용한 결과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
촛불을 계기로 헌법을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전에는 헌법 문구들을 당위적으로 대했다. 이번엔 사뭇 달랐다. 조항을 읽을 때마다 촛불을 켜는 정성이 생각나고 광화문 거리를 걸었던 해방감이 밀려왔다. 촛불파도가 넘실거리듯, 단어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몇 번의 촛불 참여가 이러한데 처음 민주공화국을 외치며 쓰러져간 사람들은 어땠을까? 복지국가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국민은 행복추구권과 인간다운 생활권을 지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조항들, 헌법의 명령이 바로 복지국가였다. 며칠 전 빨라진 대선에 관해 토론하다 지인이 물었다. 복지시민단체는 무엇을 내세울 거냐고. 복지 쪽에선 어떤 요구가 있을지 궁금하고 획기적인 게 나올까 하는 의문이 담긴 질문으로 들렸다. 한두 해 전부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