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황교안 후보(미래통합당)의 일련의 발언들은 실수가 아니다. 전편과 속편이 온전한 극(劇)이다. 그의 프리퀄은 공안 검사와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 그의 발언은 세계관의 본격적 분출이다. 아들 취직 자랑, 육포 사건, “교회 내 코로나19 감염 거의 없다” “1980년, 그때 하여튼 무슨 사태” 발언, 키 작은 사람의 ‘투표 걱정’….압권, 아니 공포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관한 입장이다. 그는 “호기심으로 들어왔다가 그만둔 사람에 대해선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양형에 대한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범죄 가담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호기심만으로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양형 기준에서 그토록 중요시하는 강력한 범행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같은 당..
세계적 재난도 견디기 어려운데, 그 와중에 터진 반인륜적 범죄가 우리를 충격에 빠트렸다. 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서로를 고립시키더니 퍼질 대로 퍼져버린 반인권적 범죄가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켜 버렸다.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선언한 헌법국가에서 인간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조두순’을 넘어 웹하드 카르텔, 버닝썬, 웰컴 투 비디오 그리고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사건까지 끊이지 않는 추악한 범죄가 이제 음지로 파고들었다. 아동 성폭행범의 대명사 ‘조두순’ 사건이 벌어진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성폭행·강제추행이라는 전통적 젠더폭력에서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통·소지하는 새로운 ..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악마’ 같은 개인이 저지른 엽기적 행위인가. 이해할 수 없는 특정 세대의 문제인가. 정말 완전히 새로운 범죄인가.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수백만 시민의 서명은 모든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모는 여성들의 과민한 반응인가. 답을 찾기 위해 가까운 시기에 일어난 유사 사건 두개만 살펴보자. 2019년, 여성단체들의 꾸준한 문제제기와 경찰의 수사로 성매매 후기·알선 사이트들의 실체가 일부 드러났다. 경찰이 밝힌바, ‘밤의 전쟁’이라는 사이트는 70만 명의 회원 수에 1일 접속 인원만 10만 명, 200여 개의 성매매업소 광고와 성매매 후기 글 21만 건, 모태가 되는 사이트까지 합하면 회원 수 110만 명가량에 이른다. 운영자들은 2600개가 넘는 성매매업소로부터 매월 30만~70만원을..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 불법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구속된 조주빈씨가 25일 검찰에 송치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TF를 구성하고 TF 총괄팀장 산하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 이 사건을 배당했다. 경찰청도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이날부터 열었다. 검경이 조씨가 주도한 이른바 ‘박사방’을 포함해 ‘텔레그램 n번방’ 수사를 본격화한 것이다. 검경은 무관용 원칙에 따라 대화방 개설·운영자는 물론이고 시청·공유한 이용자까지 전원 수사해 엄벌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반인간적·반사회적인 신종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단죄가 막 시작된 것이다. 수사당국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첫째, 익명성·보안성이 강화된 디지털기술 속으로 숨어드는 유사 범죄자들을 계속 찾아내는 일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들끓고 있다. 취약한 처지의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후폭풍이다. 23일 오후 7시 현재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 청원에 235만여명이 동의했다. 역대 최다 기록이다.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에도 165만여명이 동참했다. 합쳐서 400만명을 넘어섰다.텔레그램은 보안성이 강한 모바일 메신저다. 성착취 범죄자들은 이곳에 비밀 대화방을 개설하고 영상물을 유포했다. ‘갓갓’이라는 운영자(미체포)가 1~8번 대화방을 운영하며 ‘n번방 사건’이란 명칭이 생겼다. 이후 유사 대화방이 여러 개 등장했는데, ‘박사’라 불린 20대 조모씨가 만든 ‘박사방’이 가장 악질로 꼽혀왔다. 박사방의 실체..
미성년자 등의 성착취 촬영물을 불법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시민들이 공분하자 정치권이 앞다퉈 가해자 엄벌과 대책 마련을 약속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근본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운영자는 물론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 신종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근절책 마련을 정부와 경찰에 지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20대 국회에서 불법촬영물 처벌 강화 내용 등을 담은 ‘n번방 사건 재발금지 3법’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국민의당과 민생당 등은 국제 공조 수사, 온라인상 성착취물 수사 전담기구 설치 추진 등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불관용원칙과 근절방안이 시급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민들이 국회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