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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내 인생 제1의 도시라면 파리는 내가 서울 다음으로 오래 산 제2의 도시다. 그런데 나는 서울보다 파리에서 더 많이 걸었다. 파리가 겨우 서울의 6분의 1 크기에 불과하고 걷고 싶은 도시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방인인 나에게 파리가 발견을 기다리는 미지의 공간이었다면 토박이인 나에게 서울은 너무나 당연해 보여서 일부러 걸어 다닐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파리에서는 나에게 낯선 동네가 거의 없다. 그런데 서울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변두리로 갈수록 이름은 익숙하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전혀 잡히지 않는 동네들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모든 도시에는 중심부와 변두리가 있다. 중심부가 돈과 권력과 문화가 집중된 화려한 곳이라면 변두리는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무언가 부족하고 어둡고 쓸쓸한 공간으로 표상된다. 변두리는 무엇보다 집값이 싸다. 박완서가 쓴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문학동네)라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소설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주인공이 북쪽으로는 상계동과 수유동, 서쪽으로는 갈월동, 동쪽으로는 한남동, 한강 남쪽으로는 화곡동 등으로 적당한 집을 찾으러 다니는 모습이 나온다.

1970년대 말부터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서울은 강북이라는 구도시와 강남이라는 신도시로 구별되었다. 인터넷으로 서울 지도들을 검색해보면 한강 이남의 서울을 달걀 반숙으로 처리하고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노른자위로 그려놓은 지도를 만나게 된다. 실제로 한강 이남의 서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다녀보면 노른자위 세 구와 나머지 구들의 분위기가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연륜으로 보자면 그 세 구에 앞서 영등포구가 있었다.

강남 개발 이전 영등포구는 강북의 서울과 구별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그곳에는 공장들이 있었다. 1965년부터 만들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수출산업공단이었던 구로공단에서는 “증산, 수출, 건설”이라는 구호 아래 수많은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청춘을 보냈다.


이제 그곳은 구로공단에서 서울디지털단지로 환골탈태했고 공단 주변의 노동자들이 몰려 살던 가리봉동과 대림동 일대의 ‘벌집’에는 좀 더 나은 삶을 찾아 이주한 중국 동포들이 살고 있다. 누가 나에게 지난 반세기 동안 일어난 한국사회의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서울의 한 장소를 알려달라면 나는 그와 함께 옛 구로공단 부근의 가리봉동으로 갈 것이다.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시간은 장소에 흔적을 남긴다. 그곳이야말로 그 화려한 ‘대한민국’의 잘 보이지 않는 과거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때마침 강추위가 몰려온 지난 1월 말과 2월 초 며칠에 걸쳐 나는 지하철 대림역과 남구로역, 가리봉오거리 부근으로 기억여행을 떠났다. 대림역 2번 출구로 나와서 걸어 들어간 중국동포거리를 가로지를 때 불어온 칼바람은 1960년대 초 나의 유년시절의 서울을 연상시켰다. 남구로역 인력시장 앞에서 가리봉시장을 향해 언덕을 걸어 내려갈 때는 갑자기 눈앞에 환상이 어른거렸다. 저 아래에서 소달구지가 짐을 싣고 올라오는가 하면, 좁은 골목길에 줄지어선 벌집에서 나온 많은 여공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공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니 생소한 글씨체로 쓴 인력개발업체, 직업소개소, 식당, 술집, 노래방, 잡화점, 환전상, 여행사 등의 간판들이 보였다.

가리봉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니 중국의 이름 모를 도시에 온 듯했다. 주말 오후라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술 한잔을 걸친 중년 남자들의 벌건 얼굴들이 보였다. 남루하고 삶에 찌든 분위기로 보아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온 중국 동포들인 듯했다.

그때 문득 박노해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가리봉시장에 밤이 깊으면/ 긴 노동 속에 갇혀 있던/ 우리는 자유로운 새가 되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깔깔거리고/ 껀수 찾는 어깨들도 뿌리 뽑힌 전과자도/ 몸 부벼 살아가는 술집여자들도/ 눈을 빛내며 열이 오른다.” 이제 그 시장 거리를 시골에서 상경한 젊은 노동자들을 대신해 만주에서 이주해 온 중국 동포들이 걷고 있다. 옌볜거리로 불리는 가리봉시장 부근은 ‘가리베가스’라는 화려한 별칭도 가지고 있다. 고단한 삶이 있는 곳에는 위로의 노래가 있기 마련이다. 한국인으로 귀화한 중국 동포 출신 가수 헤라가 부르는 ‘가리베가스’라는 제목의 노래에는 “가리베가스로 오시면 희망 노래 꿈이 있어요/ 어제보다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 참고 살아가지요/ 가난한 내 청춘아 힘을 내/ 언젠가는 한바탕 활짝 웃으며/ 씩씩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가사가 나온다.

가리봉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와 남부순환로 쪽으로 걸어 나오니까 길 건너편에 유리와 강철로 지은 포스트모던한 초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가리봉오거리 부근에는 공장 부지를 사들여 높게 지어올린 아웃렛 매장 ‘마리오’ 왕국이 보였다. 그 근처에는 다행히 공장 건물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만 개조하여 만든 상가가 남아 있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내가 듣던 트랜지스터라디오, 내가 먹던 크림빵, 내가 입던 티셔츠, 내가 쓰던 선풍기를 만들던 공장들은 다 사라지고 약간 유행이 지났지만 아직도 화려함을 잃지 않은 상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된 패션 매장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가리봉오거리 부근에는 구로공단이 한참일 때 여성 노동자들이 많이 모이던 나포리다방이 남아 있다.

1980년대 사회의식에 눈뜬 대학생들이 그 부근의 초라한 방에서 야학을 열어 젊은 노동자들을 가르쳤고, 그에 만족하지 못한 아방가르드들은 노동자로 변신해 직접 공장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지금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저성과자를 쉽게 해고하는 지침을 포함하는 노동개악 2대 행정 지침에 반대하는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칼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날 저녁 나는 남구로역과 대림역 그리고 가리봉오거리 사이를 걸으며 질문 하나를 떠올린다. 그 시절 이 거리를 걷던 그 많던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되었을까?


정수복 | 사회학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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