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종 언론 보도나 광고를 보면 새로운 현상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고향에 기부해 주세요”라는 문구다. ‘고향사랑 기부제’를 알리기 위해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행되는 제도다. 내년 1월 시작된다. 고향사랑 기부제 홍보글에는 한결같이 지역특산물이 함께 안내된다. “이게 뭐지” 하는 질문이 뒤따른다. 고향사랑 기부제는 특정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 개인이 기부를 하면 세액공제도 받고 답례품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연간 한도는 500만원까지다. 기부자에게는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10만원까지는 전액공제, 1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16.5%의 세액공제가 보장된다. 지자체는 기부금의 30% 이내에서 답례품을 줄 수 있다. 궁금한 것들이 많아 여기저기 문의해 봤다. 고향에만 기부할 수 있는 ..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11월12일(토), 경남 창원 합포여중 교사 세 분이 학생 스무명을 데리고 ‘문학기행’을 오기로 한 날이다. 아내와 나는 이른 아침부터 손님맞이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산골 마을에 뿌리 내린 지 17년이 지났지만 우리 마을엔 학생이 한 명도 없다. 다른 마을도 거의 마찬가지다. 지구촌 돌림병(코로나19)으로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던 도시 학생들과 교사들이 올해부터 가끔씩 찾아오고 있다.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 일인가. 어느덧 오전 9시40분이다. 반가운 손님맞이하느라 지나가던 바람도 잠시 멈추고, 마을 텃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개가 짖고 소가 울어댔다. 드디어 참나무 아래 넓은 쉼터에 버스가 섰다. 학생들이 하나둘 내렸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난 뒤, 한 줄로 서서 ..
![](http://i1.daumcdn.net/thumb/C148x148/?fname=https://blog.kakaocdn.net/dn/bRyg41/btrQ1e8JjHx/ikJHaM4HkUpByNF5hz0Ebk/img.jpg)
복사꽃 아래 서면 문득 내가 비참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져 한 사나흘 푹 잠들고 싶어질 때가 있다 몽중에 누굴 호명할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고단한 한 생을 만나 서로 꽃잎 먹여주며 몹시 취해서 또 한 사나흘 푹 잠들고 나면,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고 무언가 잊어버린 것 같은 그래서 아슴한 저녁나절 밖으로 나올 때는 딴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처럼 멍한 나를 발견했으면 한다 복사꽃 아래 새들 머문 적 없으니, 언제쯤 헛것에 끌려가지 않고 언제쯤 그물에 떨어지지 않고 아름다운 이 색계(色界), 무사히 걸어 나갈 수 있을까 박노식(1962~) 시인은 왜 “복사꽃 아래 서면” 초라해지기보다 비참해진다고 했을까. 참혹이나 참담, 처절과 비슷한 말인 비참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몹시 ..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용어가 ‘자립준비청년’으로 바뀐 지 1년이 넘었다. 기존 용어가 다소 수동적인 표현이라는 지적과 보호종료청년, 보호종료청소년 등 비슷한 용어로 혼용되어온 점을 감안하여 새 용어로 바꾼 것이다. 정부는 지난 6월22일부터 보호대상아동이 본인 의사에 따라 25세에 달할 때(만 24세)까지로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시설에 거주하는 보호대상아동 대부분이 18세가 되면 살던 곳을 나와야 하는 것이 자립에 어려움을 준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이다. 또한 정부는 보호대상아동의 가정위탁 보호 종료 또는 아동복지시설 퇴소 이후의 자립을 지원하는 ‘자립지원전담기관’을 시·도별로 설치·운영하고 있다. 자립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도 늘어나고 있다. 주로 구청에서 일하는 ‘아동보호전담요원’과 ..
수소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한 새 정부 수소경제 정책 방향이 발표되었다. 이번 정책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중동, 동남아 등 해외에서 재생에너지 또는 온실가스 포집·저장 기술과 결합하여 천연가스로부터 생산된 무탄소 수소·암모니아를 대량 도입하고 화석연료를 대체하여 발전용 연료로 사용하는 방안이다. 화석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의 국내 발전 비중은 지난해 63.5%에 이르고 있는데, 이번 정책에서 수소·암모니아 발전 비중을 2030년에 2.1%, 2036년에 7.1%까지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였다. 구체적으로 가스터빈에서 수소를 LNG와 혼합연소(혼소)하는 것과 석탄화력에서 암모니아를 혼소하는 두 방안이 추진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탄소중립 달성의 큰 축을 담당하면서, 한 기당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기부죄거부특권은 범죄의 혐의를 받거나 기소된 사람이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다. 미국법에는 경찰관 자신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비리와 관련하여 조사를 받으면서 ‘만약 자기부죄거부특권을 행사하면 면직될 것’이라는 압박을 받아 비리에 관해 진술할 경우, 그 진술은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법리가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1967년의 개리티 사건에서 판시한 것이어서 개리티 원칙(Garrity Rule)이라고 부른다. 같은 해 가드너 사건에서 나온 판결은 ‘대배심에서 위의 특권 포기를 거절하면 면직된다’고 규정한 주법을 무효로 보았다. 그런데 1968년의 통합위생직원연합회 사건에서는 위의 특권을 행사하여 진술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면직되면 그 면직은 위헌이라고 했다가, 1970..
김장철이 다가왔다. 전국 곳곳에서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도 벌어진다. 마음의 추위가 유난히 심할 것 같다는 올겨울, 맛깔스러운 김장김치가 많은 사람에게 훈훈한 기운을 불어넣어 줬으면 좋겠다. 김장 하면 무엇보다 먼저 ‘젓갈’이 떠오른다. 젓갈은 보통 어패류를 이용해 담그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토끼·사슴·소 등의 육고기로도 담근다. 토해, 녹해, 탐해, 치해, 담해 등이 그것이다. 토해는 토끼고기, 녹해는 사슴고기, 탐해는 소의 어깨살, 치해는 꿩고기, 담해는 돼지고기나 노루고기로 담근 젓갈이다. 이 중 토해와 녹해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 있다. 또 담해는 한국고전용어사전이 “돼지나 노루 고기를 이용해 만든 젓갈”로 설명한 반면 표준국어대사전은 “쇠고기를 썰어 간장에 넣고 조린 반찬”이라..
정치에 대한 기대가 본래 낮았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온 국민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참사의 아픔을 나누고 있는 와중에, 정치인들은 그저 권력 유지를 위한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 소시오패스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수많은 희생자들 앞에서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감언이설과 책임 회피로만 일관할 수 있을까 싶다. SPC그룹의 청년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 앞에서 표명한 애도가 무색하게, 기업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무력화를 논의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올여름 폭우 속에서 참사를 피하지 못했던 반지하 주택 일가족의 죽음은 이들에게 더 이상 기억조차 되고 있지 않는 듯하다. 기만을 일삼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국가가 얼마나 무능해질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