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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을 둘러싼 의문. 움베르토 에코는 어느 강연에서 “옛날 중세 사람들도 의 ‘천국편’이 재미없었을까” 물었다. 현대인이 보기에 ‘지옥편’은 흥미진진한데 ‘천국편’은 지루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세 사람들은 ‘천국편’도 재미있었으리라”는 것이 에코 선생의 결론이다. 명색이 중세 학자니 다른 결론을 내기도 어려웠으리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19세기 말 미국에서 온 호레이쇼 뉴턴 앨런은 을 썼다. 당시 지배층 엘리트(우리 식으로 ‘양반’이라 부른다)에게 조선의 볼거리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양반은 ‘학춤’ 공연을 보여주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지루한 시간은 처음이었다”고 앨런은 썼다. 선교사에 의사에 외교관에 브로커까지, 인생이 심심할 틈 없던 앨런이니 학춤 공연이 지루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 한국 ..
출발은 ‘자유’였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에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월18일 언론 자유를 강조하며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실제 윤 대통령은 입만 열면 ‘자유’를 얘기한다. 취임식, 광복절, 유엔총회 연설에서 수십 차례 ‘자유’라는 낱말을 반복했다. 대학교수 아들인 데다,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검사 출신에 정치 경험 없이 단번에 대통령이 된 윤석열. 그가 입에 달고 사는 ‘자유’의 개념은 대체 무엇일까. 윤 대통령 취임 6개월이 지났는데 그 자유가 뭘 말하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잘 모르겠다. 적어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다짐은 말뿐이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고등학생의 정권 풍자 만화가 불편하다고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엄중 경고를 내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과거 발..
대통령 소속으로 2018년 설립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의혹이 제기되는 군인의 사망사고에 대해 진정이 접수되면 이에 대해 조사해 진상을 밝히고 국방부에 필요한 요청을 하는 기구로서 내년 9월13일까지 활동한다. 작년 7월부터 위원회가 직권으로 조사를 개시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위원회는 남은 활동기간 동안 사건을 잘 조사해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유족의 억울함과 망인의 한을 풀어드리고자 한다. 위원회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군이 제대로 예우하지 않은 안타까운 죽음을 수시로 만나게 된다. 군에서 책임을 져야 하고 순직으로 예우해야 할 죽음이건만 일반사망으로 처리된 분들이다. 그때마다 위원회가 직권조사를 개시하고 있으나, 그 범위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행여 조사 개시만 하고 10개월밖에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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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최근에 확실히 알았다. 축농증이나 비염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닌데 코가 아니라 자꾸 입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운동 코치가 내가 숨을 잘 못 쉰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숨, 특히 날숨이 짧다는 지적을 한 적도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세월호 직후 108배와 명상을 할 때도 나는 내 호흡이 짧고 불안정하다고 생각했었다. 아, 나는 왜 숨쉬기조차 제대로 못하는 것일까? 에 나오는 도를 체득한 사람, 진인(眞人)은 잠을 자도 꿈꾸지 않고, 깨어서도 근심이 없다. 그는 먹을 때는 맛있는 것을 구하지 않고, 대신 숨쉴 때는 깊고 고요했다. 거의 숨쉬기만으로도 생명을 유지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보통 사람은 목구멍으로 숨을 쉬지만, 진인은 발뒤꿈치로 숨을 쉬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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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신갈IC 부근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하 세계는 공상과학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공간이다. 지상에서 쫓겨난 범죄자나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장소로 많이 묘사된다. 첨단기술이 발전한 지상과 달리 지하는 과거에 머문 구시대를 뜻한다. 영화 에서 보여준 것처럼 지상과 지하는 빈부가 갈리는 양극화의 상징으로도 쓰인다. 국토교통부가 ‘도시지역 지하도로 설계지침’을 개정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지하도로에서 차량이 시속 100㎞로 달려도 안전하도록 터널 높이를 높이고, 직진성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상하수도와 가스관 등 지하시설은 대부분 지표 5m 이내인데, 최근 지하개발은 40m 이상 대심도(大深度)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개통한 신월여의지하도로와 서부간선지하도로는 지하 70~80m에 건설됐다. ..
지난 10월15일 분당 데이터센터 화재로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업무용 소통수단인 카카오톡과 다음 메일이 불통돼 모든 국민들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모빌리티 기능도 마비돼 이를 통해 주문, 택시호출, 결제 등의 거래를 하는 농민, 소상공인, 택시기사 등 사업적 이용자들도 상당한 영업 손실을 입었다. 플랫폼 독점의 위험과 폐해를 체감할 수 있었던 사건이다. 카카오에 대한 불신으로 270만명이 다른 메신저로 이동했지만 180만명이 하루 만에 돌아왔다고 한다. 카카오에서 활동했던 단톡방, 거래내역 등의 데이터를 가지고 이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데이터의 호환성, 이동성을 보장해 주는 기술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잠금(lock-in)’효과로 독점이 더 공고해지는 것이다.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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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있네.” 얼마 전 대통령실 대상 국정감사장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김은혜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나눈 필담의 내용이다.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타이밍에 내뱉은 ‘잘못된 말’ 한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공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었다는 점이 그렇고, 전 국민을 비통에 잠기게 한 이태원 참사에 관한 질의가 이루어지는 시점이었다는 점이 그렇다. 한마디로 적절치 못한 단어였다. 김은혜 수석이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사과하였지만, 야당은 국회 모독이라고 과장된 공세를 이어가고 여당은 이들을 퇴장시킨 주호영 운영위원장의 처사에 대한 불만으로 자중지란에 빠진 모습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하는 꼴이 정말 웃기고 있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던진 말 한마디가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천계영의 만화책 오디션을 읽었을 때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드러머가 방에 누워 시곗바늘 소리와 자신의 심장소리, 여러 소리들을 들으면서 시간을 쪼개고 박자를 쪼개던 장면. 그가 가장 좋아하던 소리는 자신이 엄마를 껴안을 때 두 심장이 마주하여 만들어지는 불규칙한 리듬이라고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청진기를 가져다 대려고 할 때마다 이 장면이 떠오른다. 나도 이렇게 심장소리, 공기가 기관지를 통과하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청진을 할 때 눈을 종종 감곤 한다. 하나의 감각을 차단하면 다른 감각이 좀 더 예민해지는 느낌이 들어, 소리에 좀 더 집중하고 싶을 때 눈을 감는다. 너무 피곤할 때는 청진을 핑계로 살짝 눈을 감고 피로를 달래보기도 한다. 눈을 감고 심장소리에 집중하고 있을 때, 두근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