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현 (한양대교수.역사학) 2009-03-27 1996년이니 이미 10년도 지난 옛일이다. 폴란드에 삶의 둥지를 틀고 있던 나는 그해 가을 벨라루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로드노 대학에서 강연을 마치고, 차로 두세 시간 거리의 노보그로덱에 있는 폴란드의 대문호 아담 미츠키에비츠의 생가를 둘러보고 오는 길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이 마침 '고기 없는 날'이라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아 배를 쫄쫄 굶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당시만 해도 폴란드에서는 이미 사라진 현실 사회주의의 결핍의 유제를 벨라루스에서 경험했던 것이다. 그러나 배고픔보다 더 생생한 기억은 슬라브 벽돌로 조잡하게 갓 지은 집들이 길가에 줄줄이 늘어선 새로운 정착촌들이었다. 동행한 그로드노 대학의 친구에게 물으니, 체르노빌의 원자력 ..
ㆍ2부-(8)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한국…새로운 우상 : 민영화 박재현기자 이명박 정부만 공기업 때리기 한다? 한국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의 통합을 반대하는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는 경기 성남시 한국토지공사 입구. 아니다. 공기업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 글을 보자. “시장경제 체제의 성숙과 함께 공공사업 부문에 대한 기능 재조정의 여건이 갖춰졌음에도 공공기관은 지속적으로 비대해지고 방만해지면서 국가경제의 효율적 작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현재 예산규모로 국내총생산(GDP)의 33.6%를 차지하고 있는 공공부문에 대한 개혁 없이는 대한민국이 선진화 단계로 도약하기 어렵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서 보듯이, 많은 공공기관이 경영 실적과 상관없..
ㆍ2부 - (8)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한국…새로운 우상 : 규제 완화 박재현기자 김대중 정부는 1999년 1월 아파트 분양가 규제조치를 전면 해제했다. 전국의 모든 아파트의 분양가는 건설사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외환위기가 터지자 시중 여유자금을 주택시장에 흘러들게 해 수요를 늘려 경기부양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같은해 3월에는 수도권 분양권 전매 규제도 풀었다. 소형주택 의무건설비율, 재당첨 금지제한 기간도 사라졌다. 1가구 2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도 일시 면제했다. 정부는 이런 조치로 아파트 물량공급이 늘어나 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그해 여름부터 서울 강남과 분당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급등했다. 많은 지역에서 아파트 ..
· 2부-(7) 정글에 던져진 교육 이병곤|런던대학교 교육연구대학원 박사과정·교육철학 경쟁아닌 것 무가치하다는 고정관념 인간에게는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 강하게 작용한다. 자신의 믿음이나 경험을 뒷받침하는 정보는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속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서울 강북의 한 중3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한국 사회가 집단 최면처럼 ‘선택적으로 지각’하고 있는 믿음이 바로 ‘경쟁 신화’이다. 경쟁은 효율과 발전을 담보하는 부동의 지렛대였다. 그 믿음이 수십년간 철저하게 교육에 투영된 현실이 바로 우리의 입시지옥이다. 2009년 2월3일 영국의 가디언 신문은 ‘백인 중산층 가족이 명문 대학을 지배하다’라는 제목 아래 큼지막한 기사 하나를..
· 2부-(7) 정글에 던져진 교육 최민영·임지선기자 한국 교육에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도입된 것은 산업구조의 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는 수출주도형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웃 중국이 저렴한 임금을 무기로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며 한국의 수출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 공산품의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졌다. 한국정부는 이에 정보기술(IT)산업 및 서비스산업을 위주로 하는 국가인재 전략으로 교육체제 개편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95년 ‘5·31 교육개혁안’이다. 95년 김영삼 정부 때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가 발표한 이 계획의 핵심은 ‘경쟁’과 ‘수월성’이다. 쉽게 말해 엘리트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
ㆍ2부 - 7 정글에 던져진 교육 최민영·임지선기자 신자유주의에 휩쓸린 한국 교육 ‘교육은 곧 시장과 경쟁이다.’ 이명박 정부가 학교교육의 이념을 바꾸고 있다. 보수주의 교육혁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나라 영국과 미국을 벤치마킹한 결과이다. 마거릿 대처 영국 정부는 교육을 대대적으로 손댔다. 1980년대 영국을 강타한 경기침체의 원인을 정체된 교육제도가 초래한 학력저하 때문이라고 진단한 데 따른 것이었다. 자연히 해결책은 ‘경쟁’과 ‘선택’이었다. 일제고사를 실시했다. 학교별 순위도 공개했다. 학부모에게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이유였다. 이명박 정부의 일제고사·학교정보공시제·고교선택제 및 ‘고교 다양화 300’, 국제중학교 정책과 닮았다. 국제중학교 설립에 찬성하는 시민과..
ㆍ2부-(6) 벼랑 끝에 몰린 복지 오건호 | 사회공공연구소 실장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자로 임금을 받고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가족의 생계를 임금에만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로부터 보육료로 50만원을 지원받는다면 그만큼 임금이 오른 것과 같다. 민간의료보험에 10만원을 내야 받을 수 있는 혜택을 건강보험에 4만원만 더 내 얻을 수 있다면 가계소득을 6만원 늘린 것과 같다. 서구 노동자들은 우리보다 안정적으로 생활한다. 그들 역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은 많지 않지만, 사회로부터 다양한 복지를 얻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회사(노동시장)에서 얻는 소득이 ‘시장임금’이라면, 보육지원금, 노인요양지원금,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 기초노령연금 등 사회적으로 얻는 수혜는 ‘사회임금’이라 할 수 있다. 복지를..
ㆍ2부 - (6) 벼랑 끝에 몰린 복지 송진식기자 지난 12일 경기 과천시 정부종합청사 앞. 전국 지역아동센터협의회 회원 50여명이 피켓을 들고 있었다. 정부의 추경예산 편성을 앞두고 지역아동센터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센터 운영의 정상화를 위해 추경에 351억원을 추가로 배정해달라”고 호소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에서 가난으로 숨진 사람들을 위한 추모집회를 열고 있는 민주노총과 전국빈민연합 회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역아동센터란 방과 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빈곤·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보육기관이다. 경제 형편이 어려워 부모가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가정이나 결손가정의 아이들에겐 끼니도 해결하고 공부도 하는 곳이다. 공공 보육체계가 부실한 한국에서 절실한 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