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사실상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대중음악인이 웬 문학상, 그것도 천하의 노벨 문학상을?” 하고 놀랄 법도 한데 놀라기는커녕 “음, 언젠가 그럴 줄 알았지” 하고 말았다. 스웨덴 한림원이 노렸듯이 논란을 일으킬 만한 파격은 파격이되, 아는 사람은 누구나 예측 가능한 다소 ‘뻔한 파격’이었다고 할까? 내가 아는바 미국에는 일찍이 ‘딜런학(Dylanology)’이라는 학문이 있었다. 이 학문은 1960년대 전성기를 누린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의 가사와 철학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보다 지적으로 ‘으쓱’하고픈 대중문화인, 혹은 대중문화 애호가를 위한 것이며 그쪽 방면에서 밥벌이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 같은 것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2002년이었고 12월이었다. 때는 차은택이 진실로 잘나가던 때였다. 감각적인 영상 세대의 리더로서 웬만한 록스타보다 추종자가 많았고 12월의 대선후보만큼이나 바빠서 짬 날 때마다 아무 데나 기대어 쪽잠을 자야 할 판이었다. 회의하기 전 30분, 촬영하기 전 30분, 차 안에서 20분…. 그렇게 잠깐씩만 자는 일중독자였다 그는. 그 때문에 첫 번째 인터뷰 스케줄을 펑크 내고 두 번째 만나러 갔는데 그때도 그는 1인용 소파에서 곰인형을 끌어안고 웅크려 자고 있는 덩치 큰 남자의 모습이었다. “왜 그러고 사세요?” 그때 나의 첫 번째 질문이 그랬다. “좋으니까요. 이건 좋아서 미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일이죠. 전 일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난 그가 좀 애처롭다고 생각했다..
지난 추석 연휴 전날이었다. 우리는 ‘영악’하게도 바라는 것도 없이 열심히 일해주는 시댁 식구들의 노동력을 거저 확보하자는 욕심에, “연휴 동안 놀면 뭐하냐”며 “보람차게 다 같이 마당에 잔디나 깔아보자”며 부부가 함께 잔디를 사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횡단보도 앞에서 한 노인이 유령처럼 나타나 자동차 뒷문 손잡이를 잡고 매달렸다. 태워달라고. 그 모습이 하도 절박해 보여서 그냥 태워드렸다. 어디까지 가시는지 묻지도 않고…. “미안해. 염치 불고하고 무작정 태워달라고 해서…. 너무 아파서 그랬어. 그러니까 너그럽게 좀 용서해줘요. 그냥 딱 죽고 싶을 정도로 아픈데 내일 자식들이 온다잖아. 자식들 앞에서 아프다고 울 수도 없고. 그래서 연휴 닥치기 전에 병원 가서 주사라도 한 대 맞고 물리치료라도 좀..
도시에서의 삶은 바쁘다. 미쳐 버릴 정도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헛헛하다. 이유는 모른다. 여하튼 할 일 많은 걸로 헛헛함을 잊고 있을 뿐 그 헛헛함은 마치 신발 속의 깔개인 듯 도시 생활 속에 늘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다 한 번씩 못 견디겠다 싶을 만큼 외로워진다. 진탕 술이라도 퍼마셔야 할 것 같은 날. 아님 온라인 쇼핑몰에서라도 충동구매를 충족시키든지…. 결핍감 때문이다. 술이라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결핍감. 그런데 다행이다. 그 와중에 ‘식물’에게서 위로를 찾는 이들이 요즘 부쩍 많아졌다. 식물에게 물을 주며 헛헛하거나 건조한 도시 생활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 심지어 식물을 구매하고 키우는 일이 일종의 트렌드가 아닌가 싶다. 요즘은 살짝 시들해진 ..
난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노동자로서의 예수를 사랑한다. 하지만 덮어놓고 육체 노동을 신성시하는 부류를 어떤 면에서 가장 경계하고 의심한다. 일보다는 여가를 사랑하는 러셀주의자랄까? 러셀 말대로 삶 그 자체보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 의해 우리 인류가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해왔고, 그 때문에 이 세상이 되레 더 나빠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나는 되도록 러셀의 충고에 따라 살려고 했다. 아예 모니터 위에 이런 내 마음의 강령을 적어 놓고 일했다. ‘조직으로 일을 줄여야 한다!’ 후배는 물론 심지어 상사에게도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강권하고 싶었다. 당연히 잘렸다. 17년 동안 그럭저럭 버티긴 했지만 결국 잘려 나갔다. 억압적인 위계 시스템에 버럭버럭 소리 ..
전 세계가 스마트폰 생방송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소식 때문일까? 며칠 전부터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해적 방송 DJ로 출연하는 영화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맞다, . 때는 1990년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회원 가입만 하면 누구나 자기만의 방송을 만들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전학 후 외톨이가 된 마크는 아버지가 사준 무선 통신기로 밤마다 정체불명의 DJ 하드 해리가 되어 가슴에 응어리진 말들을 토해낸다. “솔직히 기대할 일도 존경할 인물도 없는 이 날쌘 시대를 사는 게 지겹다고요. 제기랄, 안 그런가요? 이런 암흑 같은 생활이 당신을 미치게 하잖아요. 그러니까 뭐든 미친 짓을 해보자고요. 신나게, 창조적으로….” DJ 하드 해리가 하는 말들이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움츠려 있던 내 청춘의 심장을 얼마나 ..
한때 ‘밥벌이의 지겨움’과 함께 ‘낭만적 밥벌이’란 말도 유행했다. 지겨운 일이지만 ‘도리’ 없이 해야 하는 일이 ‘밥벌이’라고, 기성세대는 말하고 청년세대는 ‘세상에는 낭만적 밥벌이도 있다’고 대답했다. 같은 제목의 책도 나왔다. 로 동인문학상을 받은 김훈이 에세이 을 낸 건 2003년이었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조한웅이 ‘어느 소심한 카피라이터의 홍대 카페 창업기’라는 부제를 단 책 를 낸 건 2008년이었다. 누군들 ‘밥벌이’가 지겹지 않을까? 그래도 ‘대책이 없다’고 하니 목이 멘다. 때로는 눈물도 난다. 상사든 클라이언트든 남의 눈치 안 보고 느긋하게 자기만의 사업장에서 우아하게 음악이나 틀고 커피나 내리면서 ‘밥’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청년 구직자와 퇴직자의..
짧은 여행이 아니라, 제주에서 한동안 살아보는 ‘제주 한 달 살이’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이해한다. 이효리처럼 아예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길 수는 없지만 한동안 체험해 볼 수는 있다. 매일매일 바다를 보는 삶.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다가 동네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삶. 텃밭을 가꾸고, 시장에 가고, 시장에서 사온 싱싱한 바다 먹거리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제주식 킨포크 라이프. 그런데 방이 없단다. 그 많은 ‘한 달 살이 달방’이 연초에 예약이 끝났을 정도다. 방학 시즌 월세가 무려 150만원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그조차도 올해는 끝나고 내년 시즌에나 입주가 가능하다고. 그런 가운데 ‘제주 한 달 살기’ 유행에 맞추어 분양과 동시에 월 단위 임대 서비스를 시작한 곳도 있어 살펴보니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