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저널리즘의 거장 마시모 비탈리(Massimo Vitali)가 찍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인파로 장관을 이루는 해변 풍경이다.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름난 여름 해변 풍경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온갖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품는 동시에 그것이 나의 현실이 아니라 그저 남의 이야기이고 또 사진이라는 사실에 이상하게 안도하게 된다. 그보다 더 잔인한 작가도 있다. 여행이나 휴가에 대해 누구보다 더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마틴 파(Martin Par)의 사진을 보면 안도감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해방감이 느껴진다. 진저리 칠 정도로 평범하고 재미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마틴 파는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에서 기가 막히게 재미난 사진을 뽑아내는 작가로 알려졌는데 특히 유명 관광지와 휴양..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단칼에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 참 기뻤다. “입만 열면 4차 산업혁명 이야기하는 안철수는 4차 산업혁명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다. 4차 산업혁명은 실업자를 대량생산하는 산업이다. 국가의 주도적 대비가 필요한 이유이다.” 얼마나 좋던지…. 안철수 후보가 자기만 잘 알고 있는 세계인 양 TV 토론에서 주야장천 ‘4차 산업혁명’ 얘기하는 게 참 듣기 싫던 차였는데 팟캐스트에서 도올 김용욱이 이렇게 속시원하게 발언해 주니 좋았다. 역시 ‘우리 시대 최고의 석학 도올다운 명석한 해석’이라며 박수를 쳤다. 그렇다. 누구의 발언이든 간에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있다. 누구보다 우리 아이들이 로봇에게 일자리를 뺏긴 상황 속에서 ..
10년 전만 해도 가장 경탄할 만한 상업 공간으로 라스베이거스의 베네치안호텔이 꼽혔다. 그곳은 라스베이거스의 다른 호텔들처럼 호화로울 뿐만 아니라 특유의 모방과 복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에 달해 있다. 베네치안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건축물과 장식을 거의 똑같이 옮겨 왔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진짜 베네치아는 아예 잊으라. 베네치안호텔이 한결 낫다”고 말할 정도였다. 리알토 다리나 콘타리니 궁전은 물론 대운하와 곤돌라 사공의 노랫소리, 심지어 20m 높이의 성당 천장에 드리워진 베네치아의 엷은 보랏빛 하늘까지 옮겨 왔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넋이 나간 듯 “세상에 저게 왜 여기에 와 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진짜 베네치아처럼 역한 냄새가 없어서 좋았다. ..
대중음악인에게 최초의 노벨평화상이 주어진다면 이 여자가 받아야 마땅하다. 생존하는 세기의 ‘걸크러시’ 패티 스미스. 밥 딜런과 함께 2017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라야 마땅했을 만큼 문학적인 재능이 남다른 음악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밥 딜런처럼 거만하지 않다. 애매모호한 가사로 심오한 척하지도 않는다. 성품은 강건하되 겸손하고 메시지는 한 편의 저항시인 듯 분명하되 아름답다. 그런 그녀가 2009년 생애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여 지산록페스티벌에서 부른 노래가 있다. 노래하는 저항 시인으로서의 삶을 밥 딜런처럼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 40년 인생을 대표하는 곡 ‘피플 해브 더 파워(People Have The Power)’. “우리에게, 사람들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그러니 “..
얼마 전 잘 알고 지낸다고 생각한 지인으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다. 지금껏 살면서 투표권을 행사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이번에도 자신은 투표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정치인들에 대한 우리 모두 공감할 만한 불신과 혐오감을 감안하더라도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너무도 당당한 그 태도에 말문이 막힐 정도로 당황하고 말았다. 어느새 오십의 나이였고 일하는 여자였다. 백화점의 이른바 명품 매장에서 일하는 용모 단정하고 야무진 성격의 꽃중년 여성. 산전수전 다 겪었을 것 같은 매니저급이었지만 ‘까칠한’ 부하 직원 때문에 때때로 울기도 하는 여자였다. 취향이랄까 가치관이랄까 뭐 그런 걸 공유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난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적어도 인간에 대한 ..
모두가 저마다의 분주함의 무게에 짓눌려 살고 있다. 쫓기듯 밥을 먹고 허둥지둥 회사에 가서 각자에게 주어진 그 많은 일을 한다. 그러다 문득 궁지에 몰리기도 한다. 그래도 숨을 곳이 전혀 없다고 느낀다. 의문도 든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토록 실속 없이 바쁘게…, 무의미하게….”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없고 가슴만 답답하다. 그래도 꾸역꾸역 밥을 먹고 일을 한다, 미련하게…. 산다는 게 이렇게 지긋지긋한 것인가 하는 절망감에 몸서리치다가 삶을 막 대하고 싶은 ‘나쁜 생각’마저 하게 된다. “에라, 이놈의 미련한 몸 교통사고라도 좀 나라. 그러면 병원에 실려 갈 테고, 그러면 한동안 맘 편히 쉴 수 있지 않겠나?” 뭐 그런…. 하지만 교통사고라는 ‘불운’도 아무에게나 생기는 일이 아니어서 짐..
얼마 전 41세의 노르웨이 여자를 알게 됐다. 서면을 통해 알게 된 그녀는 현재 방콕에 거주하며 전 세계를 여행하는 멋진 보헤미안이었다. 그런 그녀가 4월에 한국에 온다. 특별히 한국에 와야 하는 이유는 없다. 단지 인터넷을 통해서 강원도에 머물고 싶은 숙소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홀로 12박이나 머물며 컴퓨터로 일도 하고 충분한 휴식도 취할 거라고 했다. 그녀가 예약한 곳은 대체로는 4월까지 눈이 오는 곳이다. 늘씬하게 키가 큰 낙엽송 숲이 마치 집에 딸린 정원인 듯 인접한 강원도의 소박한 시골집. 그 풍경이 마치 자신의 고향 노르웨이처럼 애틋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자기 눈에는 그 민박집이 너무도 사랑스럽게 보인다고 했다. ‘자연’적이고 쉴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고 ‘아취’랄까 ‘우아’랄..
답답할 때마다 이재명을 찾아보거나 듣는다. 그게 요즘 내 취미가 됐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 이재명의 ‘핵사이다’ 발언. 유튜브에 많고 많은 것 중에 하나를 골라 보거나 듣고 있으면 역시나 가슴이 뻥 뚫린다. 국가를 철저하게 모독하고 국민을 개·돼지로 우롱한 자들이 아무리 뻔뻔한 거짓말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도,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청문회와 국회가 아무리 지지부진 시들해 보여도 이재명을 통해 보면 다시금 활기를 되찾게 된다. 예컨대 “돌 맞아도 할 얘긴 해야겠습니다”라는 부제와 함께 올라온 이재명의 경북 구미 거리강연 동영상을 한 번 보시라. 이 모든 것이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박정희 때문이라는 뼈아픈 자각 속에서 이제 정말 그를 떠나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