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대선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포부와 이상, 그리고 그 실현 방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발언을 아직 들을 수 없다. 참으로 답답하다. 물론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신기하게도 여야 가릴 것 없이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복지국가를 들먹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이러한 원론 수준의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누구든 듣기 좋아할 만한 언설일 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공허한 이야기이다. 하기는 찰나적인 대중적 인기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극장정치’의 시대에 시대상황을 정확히 읽고 그것을 설득력 있는 정치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식견과 능력을 갖춘 정치지도자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지..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옛 중국의 사회적 위계질서는 엄격했다. 수많은 백성 위에 관료가 있었고, 관료조직의 정점에 대신(大臣), 그리고 그 위에는 말할 것도 없이 황제가 존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황제 위에 또 누군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한 존재를 후세인들은 일민(逸民)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는 황제의 권력 바깥에 있는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군주의 권력행사는 신하를 자처하는 자들의 협력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일민’이란 말하자면 그 신하됨을 거부한 인간이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것이 가능했으나 동시에 온갖 시련과 불이익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중국 역사상 대표적인 ‘일민’은 아마 시인 도연명(陶淵明)일지도 모른다. 그는 동진(東晋) 사람으로 지방..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평소에 자기의사를 명확히 잘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데모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1960년 안보투쟁 이후 50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대규모 항의집회가 지금 일본의 주요 도시들에서 가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문이다. 그러나 ‘사요나라 원전’이라는 슬로건 밑에서 진행되는 이 데모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보다도 사고 1년이 넘은 지금 훨씬 더 강도 높게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 데모에 익숙한 한국인들의 감각으로는 일본의 데모가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른다. 또, 그동안 일본이라고 해서 가두에서 전혀 시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흔히 극우단체들에 의한 시대착오적인 일탈행동의 표출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양심적..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여당 대선 후보가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선거용임을 감안하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헛소리로 끝나게 될 말이라 할지라도 정치가가 선택하고 사용하는 언어에는 그 자신의 세계관이나 현실인식이 얼마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차기 집권의 가능성이 높은 유력 후보가 ‘국민의 행복’을 언급한 것은 어쨌든 다행스럽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국민의 80%가 불행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절망적 현실을 적어도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행복’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면, 단지 미래의 일로 약속만 할 게 아니라 집권을..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소속 전문가들에 의한 고리원전 1호기 안전점검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들은 발전소의 ‘안전문화’에는 문제가 없지 않지만, 설비상태는 양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후쿠시마 이후 안전성 강화 대책이 착실히 이행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런 발표에 반발할 지역주민이나 탈핵활동가들을 의식해서인지 이들은 또한 자신들이 한국 원전당국의 ‘들러리’가 아니라 ‘독립적인 전문가’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환영해야 할 뉴스이다. 고리원전 상태에 대한 심각한 불안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 한국의 원전당국은 평판이 매우 나쁜 고리원전 문제를 ‘국제기구’의 도움으로 척결하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라는 책이 출판된 것은 1972년이었다. 이 책은 현재의 추세가 그대로 계속된다면 2020∼2050년 사이에 인구, 산업 및 식량생산, 자원공급과 환경오염이 한계에 도달하여 더 이상 근대적 산업문명 체제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데이터를 근거로 예측했다. 이러한 예견(혹은 경고)은 당시의 상황에서 매우 충격적인 것이어서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그 후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은 지금까지 1000만부 이상이나 팔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다시 이 책이 화제가 된 것은 출판 40주년을 기념하여 ‘스미소니언 협회’가 주최한 심포지엄 때문이다. 지난 3월 워싱턴에서 열린 이 모임에는 저자들 중 아직 생존해 있는 두 사람이 참석했..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총선 결과는 실망스럽기 이를 데 없다. 선거란 무엇보다 집권세력의 공죄를 준엄하게 심판하는 행위여야 하고, 그 심판은 민주주의의 존속에 불가결하다. 이것은 초보적인 진실이다. 그런데 딴 것은 젖혀두고, 현 정권은 민간인 사찰 문제 하나만으로도 엄중한 정치적 단죄를 받아야 마땅했다. 사찰이란 민주주의를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가장 비열한 통치 방식이다. 개인적 약점을 캐내 정치적 저항이나 반대 목소리를 침묵시키려는 게 ‘사찰’의 동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짓을 끊임없이 자행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는 상황에서의 선거였음에도, 집권세력이 또다시 국회 제일권력을 차지하는 기이한 사태가 발생했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침체를 보여주는 서글픈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이번 선..
‘발틱해운지수’라는 게 있다. 석탄, 철광석, 곡물을 비롯하여 설탕, 철강제품, 비료, 목재, 시멘트 등 산적(散積) 화물을 운반하는 부정기 외항선의 운임 동향에 관해 런던의 해운관계기관에서 매일 발표하는 수치이다. 이 수치는 세계경제가 몇 달 혹은 몇 년 뒤 어떻게 될지 미리 알려주는 경기 선행 지수가 될 수 있다. 화물선 운임 결정 요인은 기본적으로 세계 전체의 산업활동 상황에 달려있다. 석탄, 철광석, 곡물 등은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을 뒷받침하는 기본 원료이다. 당연히 산업이 활발하면 원료를 운반하는 선박의 운임이 높아지고, 저조하면 선박의 운임이 낮아진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는 ‘발틱해운지수’가 지금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1985년에 지수 1000으로 시작하여 2008년 5월에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