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관련 ‘괴담’이 떠돈다며 단속·처벌하겠다는 총리의 의지가 표명됐다. 대체 ‘국민행복을 저해하는 괴담’이 뭔지 들여다보니, 일본 국토는 절반 이상 방사능으로 오염됐다, 혹은 위험한 일본산 수산물은 먹지 말아야 함에도 현재 한국으로 대량 반입되고 있다 등등, 실은 내 자신이 여러 곳에서 공개적으로 해왔던 이야기들이다. 앞으로는 정부나 원자력 마피아, 사이비 언론의 말만 듣고 조용히 입 닫고 살아야 할까?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인가? 어쩐지 으스스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년 반, 충격과 슬픔, 분노 속에서 지냈다. 사고 직후 멍하게 있다가 닥치는 대로 자료를 찾아보던 중 어쩐지 이 사태가 체르노빌을 능가하는 세계적 대재앙이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 두 명이 사망자로 파악됐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시아나 여객기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사고를 보도하면서 어느 종편 텔레비전 앵커가 했다는 ‘멘트’이다. 항공기 사고란 대개 대참사로 이어지기 쉽고, 항공여행은 현대인에게는 불가결한 이동수단이다. 따라서 항공기 사고는 폭발적인 뉴스가 되기 쉽다. 더욱이 이번에는 대규모 인명 피해는 면했지만 비행기가 불타고 대파되는 큰 사고였다. 그 와중에서 정신없이 보도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멀쩡한 사람도 이성을 잃는 경우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저 ‘멘트’는 너무도 난폭한 발언이었다. 이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건 인간으로서 할 만한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고로 ..
꼭 30년 전 미국이라는 나라에 난생처음 가서 대학원에 등록을 하고, 록펠러가 지어줬다는 건물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야간수업을 듣고 제일 늦게 방을 나서던 나는 전등을 끄고 나오기 위해서 스위치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스위치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강의 시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궁금해서 옆방에 가보았다. 거기도 스위치 같은 것은 없었다. 웬일일까? 나중에 들으니, 건물 전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전기는 중앙변전소에서 통제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밤낮없이 강의실이건 연구실이건 전기를 켜놓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황당하고도 충격적인 뉴스였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전기란 공기 같은 것, 즉 건물 속에 들어가면 그냥 늘 있는 것이어서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고전적인 교양소설 에서 괴테는,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면 날마다 몇 가지 일을 습관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훌륭한 그림을 적어도 하나는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루 중에 이치에 맞는 말 몇 마디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치에 맞는 말 몇 마디’라는 말에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은 ‘가능하다면’이라는 유보적 표현이다. 즉, 괴테는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이치에 맞는 말’을 듣거나 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괴테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18세기 독일사회의 ‘후진성’에 대해서 그가 치를 떨었다는 얘기가 된다. 원래 ‘교양’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떤 점에서 독..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지금 세계는 전대미문의 복합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위기, 석유 및 각종 자원이 값싸고 풍부하게 공급되던 시대의 종식, 광범위한 농경지 축소 혹은 사막화, 근대적 금융통화제도의 파탄과 세계 동시 채무위기, 사회적 격차의 심화, 걷잡을 수 없는 실업률과 범죄의 증가 등등, 인간다운 삶의 지속을 근원적으로 위협하는 사태 앞에서 인류사회는 현재 속수무책이다.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도 믿지 않는 헛된 공약을 남발하며 임시미봉책에 골몰할 뿐, 미래에 대한 신뢰할 만한 장기적인 비전을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무능력의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답한다면, 아직도 그들이 성장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져보면, 오늘의 이 위기상황은 유한한..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서글픈 선거 결과이다. 어차피 합법적인 경쟁이니만큼 비록 내가 원했던 결과가 아닐지라도 평정심을 잃지 말고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하기는 또 누가 아는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났건만 여전히 울적하고, 허망한 기분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왜 이럴까. 5년 전에는 보나마나 뻔한 결말이었기 때문인지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는 실패한 정권은 심판받는 게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부합한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은 성격이 전혀 다른 선거였다. 이번 선거의 독특한 성격은,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한, 박정희 ..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번개시장에는 번개가 없고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국화빵에는 국화가 없고 정치판에는 정치가 없네 이것은 작고한 시인 이선관이 쓴 ‘없다’라는 시의 전문이다. 절로 웃음이 나는 유머러스한 작품이지만, 그러나 생각해보면 매우 심각한 ‘진실’을 내포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선관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그는 비근한 일상적 경험이나 하찮은 사물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투박한 언어로 언급하다가 의외의 순간 시대와 사회의 근본 모순과 어둠을 비수처럼 날카롭게 폭로하는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가로수에 전등을 달아 거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장면 앞에서 시인은 돌연 나무들의 편이 되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시여/ 당신 아들 탄생도 좋..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웃기는 소리지만, 예순을 넘긴 이 나이에도 군복차림에다가 군모를 쓰고 있는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깨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젊었을 적에 특별히 험한 군대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악몽’이 아직 따라다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출생 이후 내 최초의 기억은 대개 6·25 전란과 관계되어 있다. 남해의 어떤 섬 해변에서 굴비처럼 철사에 묶여진 사람들의 시체가 떠밀려 와 있는 기괴한 모습을 본 기억, 그리고 피란에서 돌아온 뒤에도 밤만 되면 어딘가에서 터지는 포탄의 굉음에 짓눌려 지낸 기억 따위가 그렇다. 그러나 당시 네다섯 살짜리가 겪은 이 단편적인 장면의 의미를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중에 커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보면서였다. 보도연맹이니 빨치산이니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