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7일 아침이었다. 그는 모욕을 받았다. “여보 이 세상 당신만을 사랑해”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그는 갓 입사한 큰아들과 대학생인 둘째아들의 아버지다. 지난해 9월부터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다. 아내에게 그는 “자살할 정도의 그런 힘을 가지면 못할 게 뭐가 있느냐고 말하던” 남편이자 교회 집사다. 11월7일 아침이었다. 그는 숨을 거뒀다. 53세로 일기를 마감한 이만수씨.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아내는 장례식장에서 울며 말했다. “저희는 정말 단란한 가족이었고 남편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어요”라고. 11월20일 신현대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경비용역업체와 계약 종료를 이유로 경비원 78명을 포함한 청소원 등 106명에게 해고 예고 통보장을 보냈다. 11월24일 고용노동부는..
그녀는 더 살고자 했다. 11월1일 존엄사를 예고했던 그녀는 뇌종양 말기로 5개월 남짓 시한부 판정을 받은 29세 브리타니 메이너드. “11월2일에도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더 살겠다고 한 그녀는 발작과 통증이 심해지자 2일 오후에 임종을 선택했다. 신혼을 보낸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존엄사법이 있는 오리건주로 이사한 그녀는 결심한 대로 죽었다. “나를 사랑하는 모든 친구들과 가족에게 인사를 보낸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녀는 병원에서 치료 도중 죽거나 안락사하는 대신 가족 및 친구들과 “산책할 수 있는” 며칠을 더 살고자 노력했고 존엄하게 죽었다. 10월30일 인천 남구의 한 빌라에서 중년의 아빠 엄마와 중학생 1학년 딸의 주검이 신고됐다. “혹시라도 우리가 살아서 발견된다면 응급처치는 하지 말고 ..
흥분하면 진다. 승패가 다라면 그렇다. 상대를 흥분시키되 자신은 흥분하지 않는 기술이 이긴다. 경기나 싸움 혹은 잘못된 토론에선 이런 처세가 먹힌다. 하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는 승패를 떠난 소중한 경험과 결정적인 순간이 훨씬 많다. 고백하면 거절당할까봐 못나게 굴고 차일까봐 먼저 차버리는 꼼수로 살면 인생은 후져진다. 함께 흥분하지 못하는 불감증과 무정함이 만연하면 불행해진다. 인류 역사는 함께 흥분한 사람들이 사랑하고 응원하며 축제와 민주주의를 창조하고 향유해온 과정이다. 그것이 승리가 아니었고 불완전했으며 짧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타인의 감정에 내 감정도 같이 흥분하는 상태가 바로 공감이다. 요즘 유행대로 ‘공감 능력’이라 표현한다면 이는 이성의 힘이 아니라 텔레파시 같은 것이 통하는..
여배우는 마지막에 속삭인다. “모두 부자 되세요.” 신용카드 TV광고의 이 한마디에 복 받으라던 오랜 덕담을 너나없이 갈아치웠다. 12년 전 새해였다. 초여름엔 월드컵 ‘4강 신화’에 달뜬 남녀노소가 죄 거리에 있었다. “대한민국”을 부르는 수많은 몸들은 자유분방했고 뜨거웠다. 시민들이 만든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가 떴다. 역전의 드라마처럼 ‘바보’ 대통령이 당선된 때는 연말이었다. 이처럼 만인은 부자가 되길 소원했다. 다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지지했다. 요컨대 2002년 한국은 사방에서 욕망의 주체들이 총궐기한 기록적인 한 해였다. 알다시피 양손에 돈과 자유라는 떡을 들면 누구의 손도 잡지 못한다. 그 시절부터 세월이 흘러 아무도 내 손을 잡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을 남 탓으로 돌리자니 딱하..
“망할 세상”에서 “백성을 구하라”며 행동한 자는 누구인가? 탐관오리에게 가족을 잃은 백정 출신의 도적이다. 그의 의적 무리는 저마다 깊은 상처를 지닌 민초들이다. 330척의 왜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자는 누구인가? 조정이 고문 끝에 버린 장수다. 그의 수군은 공포에 찌든 패잔병들로 간신히 12척의 배에 올라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개국 초기 조선의 사라진 국새를 찾는 소동 끝에 나라님을 깨우친 자는 누구인가? 신하들이 아니라 산적과 해적이고 이보다는 고래다. 웨스턴 스타일의 와 정통 사극 그리고 코믹 액션 어드벤처 은 사극 대작에 흥행 돌풍이란 유사점이 있지만 이보다 더 유별난 공통점이 있다.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지키고 국새를 찾는 국가 대사를 수행해야 할 높은 자와 가진 자를 횡포와 무능으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