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7년간 복직투쟁을 해온 KTX 승무원들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이 있었다. KTX가 처음 출범하던 2004년, 공채를 통해 선발된 280명의 직원들은 당장은 계약직이지만 2년 뒤 정규직이 된다는 철도공사 측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계약만료에 의한 해고였다. 승무원들은 여기서 물러나는 대신 소송을 제기했다. “철도공사가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해고 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도 달라”는 게 그들의 요구였다. 1심과 2심은 철도공사가 그간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이 났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들이 철도공사의 직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고, 뒤이어 열린 파기환송심도 결국 원고패소로 결말이 났다. 이제 승무원들은 정규..
2006년 한 해 동안 H신문에 칼럼을 썼다. 당시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글쓰기 훈련이 덜 된 데다, 내가 쓴 글을 전 국민이 본다는 착각 때문에 그나마 있는 실력을 다 발휘하지도 못했다. 그보다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당시 대통령이 처한 현실이었다. 칼럼을 쓸 때 나름의 원칙이 있긴 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더 비판하자.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대통령보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공세가 비상식적이었으니까. 무슨 일만 하려 하면 ‘친북’ 딱지를 붙였고, 사람을 하나 쓰면 ‘코드인사’라고 거품을 물었다. 기록적인 영남편중인사를 자행하는 현 정부에 아무 소리도 안하는 걸 보면, 그들의 비판은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노무현..
“1919년, 나는 직접 만든 태극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체포되었습니다.” 교육부가 만든 국정교과서 홍보 광고는 유관순 열사의 관점에서 3·1운동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부모님이 일본 헌병에게 피살된 이야기와 서대문형무소에서 매질과 고문을 당한 이야기가 이어지더니, 갑자기 배경음악이 꺼지고 한 여학생이 뚱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검정제인 지금의 역사교과서에 유관순의 이름과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 이 광고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끝난다. 광고를 보면 볼수록 정말 잘 만들었다 싶다. 독립운동의 상징이라 할 유관순을 동원한 것도 훌륭한 전략이지만, 자신들의 약점을 국정교과서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는 그저 감탄만 ..
“김극일 (金克一)은 조선시대 김해 사람으로 부모님을 극진히 모셨다. 어머니가 종기로 고생할 때 극일은 입으로 상처를 빨아 낫게 했으며, 아버지가 병이 들었을 때는 대변까지 맛보며 간호를 했다.” 효자.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단어다. 인터넷이 없던 조선시대에도 효자에 관한 미담은 도의 경계를 넘어 전국에 회자됐고, 나라에서는 이들을 불러 표창하기도 했다. 이렇듯 효자는 해당 지역의 자랑이기도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효자의 인기가 그전만 못한 느낌이다. 여성들 사이에서 효자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데이트 도중 별일 아닌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집에 가버리는 남자를 좋아할 여자는 그리 많지 않다. 여성들은 이런 남자들을 ‘마마보이’라 부르며 경계했다. 더 큰 문제는 결혼 뒤에 발생한다. ..
김극일 (金克一)은 조선시대 김해 사람으로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었다. 어머니가 종기로 고생할 때 극일은 입으로 상처를 빨아 낫게 하였으며, 아버지가 병이 들었을 때는 대변까지 맛보며 간호를 했다.” 효자.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단어다. 인터넷이 없던 조선시대에도 효자에 관한 미담은 도의 경계를 넘어 전국에 회자됐고, 나라에서는 이들을 불러 표창하기도 했다. 이렇듯 효자는 해당 지역의 자랑이기도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효자의 인기가 그전만 못한 느낌이다. 여성들 사이에서 효자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데이트 도중 별 일 아닌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집에 가버리는 남자를 좋아할 여자는 그리 많지 않다. 여성들은 이런 남자들을 ‘마마보이’라 부르며 경계했다. 서민 교수 더 큰 문제는 결혼 뒤..
훌륭한 과학자는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다른 데 일절 눈을 돌리지 않고 실험만 잘하면 훌륭한 과학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첫째, 자신이 뭘 하려는지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둘째, 거기 맞는 인재를 모아 연구팀을 꾸리며, 셋째, 그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게 잘 관리하는 것, 그게 훌륭한 과학자가 할 일이다. 최근 출간된 는 네안데르탈인의 DNA 서열을 분석함으로써 스타 과학자가 된 스반테 페보 박사가 자신의 30년 연구인생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페보가 성공적인 연구생활을 한 이유였다. 위에서 언급한 첫째, 둘째야 남들도 웬만큼 할 수 있지만, 페보에겐 남들이 어려워하는 세 번째를 잘하는 비결이 있었다. 팀장인 페보가 일방적으로 팀을 좌지우지하는 대신..
`추석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다. 새해를 시작하는 설도 큰 명절이긴 하지만, 풍성한 수확과 함께하는 추석이야말로 몸과 마음이 좀 더 풍요로운 때다. 그래서일까. 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보고자 연휴 동안 대통령님의 장점을 찾아 헤맸다. 주변 좌파들은 “설마 장점이 있겠어?”라며 냉소했지만, 막상 찾아보니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시간을 잘 활용하게 해준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참 빨리 간다는 걸 느낀다. 10대는 시간이 시속 10㎞로 가고, 50대는 시속 50㎞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새해가 밝은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연말이곤 했다. 서유석이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라며 탄식했듯이 시간이 간다는 건 안타까운 측면이 더 많은데, 현 대통령이 집권한 ..
서른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독서는 내 삶을 180도 바꿔 놨다. 나밖에 모르고, 사회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없던 내가 이제는 사람들 앞에 서서 사회 정의에 대해 떠들고 있으니, 뽕나무밭이 바다가 된 격이다. 책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킬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독서가인 CBS 정혜윤 PD는 이렇게 말한다. “책에는 좋은 말이 많잖아요. 요즘 세상에서 책이 아니면 그런 말들을 어디서 듣겠어요? 그 말들을 듣다 보면 스스로 변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지난달,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가면서 6권의 책을 가져갔다는 게 보도됐다. 휴가지에서 책을 읽는 대통령이라니, 멋져 보인다. 그가 가져간 책들은 다 나름의 의미를 지닌 것들이다. 에 대한 해설을 보자. “1960, 1970년대 인도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