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말주변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서 아주 절박할 때가 아니면 입을 열지 않게 됐다. 학교에서 하는 회의 때 자발적으로 말을 한 적은 거의 없고 혹시 누가 내 의견을 물을까봐 전전긍긍하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말 잘하는 것에 대한 욕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잘생긴 사람보다 말 잘하는 사람이 훨씬 더 부러웠고, 특히 1~2분이면 충분한 얘기를 10분씩 하는 분들을 보면 아예 넋을 잃었다. 달변가의 꿈을 품고 혼자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말주변은 잘 늘지 않았다. 이 말재주로 방송에 나갔을 때 남들은 이렇게 날 격려했다. “너에겐 어눌한 데서 오는 매력이 있어.” 처음 박근혜 대통령을 봤을 때 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더구나 대통령은 정치인이었으니, 말을 못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을 것이다. 하..
경제학자가 내놓는 예측은 여간해선 들어맞는 법이 없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한 이유지만, 경제주체들이 꼭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이유다. 예컨대 어느 가정에서 적자가 늘어나면 씀씀이를 줄이든지, 야근이라도 해서 적자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어서 경제학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기는커녕 계속 은행에서 빚을 당겨쓴다면? 실제 이런 나라가 있다. 눈치 빠른 분들은 알겠지만 그 나라는 우리나라로, 대통령은 세금을 올리지 않는다는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바라만 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예측이 유난히 안 맞는 나라인 건 이렇듯 ‘비합리’라고 표현하기도 어이없는 선택들이 쌓인 결과다. 정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페이스북 공유하기 115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밴드 공유하기 네이버블로그 공유하기 구글플러스 공유하기 이메일로 공유하기 공유 더보기 인쇄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입력 : 2016.03.22 20:40:46 수정 : 2016.03.22 20:48:30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끝난 지 이틀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미래창조과학부가 내놓은 폭탄선언이다. 앞으로 5년간 국가가 1조원, 민간에서 2조5000억원, 모두 3조5000억원을 투자한단다. 바둑의 최고수인 이세돌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알파고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도 저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탄식하던데, 미래부의 발 빠른 선언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물론 바둑 좀 둬본 어른들에게도 큰 희망을 선사했으리..
인간과 침팬지는 DNA 서열이 98% 이상 일치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된 반면, 침팬지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DNA대로라면 침팬지도 도구와 언어를 만들고, 나름의 문명도 이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바르키와 브라워가 쓴 이란 책은 그 해답을 제시한다. 인간이 성공한 이유는 제목 그대로 현실을 부정하는 능력 때문이라는 것. 침팬지를 예로 들어보자. 무리들과 함께 어울려 놀던 ‘침팬지1’은 정신세계가 다른 침팬지들보다 약간 뛰어나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따르던 ‘침팬지2’가 늙어 죽는 것을 본다. 다른 침팬지들은 거기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던 반면 ‘침팬지1’은 언젠가는 자신도 그렇게 죽을 거라고 생각하며,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럼 어떻..
“한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을 잠깐 속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 당연해 보이는 말이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에선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사람들, 특히 애국보수세력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판결이 자기 믿음과 다르게 나온다 해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모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씨의 병역비리 의혹이 대표적이다. 주신씨는 허리디스크로 4급 판정을 받았는데, 그 MRI가 가짜라는 게 그들의 주장. 논란이 확산되자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검증을 받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혹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애국보수의 클래스를 살펴보자. 첫째, 그들은 주신씨가 병역면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박 시장의 아버지-박 시장-주신씨 이..
“혹시 기생충 박사님 아니세요?” 지하철에 서 있는데 나이 드신 여성분이 내게 말을 건넨다. TV에서 나를 봤다고 했다. 지금은 이런 것에 제법 익숙해졌지만, 처음 이런 일을 겪을 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날 알아봐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이제 나쁜 짓도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오래 날 지배한 감정은 우쭐함이었다.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살았고, 누군가가 날 모른 체하고 지나가면 속으로 ‘아니 날 몰라보다니!’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존경하는 분과 팟캐스트를 녹음했다. 녹음이 끝나고 같이 밖으로 나갔는데, 길을 가던 몇몇 분들이 날 알아본다. 의아했다. 내 옆에 계신 분은 을 비롯해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내신, 나와는 비..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이하 응팔)이 종영된 날, 모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혜리가 해낼 줄이야! 무시해서 미안해.” 제대로 연기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걸그룹 가수가 인기시리즈의 주인공 역할을 해낼지 걱정했는데, 그게 기우였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이 기록한 20%의 시청률은 공중파에서도 잘 보기 힘든 수치다. 이 드라마에 나온 출연자들의 연기는 다 출중했지만, 극중 주인공 ‘덕선이’를 위해 태어난 듯 보이는 혜리가 아니었던들 이 이렇게 화제가 됐을까 싶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혜리가 천재 바둑기사 최택과 함께 중국에 갔을 때였다. 말이 안 통하는 호텔직원에게 몸짓 발짓을 동원해가며 “방이 너무 추워서 입이 돌아갔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은 나처럼 혜리를 불신했던 모든 사람을 ..
몸이 아파 병원에 온 사람을 의사가 진료한다고 해서 감동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보고 월급을 받으니,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학생이 숙제를 하거나 택시기사가 승객을 안전하게 모시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들은 그 자체로 감동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이 당연한 일을 제대로 못했을 때 처벌이 따르기도 한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감동을 주고 있는 모양이다. 발단은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일을 제쳐두고 무슨 정치개혁을 한다고 할 수가 있겠나?”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잃어버린 시간, 인생을 누가 보상할 수 있겠나?” 얼핏 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올인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 같지만, 놀랍게도 이건 국회한테 한 말이었다. 물론 국회가 일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