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의 자괴감을 높여 주기도 했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준 또 다른 긍정적인 영향은 세월호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꿔줬다는 점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공론화되기 전까지 세월호에 대한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제 그만 좀 우려먹어라, 지겹다. 둘째, 유족들이 돈 더 받으려고 저러는 거다. 셋째, 교통사고인데 무슨 진상규명이 필요하냐. 넷째, 인양하지 마라. 돈 아깝다. 모든 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을 통해 표출되는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정부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공모관계가 밝혀진 이후 세월호는 다시금 조명되기 시작한다. 사건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날,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대통령과 단둘이 만나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창조경제에 대해 30~40분간 대화를 나눴다고 대답했다. 안민석 의원이 말한다. “대통령의 머리로는 창조경제에 대해 30~40분 동안 이야기할 만한 그런 지식이 없으세요. 무슨 얘기 했습니까, 30~40분 동안?” 새누리당은 ‘금도를 넘는 인신공격’이라고 비난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없다시피 했다. 안 의원의 발언에 대부분 동의했기 때문이리라. 대통령이 3차례에 걸친 대국민담화를 하면서 질문을 받지 않은 것,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질의응답을 통해 자신의 지적 수준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
지난 리우올림픽은 박태환에게 기회의 땅이 되지 못했다. 그는 주종목인 400m는 물론이고 200m와 100m에서도 예선 탈락하고 만다. 마지막 남은 1500m는 연습 부족을 이유로 기권했으니, 8명이 오르는 결선에는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채 귀국하는 신세가 된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두 달 앞두고 금지약물인 ‘네비도’를 투여받았고, 이 사실이 적발됨으로써 아시안게임 메달 박탈과 더불어 1년6개월간 국제대회 출전이 금지되는 징계를 당한다. 박태환은 줄곧 “비타민제인 줄 알았다”고 주장하고, 주사를 놔준 의사를 고소까지 하는데, 어려서부터 국제대회를 숱하게 치른,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까지 딴 선수가 네비도가 금지약물임을 몰랐다는 것을 난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박태환은 시종일관 억..
2015년 1월, 임신한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산 뒤 길을 건너던 남자가 뺑소니차에 치여 숨졌다. 소위 ‘크림빵 뺑소니 사건’이다. 범인은 도주했다가 수사망이 좁혀지자 자수했는데, 그는 한사코 ‘사람을 친 것을 몰랐다’라고 주장했다. 술에 너무 취해 정신이 없었다는 게 그의 변명이었다. 사고 직후 그가 골목길에 들어가 한참을 숨어 있었다든지, 정비소에 가는 대신 직접 부품을 구입해 부서진 차를 고치려고 한 일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사람을 쳤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가 시종 ‘몰랐다’라고 주장한 이유는 그편이 뺑소니보다 형량이나 사회적 비난이 작을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최순실 의혹이 불거진 지난 한 달여 동안,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몰랐다”이다. 청와대 경..
최순실도 왔고, 우병우도 왔다. 안종범 수석은 이미 와 있고, 김종 차관은 곧 올 예정이다. 여기서 ‘온다’는 검찰청 기준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꽤 오랜만이다. 원래 친밀한 사이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않고 대포폰으로만 얘기하다보니 얼굴을 까먹은 듯하고, 심지어 “본 적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 지경이란다. 그게 못내 안타까웠는데, 이참에 검찰청서 한데 모여 예전의 친밀함을 확인하길 빈다. 이 자리에 미처 못오신 박대통령이 외롭지 않을까 싶지만, 그분에겐 말 한마디에 죽는 시늉은 너끈히 할 친박들이 건재하니 그래도 견딜 만할 것이다. 뭐든지 분류하려 드는 게 학자의 특징이다. 예컨대 기생충은 크게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분류하고, 보이는 기생충은 또 지렁이처럼 생..
내가 알던 지인이 해발 600m 산 정상에서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3개월 전이었다. 진로 문제로 고민할 때 기생충학을 하면 대박이 난다고 힘을 실어줬던 고마운 친구인지라 한번 가야지 했는데, 시간이 없다 보니 지난 주말에야 그 산에 오를 수 있었다. 힘들게 꼭대기에 오르자 GH상담소라는 간판이 달린 막사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 몇 명이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 문 앞에 조그만 메모가 붙어있다. ‘사정상 폐업합니다. 상담소장 백.’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날 부른다. “서민씨죠? 저희 소장님이 이걸 좀 전해 달라고 해서요.” 내가 올 것을 미리 알았다니, 정말 내공이 출중한 친구구나 했다. 뭔가 더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산 정..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나름대로 소신의 길을 걸어온 정치인이다. 민정당 시절 정치에 입문해 줄곧 보수정당에 몸담은 것도 그렇지만, 호남에 대한 그의 일편단심은 일견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전남 곡성 출신인 그는 1995년 광주 시의원 선거에 나갔다가 낙선한 것을 시작으로 낙선 일변도의 길을 걷는다. 일단 2004년 17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해 낙선한다. 18대 국회에서는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지만, 19대 총선에서 또다시 고배를 마신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남다른 야망이 있는 것 아닌가 의심을 품었다. 민주당으로 부산에서 번번이 낙선하다 결국 뜻을 이룬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지역감정 해소라는 명분을 가지고 계속 도전하는 그에게 유권자들은 마음을 열었고, 결국 ..
지난 9월24일, 국회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170명의 의원이 참석해 160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 결정이 난 못내 아쉽다. 이로 인해 이득을 본 곳이 없기 때문이다. 먼저 대통령을 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극히 당연한 조치였다. 대통령은 평소 국회의 견제를 국가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행위로 간주하고, 지는 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하시는 분이니, 야당한테 끌려다녀선 안된다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그렇긴 해도 대통령은 패자다. 대통령의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불통 대통령’의 이미지가 재확인된 셈이니 말이다. 만일 국회의 결정대로 김 장관을 해임했다면 당장은 체면을 구기겠지만, 대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