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열심히 보는 드라마 는 등을 집필했던 스타 작가 임성한이 ‘방송국을 소재로 한 가족이야기를 그리자’는 것이 기획의도였단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주인공 백야가 자신을 버리고 재가한 어머니에게 복수를 맹세할 때만 해도 기획의도대로 가나 싶었지만, 임성한의 작품들이 다 그렇듯 뒤로 갈수록 내용이 이상해졌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백야의 친구인 ‘육선지’의 존재감이었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여자주인공의 친구는 주인공이 남자한테 배신을 당했을 때 “어쩜 그럴 수 있니?”라며 같이 흥분해 주고, 가끔 되지도 않는 우스갯소리로 억지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이 고작이었지만, 이 드라마는 그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즉 육선지는 회가 거듭될수록 극중 비중이 높아지는데, 지루할 만치 길게 편성된 결혼식 장면도 그랬지..
앨런 배넛이 쓴 는 뒤늦게 책읽기에 재미를 붙인 70세 영국 여왕이 점점 변하는 내용이다. 흔히 변한다고 하면 나빠지는 것을 생각하지만, 여왕의 변신은 그 반대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다보니 현실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게 가능해졌고, 그들이 현재 상황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즉 여왕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책을 많이 읽으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선물이었다. 초반 몇 달을 제외한다면, 사람들은 세월호 유족들을 끊임없이 비난하기 바빴다. 세월호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젊은층으로 짐작되는 누리꾼들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세월호 사건은 놀러가다가 교통사고가 난 것에 불과하..
2044년 4월, 한국 국민들의 눈이 뉴스 화면으로 쏠렸다. 아나운서가 흥분한 목소리로 인양 장면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네, 드디어 선체가 인양되고 있습니다. 오랜 수색에도 찾지 못했던 실종자의 유해가 배 안에 있을지, 또 침몰 원인도 규명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2014년 304명의 희생자를 내며 침몰했던 세월호는 그 뒤 무려 30년간을 차가운 바닷속에 있다가 햇빛을 봤다. “할아버지, 당시엔 인양 기술이 없었나 봐요? 이제야 배를 꺼내는 걸 보면.” 14살 손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줬다. “그렇지 않아. 기술은 충분했단다. 다만 당시 정부가 인양에 적극적이지 않았어.” 손자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아니, 왜요? 배를 꺼내야 사고 원인을 규명하지 않나요?” 손자의 당연한 질문에 ..
얼마 전, 검사 세 명이 사표를 내고 청와대로 갔다. 말이 사표이지, 이들은 청와대 근무가 끝나면 다시 검사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이런 식의 근무형태를 ‘현직 검사의 청와대 파견’이라 부른다.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검사는 범인을 잡아야지, 왜 청와대에 가 있지? 혹시 청와대가 범죄자들의 소굴인가?’ 이렇게 의심하는 것도 일리는 있지만, 청와대가 검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예를 들어 한 검사가 선거 때 국가정보원이 여당에 유리하게 댓글을 단 증거를 포착했다고 치자. 마음먹고 수사하려는데 청와대에 있는 선배 검사가 전화를 한다. “자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제발 날 봐서 수사를 그만둬주게.” 선배를 유난히 따랐던 정 많은 검사는 결국 수사를 포기한다. 검사가 말을 안 듣고,..
책으로 뜨는 게 꿈이었다. 서른 살 무렵부터 유치하기 짝이 없는 책을 주기적으로 냈던 것도 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는데, 문제는 유치해도 너무 유치했다는 데 있었다. 책이 안 팔린 건 당연한 일이었고, TV에 나가 인지도를 얻은 뒤엔 “네가 과거에 낸 책을 가지고 있다”는 협박 전화가 이따금 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 한심한 것은 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려고 교보문고에 죽치면서 사재기를 한 일이었다. 하루에 10권씩, 계산대 여러 곳을 돌면서 어머니와 함께 책을 샀는데, 베스트셀러는커녕 1쇄도 소화하지 못한 채 절판된 책이 대부분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것, 그 후 난 8년간의 글쓰기 지옥훈련에 돌입했고, 결국 과학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쓴다. 이명박 전 ..
주위에 잘나가는 사람(이하 잘난 사람)이 있으면 삶이 편할 것 같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상의하는 건 물론이고, 정 부탁할 게 없더라도 밥 한 끼는 얻어먹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별로 좋을 게 없단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잘난 사람은 너무 바빠서 주위 사람을 챙길 겨를이 없고, 자신에게 부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 일일이 다 들어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뜨더니 변했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TV에 몇 번 나가면서 인지도가 상승하자 삶이 굉장히 바빠졌다. 할 수 없이 그간 나가던 모임들을 정리했다. 그런데 지인들로부터 온갖 청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송국 구경시켜 달라” “컬투 사인 받아 달라” “연예인과 소개팅시켜 달라” 등등. 들어준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