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뒤늦게 한문을 배우려고 전문기관에 응시했다가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공자와 맹자가 내겐 너무 버거운 노인이었다. 임서(臨書)라면 노안 탓이라도 하겠는데, 시험에서의 모자란 실력을 어디에 하소연하랴. 나에게 남은 시간을 고려한다면 이 시험이 마지막일 테니 불합격자의 꼬리를 떼지 못한 채 그곳으로 가야 한다. 우리 사는 세상이 잘 안 되기는 무지 쉽고, 잘되기가 너무나 어려운 곳임을 예전에 알았다지만 야속한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는 건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겠다. 어찌하겠나 ‘아니 불(不)’의 위력을 미처 챙기지 못한 나의 이 불민함. 어쨌든 나중에 호주머니 없는 옷을 걸치고 빈손으로 가야 할 때, 돈은 물론 명예나 위신 따위도 가져갈 수 없음은 나도 안다. 아무리 ‘아니 불’의 행패가 심하다고 하나 그..
오대산 비로봉에서 상왕봉으로 가는 능선은 완만하고 두툼한 산길이었다. 배가 불룩한 황소의 등에라도 올라탄 듯 능청능청 기분 좋은 산행이 이어졌다. 이 높은 지대에 웬 물일까. 대수롭잖게 여겼는데 물기가 촉촉한 곳이면 어김없이 멧돼지의 소행인 듯 흙이 마구 파헤쳐졌다. 단단했던 땅이 깊은 상처를 입고 흙으로 변해 그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검게 번들거리는 흙을 가볍게 한 줌 쥐어 보고 지나쳤는데 꽃동무가 어깨를 툭 치더니 말라가는 풀솜대를 건네주는 게 아닌가. 멧돼지한테 받혀서 뿌리째 뽑힌 것이니 가져가서 한번 키워보시죠! 멧돼지는 무슨 말을 꺼내 놓으려 해도 나오는 건 고함과 신음뿐이다. 그 외마디 신호로 새끼를 키우고 식구들을 인솔하며 살림을 꾸려나간다. 어찌 할 수 없는 멧돼지가 마구 들쑤신 분노의 ..
귀에 대해 궁리해본다. 신체발부 중에서 가장 상부에 속하는 귀는 어쩐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세수할 때도 그것만 쏙 빼놓고 씻지 않는가. 귀는 누가 몰래 내 생각을 한 삽 푹 뜬 뒤 자루만 달랑 빼들고 가버린 것 같기도 하다. 뜨거운 냄비를 들다 앗, 뜨거울 때 찾는 건 귀. 몸에서 손가락보다 더 먼 변방, 가장 추운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노자나 공자를 생각하더라도 그렇게 소홀히 대접해야 할 귀가 아니다. 오대산 오르는 길. 우리 사는 세상 쪽으로 나와 궁금한 눈길로 두리번거리는 야생화들이 많다. 이맘때면 거의 모든 등산로에서 눈 밝은 이들의 발길을 붙드는 건 초롱꽃, 노루오줌. 이름이 좀 사나워도 서슴없이 얼굴을 들이대면 향기 혹은 털이 코를 찌른다. 어느 돌계단 옆에선 그 귀한 청닭의난초..
평창의 발왕산은 만만한 산이 아니다.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가는데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평전이 나온다. 걸음을 조절하여 일행과 뒤떨어져 혼자 있는 풍경을 만들어 본다. 어디선가 새 울음이 들리는 ‘옴방한’ 공간에 나를 밀어넣었다. 아무리 깊숙한 산중이라도 물리의 세계는 변함이 없다. 나무들은 크고 풀들은 작다. 이끼 덮인 돌에 내 그림자가 덮칠 땐 둘이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듯 묘한 느낌을 연출하였다. 아연 숙연한 기분이 들 때 나는 문득 내 나이를 생각하였다. 이건 지난 주말 나에게 틀림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일주일이 어지럽게 흐르고 오늘은 태양이 가장 높다는 하지. 이에 더하여 일식이 일어났다. 태양-달-지구가 나란히 배열하면서 달의 그림자가 지구에 생기고, 이 그림자 안에서 태양이 달에 가려져 보였다..
앗, 쥐오줌이네! 앞장서 가던 일행이 한마디 던졌다. 등산지팡이 끝에 다소곳이 서 있던 꽃은 이제 막 피어나려는 쥐오줌풀이다. 나도 안다. 저 꽃의 활짝 피어난 아름다움을! 그런데 웬 오줌? 몸 안에서야 어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성분이지만 몸 바깥에서야 어디 그런가. 우리나라 식물 이름에 참 사나운 게 많다. 그래도 저 정도면 얌전한 편에 속한다. 식물 이름 입에 넣고 중얼거리자고 했건만 여기에 열거하기가 좀 민망할 만큼 사나운 이름들. 말과 글을 독점하는 인간들의 횡포가 이리도 심하다.톨스토이의 는 원래 베토벤의 작품을 모티브로 쓴 동명의 소설이다. 베토벤이 작곡한 이 바이올린 소나타는 이름에 관해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원래 이 곡은 베토벤이 친구를 위해 작곡하고 둘이서 초연까지 마쳤다고 한다. ..
검은 뿔테 안경을 처음 쓴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참 가소로운 치기였다. 칠판 앞에서 코끝으로 내려온 안경을 검지로 슬쩍 밀어 올릴 땐 텔레비전이 아니라 공부 때문에 눈이 나빠졌다는 은근한 자부가 있었던가. 얼굴에 부착하는 이물질이 안경으로 족하려니 했는데 난데없이 마스크가 들이닥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한번 나빠진 시력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듯 잠깐 쓰고 벗을 마스크가 아니다. 이 얄궂은 물건이 찰거머리같이 오래 들러붙을 것이란 불길한 예감. 이 마스크 한 장의 사회학을 어찌해야 하나.어수선한 나날들 속에 또 하루는 새로 시작된다. 버들개회나무의 개화를 관찰하러 화천 가는 길. 청정한 이 지역에도 현수막이 요란하다. 탐사 계획을 몇 번 미룬 탓에 시기를 놓쳤을까, 불안함을 내내 떨치지 못했다...
어느 스님의 말씀이라고 전해 들은 말. 나이 마흔부터는 항상 보따리 쌀 준비를 하고 살아라. 이는 나를 정확하게 겨냥하는 듯해서 지금도 가슴에 고이 얹어 운반하는 중이다. 한번 꽂히면 그것만 보이듯 학교나 공항에서 가방, 아니 보따리가 유독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산에서 만나는 곤충이나 벌레들은 몸 하나가 그대로 집인데 사람이란 집 말고 따로 보따리를 든 존재가 아닐까.벌써 유월. 그 첫날을 붙잡으려니 올해의 절반을 낭비한 느낌이다. 계절 감각은커녕 코로나19에 짓눌려 언제 여기까지 왔는가 싶기도 하다. 현충일도 묵상할 겸 일요일 오후에 현충원을 거닐었다. 조금 숙연한 기분으로 정처 없이 걷다 보니 호국지장사. 연혁을 보니 현충원의 지장사가 아니라 지장사의 현충원이라 해도 될 만큼 아주 오래된 절이다. ..
불교는 현상인가. 오래전 궁리에서 펴낸 (김우인 엮음)를 초파일에 즈음하여 빼내들었는데 저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그간 지식이란, 접시에 담긴 콩자반처럼 젓가락으로 집어야 내 것이 되었다. 책 몇 권 읽은 게 전부인 불교에 대한 교양도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불교가 현상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관악산은 여러 골짜기를 거느린 큰 산이다. 오래전 한 골짜기를 뻔질나게 드나들었지만 전공과의 불화를 톡톡히 겪으며 얼른 벗어났다. 오늘은 사당역에서 시작해서 옆 골짜기를 오른다. 골목이 끝나고 관음사 일주문에 현수막이 있다. “만유는 인연이고 인과는 현상이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무슨 뜻인지 대강 알아먹겠는 글귀이다. 조금 용감하게 무식에 기댄다면 만유는 현상이라 해도 되겠고, 현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