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굴산, 벼룩콧등, 수도사, 봉황대, 탑바위, 한우산. 관광안내지도에서 처음 보는 저 이름들을 중얼거려본다. 이런 고유명사를 불러주는 게 곧 이 고장을 알아가는 지름길이다. 여기는 의병의 고장인 경남 의령의 충익사 광장이다. 저 낯설고 재미있는 이름 중에서도 ‘함안층 빗방울자국(천연기념물제196호)’이 단연 마음을 끌어당겼다. 세상에, 빗방울 화석이라니! 그 어느 눈 밝은 사람이 공룡의 발자국 옆에서 빗방울을 캐내었단 말인가. 내력은 다음과 같았다. “중생대 백악기의 평원 위에 빗방울이 찍힌 흔적이 굳어진 것으로 (…) 약 1억년 전 건조한 평원 위에 한때 비가 내리면서 진흙 위에 빗방울자국이 찍히고, 그 위에 퇴적물이 덮이면서 굳어져 암석이 된 후에, 위에 덮였던 퇴적암이 오랜 세월의 침식작용에 의해 ..
온몸으로 종을 쳐서 은혜를 갚은 까치의 전설을 접한 이래 치악산은 일찍이 머리에 각인된 산이다. 군대와 친구 등 원주에 관계된 일도 무시로 있어서 자주 기억에 소환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조금 우울한 느낌으로 치악산과 맞닥뜨려야 했다. 사연이 있다. 오래전 회사 야유회를 치악산으로 간 적이 있었다. 산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없었던 터라 어느 중턱에서 그냥 발길을 돌려 닭백숙집으로 직행하고 말았던 것. 까마득히 잊은 줄 알았는데 특히 강원도 쪽으로 산행할 때마다 그 못난 행각이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것이었다. 내 삶이 너덜너덜하다면 바로 이런 사실들이 모여서 그렇게 되는 것. 여러 곡절 끝의 어느 날 오후 두 시. 치악산의 황골을 혼자 오르기 시작했다. 뒤에는 안간힘을 다해 받쳐주는 내 그림자뿐이고..
드넓은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어떤 비상구를 통해 어디로 달아나는가. 지금 산꼭대기에서 사진 찍는 사람은 무한창공으로 떠나는 자신의 모습을 붙드는 중이다. 한 물리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 세상을 때리고 나간 빛은 우주 한구석에 습자지처럼 쌓여 있다고 한다. 그 빛의 끈을 발견하여 가져온다면 지상에서 벌어졌던 일을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실현할 수 없는 건 상상하지도 않는다는 말에 기댄다면 이는 전혀 허무맹랑하지도 않을 일! 감쪽같은 시간에 운반되어 가는 세월이 참 빠르다. 같은 시월에 속하건만 올해 추석도 벌써 까마득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그때의 일은 흐지부지 없었던 일이 되고 마는 것. 재난 탈출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한 영화 와 다큐 의 한 장면이..
산에 간다. 나무를 보다가 나무 너머가, 꽃을 보다가 꽃 너머가 궁금해졌다. 나무를 보는 시선은 나무에서 끝나지 않고 자꾸 옆으로 번진다. 옆에는 나무나 풀을 받쳐주는 것들이 있다. 무정한 바위와 돌들이다. 풀이나 나무처럼 단독자로서 하나하나 제 이름을 갖추지 못했기에 더욱 마음이 간다. 돌은 시간이 압축된 증명사진들 같다. 안동의 암산은 이름이 암시하는 대로 바위가 많을 줄 알았는데 소나무가 더 많았다. 안동답게 훤훤장부 같은 훤칠한 소나무일 줄로 기대했건만 그저 빼빼마른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보고 믿는다 하지만, 본다는 것만큼 위험하고 불안한 감각도 없다. 그저 겉만 보고, 앞만 보고, 일부를 잠깐 볼 수 있을 뿐이다. 두 개나 달려 있긴 하지만 눈이란 본디 그렇게 생겨 먹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바..
오후에서 저녁으로 접어드는 시간은 묘하다. 운 좋으면 귀신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둠은 밤의 나라에서 파견한 스파이처럼 은미하게 포진한다. 저무는 태양은 편평한 땅이 실은 저처럼 둥글다는 사실을 하늘을 배경으로 슬쩍 보여준다. 저 놀라운 변화를 육안으로 목격하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어렵게 산에 가서 논과 습지가 어울린 곳을 훑었다. 이런 순간에는 어디에 눈을 두어도 황홀하다. 고지대의 논에는 벼가 다 익었다. 땀방울처럼 맺힌 이삭은 무거워 고개를 숙이고 점점 휘청거리는 벼의 줄기. 모든 식물은 햇빛을 이용하여 광합성을 한다. 몇몇 예외적인 게 있다. 곤충을 잡아먹어 영양분을 취하는 식충식물도 그중의 하나이다. 차가운 금속성의 물이 번들거리는 습지는 식충식물들이 좋아하는 장소이다. 질컥거리..
오래전, 코미디언 백남봉은 서울의 동네 이름으로 이런 만담 한 자락을 펼쳤다. ‘청량리’ 거쳐 ‘중랑교’로 가는 버스의 차장이 외치는 말은 너무도 빨라서 이렇게 들렸다는 것. “차라리 죽으러 가요.” 아직도 귀에 쟁쟁한 그 음성은 어쩌면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그 고단한 시절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은 한바탕 웃음으로 그냥 넘어가 주었다. 긴 연휴, 짧은 생각. 하루는 늘 하루 만에 오늘 저의 자리를 깔끔하게 비운다. 어느덧 마지막은 오고 두부처럼 네모난 방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한강 근처가 무슨 고원지대도 아닐 텐데 서울로 오는 것을 왜 상경(上京)한다고 할까. 고속도로 사정을 전하는 뉴스를 뒤로하고 서울의 가장 낮은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명절 뒤끝의 허전한 마음도 높은 곳이 아니라 그곳..
나는 거창 출신이다. 빨갛게 익은 거창사과를 옆구리에 붙인 채 달리는 버스를 경부고속도로에서 만나면 힘껏 쫓아간다. 험상궂은 옆차들이 끼어들어 우리 사이를 훼방 놓을 때까지. 작년 봄 거제도로 특산식물을 조사하러 가는 길이었다. 늑골 사이 묵은 먼지를 긁어내는 윤윤석의 아쟁산조가 끝나고 ‘세상의 모든 음악’이 시작될 무렵 인삼랜드 휴게소에 닿았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불에 구운 흰 가래떡을 입에 물고 내 자리를 찾아가는데 방금 도착한 거창여객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같은 햇볕을 쬐고 비슷한 성분의 물을 먹어서인가. 한 골짜기에서 뒹구는 돌멩이처럼 다들 닮은 인상이다. 아버지 모시고 갈 때 인삼랜드, 어머니 업고 갈 때 인삼랜드. 그 언젠가 이 휴게소에서 나만 못 내리는 상황이 오겠지. 그런 날도 가늠..
내 나이 마흔을 칠 때 처음 지리산에 올랐다. 이틀간 산장에서 밥도 먹고 밤도 건너야 했기에 준비물이 상당했다. 취사도구, 쌀, 밑반찬과 더불어 소주와 돼지고기. 우연히 을 들추다가 옛 선비들의 행장을 보았다. 짐꾼이나 하인의 수발에 의지했겠지만 지필묵은 꼭 챙기는 물목이었다. 이후 가파른 나이를 먹어가면서 산의 경사를 받아들이고 나름 즐기는 생활을 꾸려나간다. 산에서 걷고 먹는 것에 더해 보는 것에도 유의하려니 단출한 차림이다. 배낭이 퍽 가뿐해졌다. 근래에는 산에 갈 때 세 권의 고전과 동행한다. . 도무지 모르겠는 그 난해한 내용 중에서 우선 대강의 뜻을 하나 붙잡는다. 중용이 말하는 성(誠)의 개념을 가지고 보면 산이 조금 달리 보인다. 반짝이는 꽃, 일획의 나무, 분주한 곤충. 이들의 어울린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