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너무 작은 꽃. 바라보면 눈이 간질간질해지고 종내에는 그 간지러움이 손으로 전염되는 꽃. 해서 다섯 손가락을 꽃잎인 양 괜히 오므려 보게 하는 꽃. 그리해서 나의 운명이 그려져 있다는 손바닥의 무늬도 한번 보게 하는 꽃. 그것은 산 아래 숲속, 큰 나무의 곁이나 낙엽들 사이에서 피어난다. 부러질 듯 가는 줄기와 좁다란 잎사귀에는 초록이 찰랑찰랑 넘쳐난다. 바닥에서 궁리해도 충분하다는 듯 그저 발등 높이까지밖에 자라지 않는 꽃. 그러니 예전엔 나 같은 자의 발에 얼굴을 더러 밟히기도 했을 것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다 숲으로 산산이 흩어져서 이 꽃들이 되었나. ‘별’자 돌림의 비슷한 형제들이 참 많기도 하다. 개별꽃, 참개별꽃, 큰개별꽃, 가는잎개별꽃, 쇠별꽃, 왕별꽃, 긴잎별꽃, 덩굴..
이태 전, 봄꽃을 마중하러 간 곳은 남양주의 천마산이었다. 산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작정하고 꽃을 보겠다고 산중으로 드는 건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면 이젠 아래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걸음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가는데 시선을 던지는 곳마다 꽃들이 꽂혀 있었다. 산속에는 정말로 꽃이 많이 있었고 저마다의 색깔과 생김새를 뽐냈다. 그동안 이름을 몰라 불러줄 줄을 몰랐으니 나에게는 꽃이 아니었던 꽃들. 공책에 낯선 이름들을 적으며 나아갔다. 계곡 언저리에는 현호색, 바위 틈에는 매화말발도리. 연신 쪼그리고 엎드렸다 일어나며 공책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산의 중턱에 이르렀다. 그저 걷기만 했더라면 허리가 뻐근했을 텐데 공부(!)에 열중하느라 그럴 틈이 없었다. 앞장서 가는 이가 보물이라도 발견한 ..
잘못한 일들이 머릿속에는 늘 차곡차곡 쟁여져 있는가 보다. 간밤의 후회스러운 술자리. 엎질러진 물처럼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얼마나 많이 쏟아냈던가. 아침에 전화벨이 울리면 어제 내뱉은 말들이 되돌아와 추궁하는 것 같아 귀보다 먼저 가슴이 쿵쾅거리기도 한다. 복수초. 야생화 이름 하나 가지고 무슨 거창한 이야기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복수초라는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좋은 뜻을 두고 하필이면 앙갚음이 떠올려지는 건 이처럼 내 마음 한 구석에 켕기는 게 많이 고여 있기 때문이겠다. 꽃이름은 다행스럽게도 복수(福壽). 이른 봄이면 잎보다 먼저 노란 꽃잎이 피는 복수초는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이 땅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복(福)과 수(壽)를 모두에게 공평히 나누어주겠다는 듯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