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촌’의 시골에서 저녁 먹고 방을 뒹굴 때, 밤은 왜 그렇게 길었던가. 그때의 어둠은 또 왜 그리 새까맣던가. 생쌀 먹으면 내 배가 아프단다, 어머니 말씀하셨지만 흔들리는 호롱불 아래 놀다가 몰래 한 줌 씹어먹기도 했다. 어쩌다 비닐장판을 들추어 바짝 마른 호박씨라도 하나 건지면 입이 벌어졌다. 좀체 잠은 아니 오고 까까머리 사촌들과 이런저런 놀이도 시들해질 때 형이 꿀밤 세 대를 걸고 내기를 걸어왔다. 비료포대로 도배한 벽에 쥐들이 부스럭거리는 낮은 천장. 좁아도 몸이 작아서 괜찮은 방의 구석에 짚으로 만든 쌀가마니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어머니의 손때 묻은 콩나무 시루가 서 있었다. 야, 저 시루에 발바닥 둘을 포개면 누가 더 클까? 그야 뭐 재보나마나 시루라고 말했다가 이마를 야무지게 ..
지난겨울,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청계산으로 번개산행을 했다. 약수터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는데 누가 지나가는 바람에 말을 얹었다. 집을 나오기는 싫은데 산에 오면 어쩌면 이리도 좋죠. 눈 속에서는 소리가 더 잘 들린다. 우리 일행은 물론 지나가는 이들도 모두 맞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산은 평범한 말도 이처럼 참 근사하게 만들어준다. 제법 오래전, 꽃에 입문하고 백두산에 간 적이 있었다. 며칠 함께 뒹군 룸메이트가 마지막 밤에 불쑥 물었다. 산을 무어라 생각하세요. 꽃에 한창 꽂혀 있느라 마음도 무척 알록달록했던 시절. 그저 밥상 위에 반찬처럼 내가 찾고자 하는 꽃들이 피어난 장소 이상은 생각하지 못하는 터였다. 겨우 어느 시 구절을 빌려 눈앞의 커다란 삼각형이라고 얼버무리는데 그는 정확한 답을 갖고 있..
지리산 둘레길을 돌 때, 한 폭 끊어 액자로 걸어두고 싶은 풍경 하나가 있었다. 호젓한 길은 길게 이어지고 굽어지며 휘돌아 넘어간다. 길에는 많은 것이 있다. 누가 보낸 풀들이기에 이리도 정교한가. 각자 제자리를 독실하게 지키고 있는 고유명사들, 아직 공부가 턱없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꽃동무들한테 귀동냥 한번 하는 것도 어디인가. 은밀하고 미세한 것들이 마음의 한바탕을 휘젓고 간다. 저마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들로 휘황한 이 광경에도 무시무시한 일은 벌어지고 있다. 산초나무 가지의 거미줄엔 바람을 따라가다 덜컥 걸려든 나비의 흔적만 남았다. 길섶에서 기웃거리는 기름새 줄기마다 끈적한 기름기가 흥건하다. 벼과의 이 상냥한 풀이 식충식물일 리야 없겠지만 모기 뒷다리보다 작은 곤충들이 애꿎게 걸려들었구나. 이런..
하루를 건너는 게 참 아슬아슬하다. 뉴스도 인터넷의 바다에서 돛단배 타고 출렁출렁 돌아다니며 챙겨본다. 홍수처럼 넘실대는 제목 중의 하나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합천에서 떠내려간 소…” 기록적인 장마 뒤끝이기에 무슨 사정인 줄 쉽게 짐작이 갔다. 클릭하는 그 짧은 시간, 말줄임표에 숨어 있는 소의 운명에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다행이다, 합천의 소가 80㎞ 떨어진 밀양에서 무사히 발견되었단다! 합천은 내 고향 거창과 지척이다. 초등학교 3학년, 버스 타고 부산으로 떠날 때 합천과 밀양은 징검다리처럼 거치는 동네였다. 소의 행로난에 내 어린 시절의 부산행과 겹치면서 시골에서 소먹이하던 시절이 소환되었다. 어느 날 느닷없는 소나기에 송아지를 잃어버렸다. 다음날 어미소의 낮은 울음소리를 앞장세우고..
산에서 나무를 만나 이름을 모르면 옹알이하듯 버벅거릴 수밖에 없기에 입이 탄다. 이름에 집착하기에 벌어지는 부작용일 테다. 손잡이가 문은 아니지만 손잡이가 있어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듯, 꽃에 속하는 건 아니지만 이름으로 꽃을 부를 수밖에 없다. 꽃 이름 하나 안다고 그 꽃에게 가닿는 게 절대 아니다. 하지만 꽃의 나라로 입국하려 할 때, 저 이름을 여권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제 광복절 특집으로 방송된 이라는 프로그램을 착잡하고 각별한 느낌으로 또 보았다. “전국의 식물들을 채집하고 채록하는 것들은 그 시대 학자들의 신념이고 저항이고 그분들만의 독립운동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이유미) 우리의 좀 복잡한 심정과는 달리 자고로 이미 어엿하게 독립하..
40이 넘어가면서 들은 말이 몇 개 있다. 그즈음이면 본인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 항상 보따리를 쌀 준비를 하라,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살지 마라는 말 등. 그러고 또 5년이 지나면 ‘귀신이 곁에 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서정주)라는 말도 들었다. 간직하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런 말씀들은 결국 생활의 중심을 가리키는 바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 나름의 낭만을 구가하던 시절만 해도 중심이 있었다. 입시에 내몰린 공부이긴 했지만 수학 시간에 미적분 문제가 나오면 연습장에 x, y축을 긋고 0이라고 원점을 표시했다. 미지수를 찾아가는 그럴 때가 어쩌면 꿈을 좇아 정신을 가다듬으며 중심을 잡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3636, 3학년 6반 36번. 내 마지막 자리였던 고등학교 교실을 떠난 이후 기웃거리고 서..
죽령에서 아득히 꼬부라지는 소백산 등산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날이 갈수록 내 문명의 발상지는 눈도 아니고 손도 아니라 발등에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하늘의 한 귀퉁이에서 출발하는 해를 따라 오늘도 또 걸어보자. 소백산천문대까지 완만한 시멘트 길이 내내 이어졌다. 가랑비가 간간이 흩뿌리는 날씨. 내처 오르기만 한다면 가쁜 숨이 악착같이 들러붙겠지만 서로의 자리를 고유하게 차지하는 꽃들 덕분에 그리 힘들지 않고 발등을 옮긴다. 입구에서부터 자꾸 고개를 숙이라 하는 식물들의 몸짓. 터리풀, 하늘말나리, 기린초, 물레나물, 속단, 참조팝나무, 미역줄나무, 까치수염 등의 꽃들이 계단처럼 도열해 있다. 하나하나 디디며 올라갈 때, 굽이굽이 고갯길마다 천문대에서 마련한 안내판이 있다. 차례로 정리..
그저 넓고 큰 것을 좋아하는 게 세태라지만 산들은 좁은 곳을 지향하면서 하늘이라도 찌를 듯 오르다가 마침내 정상을 완성한다. 그래서 이 높이를 획득하고, 저 깊이를 아래 세상으로 훅 찔러넣는다. 소백산 오르는 길. 죽령-소백산천문대-연화봉-비로봉으로 간다. 그 이름이 대백(大白)이 아니라 소백이어서 크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는 산. 사람들이 태풍을 무서워하고 여름의 더위를 걱정하는 동안 벌써 식물들은 해야 할 일들을 착착 수행하고 있다. 열매는 여지없이 모두 둥글고, 잎은 더욱 둥그렇게 변해간다. 나무의 줄기도 각진 것이 없다. 물론 소백산표 꽃들도 동그랗고 무척 크다. 천문대 곁을 지나가자니 이런저런 둥근 것들과 연결되면서 문득 떠오르는 궁리가 있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무량한 허공을 헤엄쳐 와서 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