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형사정책에 있어서 가장 뜨거운 논쟁은 형사미성년자 ‘나이’의 현실화이다. 과거부터 이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이번 논의는 존재 평면이 다르다. 형사미성년자 나이의 현실화를 국정과제의 하나로 정했기 때문이다. 법무부도 이에 맞추어 형사미성년자 나이 현실화를 논의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속도감 있게 움직이고 있다. 형사미성년자 나이 현실화 논의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모두 경청할 만한 주장들이다. 필자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이 문제는 “지금 발생하고 있는 소년 범죄에 대응하는 ‘절차’와 ‘결과’가 정의에 합치하는가?”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물음에서 시작할 수 있다. 형사미성년자는 ‘형벌’을..
단식투쟁을 마치고 쉬는 중이다. 때 되면 먹고, 낮에는 걷고 밤에는 잔다. 휴가제도라면 남부럽지 않았는데, 이렇게 잘 쉬는 기분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일상을 거들어주는 누군가가 있고, 주위 모두가 회복을 응원한다는 점이 쉼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쉬고 나면 복귀할 자리가 있고 쉬는 동안 소득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은 쉼의 시작일 뿐이었다. ‘아프면 쉴 권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시민사회가 1995년부터 과제로 제시한 상병수당이 2020년 7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포함되었고 오는 7월 시범사업을 앞두고 있다. 상병수당은 일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다쳐서 쉬어야 할 때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감염병의 속성상 ‘아픈 사람이 쉬어야 나/우리가 안전하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최근 몇년 사이 초단시간 노동자 규모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정부와 학계 간 차이가 있으나 154만명에서 185만명이나 된다. 초단시간 노동자 대부분은 여성과 청년 및 고령자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일자리 중 하나다. 서비스산업만이 아니라, 제조업과 건설업 그리고 농림수산업에도 적지 않다. 지난 수십년 동안 정치인들과 경제 관료들의 관심사는 경제대책이었고, 그 방안의 하나로 고용률과 일자리 창출에 관심을 두었다. 통계 속에 숨겨진 초단시간 노동은 관심 밖이었다. 국정과제 목표나 지표에서 고용의 질은 항상 부차적 취급을 받았다. 초단시간 노동자의 절반은 취업규칙도 부재한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1주일에 10시간 전후의 일을 하다 보니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득에도 못 미친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던 때가 2006년 10월9일이었으니 햇수로 16년이 됐다. 이후 다섯 차례 더 핵실험을 했으니 이젠 누가 보더라도 북한은 핵보유국이 됐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일본 나가사키대 핵무기폐기연구센터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40기 핵탄두를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부르는 것은 마치 달 탐사를 달 정복이라 부르는 것처럼 과장된 것으로 여기는 이도 있다. 핵무기 거인들인 러시아(약 6000기)와 미국(약 5500기)과 비교하면 북한은 난쟁이라는 것이다. 북한 핵무기가 ‘납골당’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억견(臆見)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든 안 하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재앙인 까닭이다. 여기에다 김정은 북한..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부제가 붙는 연구 논문의 주제도 유행을 탄다. 저 ‘○○’에 들어가려면 연구자의 관심도도 중요하고 사례가 풍부해 현장 접근도 쉬워야 한다. 사회과학 논문에서 활발하게 다뤄지던 사례가 ‘로컬푸드’ 테마였다. 비슷한 연구방식에 지역만 살짝 바꾼 논문들이 수두룩하다. 논문 검색 포털에 검색어로 ‘로컬푸드’를 넣으면 500편이 넘는 논문이 나온다. 로컬푸드 하면 으레 농협 하나로마트 한편에 설치되어 있는 편백나무 매대를 떠올리지만, 10년 전만 해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사례는 ‘제철꾸러미’ 방식이었다. 로컬푸드 유형 중에서는 직매장에서 판매하는 방식도 있지만, 제철꾸러미는 제철에 나오는 다양한 농산물과 장아찌나 김치와 같은 소박한 가공식품으로 구성해 소비자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
“강남구로 이사 간 후, 가장 기뻤던 일이 뭔지 알아? 집주소를 이야기해야 할 때, 그때가 가장 좋았어.” 서울 강남의 한 연립주택에서 전세 생활을 했던 친구의 말이었다. 뭐, 전세인지 자가인지는 잘 묻지 않으니까 말이다. 1980년대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저층 연립주택이다. 날림으로 대충 지은 집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보통 가격과 수요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수요의 법칙이다. 그런데 가격이 오르면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는 상품도 있다. 베블런 효과다. 1899년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왜 가격이 오르는데, 수요가 증가할까? 흔히 인간의 헛된 허영심이라며 베블런 효과를 격하하곤 한다. 강남 아파트의 가치가 지방 아파트의 가치보다 50배나 높을 리 없다는 것이다. ..
예상대로 대학은 자신이 준 학위가 표절인지 아닌지 여전히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는 세상 다 그런 거지 뭘 그리 까탈스럽게 구냐고 배짱부린다. 어쩌다 운 없이 일찍 표절이 들통난 이는 왜 나만 갖고 그러냐며 학위 반납을 선언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천연덕스럽다. 이쯤 되면 도대체 왜 석·박사 학위를 따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도 대학은 온갖 석·박사 학위 과정을 만들어 수강생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려는 듯 ‘온 나라 학위 따기’가 성행한다. 도대체 왜 이 모양일까?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에 대한 답을 준다. 무엇보다도 대학이 자율적인 학문 영역으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율적인 영역은 기능이 분화하고 전문화된다고 해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
고발과 폭로는 어렵다.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더 어렵다. 그러나 온 사회가 노력한다면 결국 문제는 해결된다. 이달 18일에 넷플릭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n번방 문제가 처음에 어떻게 고발되었고, 그 전모가 어떻게 폭로되었으며, 어떻게 해결될 수 있었나. 영화는 이 질문 흐름을 큰 줄기 삼아 전개된다. 제보가 있었다. 텔레그램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고. 제보를 받은 한겨레신문 기자들은 취재를 시작하고 기사를 냈다. 한국이 이미 ‘성범죄 공화국’이기 때문일까. 큰 반향이 없었다. 이때 시민들이 나섰다. SNS에서 n번방 수사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슈를 띄웠다. 이를 통해 SBS와 JTBC의 시사프로그램 PD들이 n번방 사건을 알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