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전쟁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 보기에 겁나냐고 물어봤더니 의외로 “나면 나는 거죠”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 친구 말로는 별로 놀랄 일이 아니고 자기 삶에 큰 변화가 올 것 같지 않아 감흥이 별로 없다고 했다. 전쟁나면 다 죽는데 그게 왜 큰 변화가 아니냐고 하자 “나만 죽는 게 아니라 다 죽는 거라서…”라는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 학생이 평소에 냉소적인 친구였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수업시간에 발표도 열심히 하고 열정적으로 다른 학생들의 삶에 조언을 하는 친구라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물어봤더니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심드렁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처음에는 전쟁에 대해 너무 현실감이 없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전쟁에 대한 현실감이 문제가 아..
“이젠 콜센터 상담원까지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다니 원….” 한국고용정보 소속이지만 교직원공제회에 파견돼 전화로 보험 판매를 하던 현희숙씨. 그녀가 한국고용정보 대표이사 친인척 특혜 문제를 제기한 뒤인 지난해 8월 회사는 해고 통보를 했다. 너무 억울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지방노동위는 부당해고라며 원직복직 판정을 내렸는데, 불과 몇 개월 뒤 중앙노동위는 이와 180도 다른 결정을 내렸다. 현씨의 업무를 아예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또다시 특수고용 문제로 본 것이다. 콜센터 상담원이 노동자가 아니다? 문제는 한국고용정보와 현씨가 체결한 계약이 ‘위촉계약’이라는 점, 근무 실적에 따라 수당을 지급받아 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현씨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회사에 입사하려면 위촉계약..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앉았다 일어나는 순간 어질해 식은땀이 다 났다. 무력하게 기울어지는 몸. 간신히 벽을 짚고 버텼다. 처음 느끼는 어지럼증이었지만, 미련하게도 하루를 꼬박 더 견디다 결국 병원에 갔다. 뇌경색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다행히 뇌경색은 아니라는 검진 결과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급성 전정신경염이었다.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겨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는 전정신경염. 그런데 급성 전정신경염은 하루이틀이면 회복된다는데, 나는 회복 속도가 더뎌 벌써 2주째 병상에 누워 있다. 일어서 걸으면 어지럽고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속은 메스껍고, 걷는 모습은 마치 좀비처럼 허우적거린다. 그동안 뼈가 부러진 경우는 있었지만, 몸의 중심을 잃어본 적은 처음이라 적잖이 긴장됐다. 겉모습만 보면 환..
전우용 | 역사학자 오래전 를 교재로 삼아 한문을 배울 때 일이다. 학생이 나름대로 해독하면 선생님이 잘못된 부분을 정정해주는 제대로 된 ‘강의’식 수업이었는데, 글을 읽어나가는 도중에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일곱자와 맞닥뜨렸다. 누군가 “공자께서는 괴상한 힘과 어지러운 귀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하자 바로 책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대목은 괴력과 난신이라고 푸는 게 아니야. 괴와 역과 난과 신, 즉 괴이한 것과 힘과 어지러움과 귀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해야지.” 공자가 괴(怪), 난(亂), 신(神)을 부정한 것은 그럴 법했지만, ‘힘’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니, 아무리 선생님 말씀이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힘은 좋은 것 아닌가? ‘힘’을 빼놓고서야 어떻..
정리해고를 당한 이듬해인 2010년, 봄이 막 올 무렵이었다. 회사 앞에 천막을 친 사람들이 가까운 산에 올랐다. 토관에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다. 버려진 강아지들을 외면할 수 없어 데려와 함께 산 지 네 해째. 이제는 듬직한 개가 되었다. 해고된 뒤 마음 상할 일이 많았을 텐데도 순하기만 한 주인들을 지켜보았겠지.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듯이. 경기도 화성시 장안외국인투자전용산업단지에 있는 프랑스계 기업 포레시아 앞, 황량한 벌판 한쪽에 컨테이너와 천막으로 지은 농성장이 있다. 천막 안에서 해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군가 쪼르르 땅바닥에서 바쁘다.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부스럭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짐작은 가지만 무심한 척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마주친 쥐 한 마리. “내 집에 온 넌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