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013년 당시 검찰 고위 인사와 관련된 성 접대 영상이 세상을 어지럽게 했다. 해당 성 접대 영상과 관련된 범죄 혐의에 대해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했다. 당시 영상에 나온 여성이 2014년 검찰 고위 인사를 성폭행 혐의로 다시 고소했지만 검찰은 또 무혐의 처분을 했다. 이 여성은 검찰 불기소 처분이 잘못되었다고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지만 법원도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 6년이 지난 2019년 6월 검찰은 해당 인사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11일 무죄를 확정했다. 이로써 해당 인사와 관련된 모든 혐의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죄, 면소(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에 대해 법원이 하는..
아래쪽 집들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는 걸 보며 대통령은 퇴근했다. 재난은 아래쪽의 문제였을 뿐이다. 침수로 사람이 목숨을 잃은 집 앞에서 반지하 방을 내려다보던 사진만큼 솔직한 고백이 있을까. 그는 아래쪽의 재난을 구경하는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폭우와 함께 재난불평등이 드러나고 있다. 가난할수록 재해에 더 잦게 노출되고 더 크게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은 새롭지 않다.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재난에서 더 취약한 집단이 있다는 사실도 재난 대응 정책의 서두에 곧잘 언급된다. 이번에는 반지하가 주목을 받았다. 그 도시의 시장은 반지하 주택을 없애나가겠다고 했다. 그 나라의 장관은 “그분들은 어디로 가나” 물으며 반지하 거주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아무도 아래쪽 사람들에게 묻지 않았고 듣지 않았다. 재난..
정부가 대형마트 정기 의무휴점 폐지를 추진한다. 뜬금없이 국민청원을 통해 대국민 온라인 투표를 시행했는데 어설프기 짝이 없다. 투표 과정에서 조회 및 투표 수 조작 같은 어뷰징 문제가 확인되었다. 준비 없는 정책 결정과정도 문제고, 국가 정책을 인기투표 하듯 진행하는 것도 문제다. 뭐 하나 제대로 신뢰 없는 발표뿐이다. 20대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에도 없었던 사안이다. 사실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완화는 지난 6월 윤석열 정부의 소통창구 즉, ‘국민 제안’에 접수된 민원 1만2000여건 중에서 선정했다. 그러나 추진과정이나 배경에 의구심이 든다. 제안 내용 설명과 공청회도 없이 추진하고 있다. 논리가 없지는 않다. 소비자 선택이나 온라인 판매 확대에 따른 변화된 환경 논리를 꺼낸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 동..
25,292. 어제 0시 기준 지금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누적 사망자의 숫자이다. 하루 전보다 29명이 증가하였다. 전 세계적으로는 643만8467명이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하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했고, 한 건 한 건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한 풀 꺾인 줄 알았던 이 질병이 변이를 통해 다시 유행하고 있다. 확진자 수는 물론 사망자 수와 위중증자 수가 다시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을 함께 애도하는 것, 위험을 경계하는 것, 헌신하는 이들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어느새 우선순위가 높은 일은 아니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극단적인 고립을 경험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타인의 안부를 챙겼던 그때와 달리..
하루종일 밭을 매고 와서도 꽃에 물을 주는 농촌의 할머니들을 보고 있으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 여성농민에게 식물 기르는 일이 지겹지도 않냐 물었더니 “이쁘잖아. 촌에서 꽃을 볼 일이 없어”라고 알쏭달쏭한 말을 건네신다. 기실 농사라는 것은 꽃과의 싸움이다. 굵고 단단한 소출을 내기 위해서 꽃은 적절하게 쳐내거나 아예 꽃 볼 일이 없도록 하는 것도 농사다. 과수농사에서 꽃을 솎는 적화작업이 일 년의 농사를 결정하듯, 마늘은 아예 꽃대가 올라오지 못하게 끊어버리는 농사다. 봄 한철 맛있게 볶아먹고 장아찌도 담그는 그 마늘종이 마늘 꽃대다. 영양을 마늘로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에 꽃을 길러내는 마늘종은 그냥 둘 수가 없다. 마늘종을 그대로 두면 마늘꽃이 피는데 아기 주먹..
2014년 애슬레틱스와 레드삭스의 경기. 2점 차로 뒤지던 7회 말, 애슬레틱스의 투수 팻 벤디티가 마운드에 올랐다. 강력한 왼손 투구로 타자를 1루수 땅볼로 잡아냈다. 첫 번째 타자는 왼손잡이였다. 그런데 다음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우타자였다. 벤디티는 글러브를 바꿔 끼웠다. 이번엔 오른손 투구였다. 보통 좌투수는 좌타자에게, 우투수는 우타자에게 강하다. 벤디티는 타자에 따라 공 던지는 손을 바꿀 수 있는 양손 투수였다. 재미있게도 레드삭스의 그다음 타자는 블레이크 스와이하트. 그도 역시 좌타석과 우타석에 모두 설 수 있는 양손 타자였다. 하마터면 투수의 글러브 위치에 따라 타자도 좌우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눈치게임이 벌어질 뻔했다. 좁은 식당에서 왼쪽 사람과 연신 팔꿈치가 부딪친다. 나란히 앉아 글..
요즘 모임에 가면 영화 얘기가 반드시 나온다고 한다. “에서부터 알아봤지만, 탕웨이는 정말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이야. 관능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정말 사람 미치게 하네.” “멜로, 스릴러, 미스터리를 솜씨 좋게 버무린 박찬욱의 미학적 미장센은 또 어떻고.”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칸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불륜 미화라는 악플 세례로 극장에서 금방 사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입소문을 타고 다시 불붙는가 싶더니 n차 관람러의 찬탄하는 글이 인터넷 공간에 줄지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보니까 비로소 영화의 아름다움이 보이더라.” 사회학자의 직업병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참혹한 젠더 문화의 질긴 생명력을 보는 것 같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1970년대 말 호스티스..
“임금 4.5% 더 받자고 8100억원대 손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51일 파업투쟁 끝에 지난 22일 임금 4.5% 인상을 골자로 노사 교섭이 타결되자 한 보수경제지가 내건 기사 제목이다. 8100억원은 사측이 주장하는 피해금액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숨이 막혔다. 실질임금을 삭감해 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내몰고 저 손실이 날 때까지 방관한 자들의 책임은 온데간데없이, 사실상 노동조합이 대폭 양보한 결과에 대해서까지 저런 평가라니. 이 나라는 노동자에게 지옥과도 같은 나라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한국에서 파업하는 노동자는 어지간해선 기업과 정부와 보수언론이 촘촘하게 쳐둔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없다. 정규직 노조의 파업은 가장 손쉬운 과녁이다. ‘배부른 귀족노조가 생떼 부린다’고 비난하면 그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