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의 학자 심대윤이 어느 날 아이 종을 데리고 길을 가다가 나라에 공납으로 바치는 말의 행렬을 만났다. 수많은 말들이 내달리는 것을 보고 구경 나온 아이들도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남들이 다 달리는 것을 본 아이 종이 영문도 모른 채 자기도 달려야 하는 줄 알고 냅다 달려가는 것이었다. 심대윤은 인파 속에 아이 종을 잃어버릴까 싶어 일단 뒤를 쫓아 달려갔다. 그 상황에서는 불러 봤자 들리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달려가다가 아이 종이 힘이 다해 지칠 때가 되어서야 불러서 멈춰 세울 수 있었다. 그는 이 일을 기록하고 이렇게 썼다. “안타깝도다! 세상 사람들이 앞다투어 허상을 좇아 달려가는 것이 이 아이 종과 어찌 그리 똑같단 말인가. 그들의 달리는 것을 멈추게 하려면 내가..
오늘 우리는 총명하다는 말을 주로 어린아이에게 사용한다. 심지어 기억력 향상과 두뇌 활성화에 좋다고 하는 총명탕이 수능시험을 앞두고 많이 팔리기도 한다. 국어사전에도 “썩 영리하고 기억력이 좋으며 재주가 있다”고 풀이되어 있다. 그런데 총명(聰明)이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 이 어휘의 첫 출전인 정(鼎) 괘에서의 뜻은 귀와 눈이 밝은 것을 뜻하며, 에 나오는 사광(師曠)의 총과 이루(離婁)의 명은 각각 세상에서 가장 청력과 시력이 좋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청력을 개선시키는 것으로 의사소통뿐 아니라 학습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한의학에서 건망증이나 치매를 치료하는 처방들은 시력과 청력을 강화하는 약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경향신문 2013년 7월10일 한동하, ‘웰빙..
한 고조 유방이 대업을 이룬 직후의 일이다. 여러 장수들이 숙덕거리는 것을 본 고조가 그 이유를 묻자 장량이 말했다. “폐하가 평민에서 천자에 오르셨는데, 오랜 친지들에게만 상을 주고 사적으로 원한이 있는 이들은 벌하고 죽이셨습니다. 그러니 불만과 두려움에 반란을 모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해하며 대책을 묻는 고조에게 장량은, 고조가 가장 미워한다고 모두에게 알려진 사람이 누구인지 묻고, 바로 그 사람을 서둘러 책봉해 주라고 하였다. 고조는 즉각 옹치를 십방후로 책봉하였고, 이를 보고 다들 기뻐하며 말했다. “옹치도 책봉되었으니 우리는 걱정할 게 없겠군.” 미워하는 사람을 요직에 앉힌다는 ‘옹치봉후(雍齒封侯)’ 성어의 유래다. 옹치는 고조와 같은 고을 출신으로서, 별 볼 일 없던 시절의 모습까지 알아..
예전에 비해서 사용 빈도가 낮아진 어휘들이 있다. ‘얌체’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친구 사이에서 “얌체 같다”는 말은 치명적인 욕이었다. 뭘 모르거나 어딘가 모자라는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빤히 알면서 얄밉게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과는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얌체는 본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뜻의 염치(廉恥)에서 왔는데 그 반대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얌체라는 지적이 줄어들게 된 것이, 체면과 명분을 강조하던 시대와 달리 대놓고 자기 이익을 추구해도 큰 흠이 되지 않는 세태의 반영인지도 모르겠다. 은 철거 현장에서 벌어진 공권력의 잘못 및 그 은폐 시도와 싸우는 법정 영화다. 제작 완료 2년 만에야 성사된 상영을 앞두고 김성제 감독은 “법이 무엇인가,..
분노가 가득한 세상이다. 신문기사나 사회관계망에 오른 글들에는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들이 댓글로 달리곤 한다. 영화 이 단숨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데에도 ‘분노의 공감’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현상을 논하는 자리에서 ‘분노 게이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온라인게임에서는 분노 게이지가 전투력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분노 게이지를 높이기 위해 자신을 욕해달라고 주문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장면을 보며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은, 이 사회의 분노 수위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진단 때문이다.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는 말이 있다. 솔개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치며 뛰노는 모습으로 ‘천지자연의 모든 것들이 도에 합당한 자기 자리를 얻은 상태’를 형상화한 말이다. 자신이 뭘 잘하는지 발견해..
중국 당나라 문장가 유종원은 유주사마 맹공을 위한 묘지명에서, “공은 조주를 정벌하는 임무를 수행할 때 보루를 견고하게 세우고 전장에서 죽기를 각오하였다”라고 하였다. 적을 막기 위해 쌓은 구축물을 뜻하는 보루(堡壘)라는 어휘의 출전이다. 전쟁의 양상은 달라졌어도, 마지막 보루를 지켜내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보루라는 말 앞에 ‘최후의’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고, ‘죽음’도 불사한다는 말이 이어지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송나라가 원나라에 의해 패망되던 때, 육수부(陸秀夫)라는 충신은 송나라의 재건을 위해 복주에서 다시 위왕(衛王)을 세우고 보좌하였다. 당시 최후의 보루는 광주만과 남쪽 바다가 만나는 애산(厓山)이었다. 마침내 원나라 군대가 이 보루마저 격파하자, 더 이상 ..
18세기 중국 문인 원매(袁枚)는 유(柔)와 약(弱), 강(剛)과 폭(暴), 검(儉)과 색(嗇), 후(厚)와 혼(昏), 명(明)과 각(刻), 자중(自重)과 자대(自大), 자겸(自謙)과 자천(自賤)을 구분할 줄 알아야 사람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온유함과 나약함, 강직함과 포악함, 절제력과 인색함은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 넉넉하고 남을 편하게 해주는 성격이 좋아 보였는데 막상 함께 일을 하고 보면 너무도 사리 판단에 어두워서 안타까운 사람을 우리는 간혹 본다. 참 똑 부러지고 분명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일에까지 지나치게 각박해서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임을 알고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존감과 교만함, 겸손함과 열등감이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
‘무소불위’라는 말이 있다. 대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한다. 그러나 무소불위는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의 뜻만이 아니라 ‘못 할 일이 없이 다 함’의 뜻도 본디 가지고 있다. 맹자는 “하지 않음이 있어야 함이 있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말을 하였다. ‘무언가 하지 않는 것이 있음’의 반대가 무소불위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것만은 하지 않는다는 ‘지킴’이 있는가의 문제다. 불이익이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하지 않음’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할 줄 모를 때 무슨 일이든 거리낌 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맹자는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사람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고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