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늙은 말이 소금수레를 끌고 태항산을 오르는데, 아무리 안간힘을 써 봐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그때 지나가던 어떤 이가 이 모습을 보고는 다가가서 그 말을 어루만지며 통곡하고 옷을 벗어 걸쳐 주었다. 그러자 늙은 말이 머리를 치켜들고 하늘을 찌를 듯이 슬프게 울부짖었다. 이 말은 본디 천리마인데,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 평생 소금수레만 끌며 늙어간 것이다. 형편없는 몰골을 한 이 말이 천리마인 줄을 알아보고 통곡한 사람은 말을 잘 감별하고 조련하기로 유명했던 백락이었다. 인재는 어느 시대에나 있지만 인재를 알아볼 백락이 없는 것이 불행이라며 인재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거론되곤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장자(莊子)는 이 이야기를 다르게 비튼다.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들판을 마음껏 뛰어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중화의 문명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피 흘리는 전쟁을 멈추게 하였으니 그 누구보다도 인(仁)한 사람이다.” 공자가 이토록 높이 평가한 사람은 바로 관중이다. 주나라 왕의 힘은 약해지고 제후들이 저마다 세력을 키워서 분열과 혼란이 극심해지던 춘추시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제후국들의 질서를 잡고 외세의 침략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제후들을 패자(覇者)라고 부른다.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로 만든 인물이다.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지키게 되고, 먹고 입을 것이 풍족하면 영예와 치욕을 가려서 행동하게 된다”는 자신의 말처럼, 제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관중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백성들이 먹고살 생업과 거처를 마련해주는 일이었다. 공자나 맹자 역시 민..
“과일 먹는 사람은 그 열매 맺은 나무를 생각하고, 물을 마시는 사람은 그 물이 나온 근원을 떠올린다.” 여기서 유래한 ‘음수사원(飮水思源)’은 일상의 사소한 것을 누리면서도 그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말을 백범 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데에는 아마도 이 구절의 원출전인 의 작가 유신(庾信)의 일생에서 느낀 바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망국의 시름을 품고 적국에 사로잡혀 살았던 유신은, 그의 재주를 아낀 적국 왕의 극진한 예우에도 불구하고 28년 동안 조국을 잊지 못하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명편들을 남겼다. 머나먼 중국 땅에서 비장하게 활동하던 백범의 마음 역시 늘 조국에 있었을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시진핑 주석이 백범의 아들 김신 장군이 항저우 인근 방문 때 “음수사..
국기를 흔든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손에 들고 흔드는 국기(國旗)로 오인하는 분은 없겠지만, 국기(國基)인지 국기(國紀)인지를 두고는 생각이 다르거나 뒤섞이는 것 같다. “저출산으로 흔들리는 국기를 강력한 정책으로 바로잡아주길 기대한다”는 22일 더불어민주당의 논평에서는 ‘나라를 이루고 유지하는 기초’라는 의미의 국기(國基)를 사용한 셈이다. 그러면서 “국기를 흔드는 일에 무엇보다 발 빠르게 대처해 온 대통령이 왜 이 문제에는 손을 놓고 있는가”라고 비판하였는데, 이 경우는 원래 국기(國紀), 즉 ‘나라의 기강’을 두고 말한 것이다. 대통령이 국기 문란을 문제 삼은 사안들이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유출, 우병우 비리 의혹 관련 감찰 내용 유출 등 정권의 권위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국기(國基)를..
중국의 모 대학에서 기숙사 냉방시설 설치를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얼음 덩어리를 공급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냉동기술이라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라면 한여름의 얼음 한 덩어리가 주는 시원함이야말로 비길 데가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겨울에 얼음을 떠서 빙고에 보관했다가 한여름에 반포해주는 제도가 왕의 권위와 은혜를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벌빙지가(伐氷之家)’가 권세가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된 것은 국가에서 고위 관료들에게 얼음을 나눠준 오랜 전통에서 유래한다. 한여름에 얼음을 사용하는 것은 그 시절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그러나 이런 여름날의 호사와 함께 떠오르는 장면이 한겨울 얼음 뜨는 현장이다. 서울의 세 빙고에 한 해 보관한 얼음의 양만 해도 20만정에 이르렀다. 이..
어떤 사람이 딸을 시집보내면서 이렇게 가르쳤다. “반드시 남모르게 돈을 모아라. 남의 집 며느리가 되어서 오래 눌러사는 건 행운이고, 대개는 내쫓기게 마련이다.” 딸이 그 말대로 몰래 돈을 모으다가 시어머니에게 들통나서 쫓겨났다. 그런데 딸이 시집갈 때보다 갑절이나 많은 돈을 숨겨가지고 돌아오자, 아버지는 자신의 지혜 덕분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이 이야기를 인용해 두고 한비자(韓非子)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남의 신하가 되어 관직에 나가 있는 자들이 모두 이와 같다.” 남보다 높은 지위에 올라 특별한 대접을 받는 이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직분과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본분은 망각한 채 나라가 망하든 말든 그 지위를 이용해서 자기 배 불리는 데에만 혈안이 된 자들이 너무도 많음을 비판한 것이다. 사적 ..
도둑 부자가 있었다. 아비 도둑의 기술을 열심히 배운 아들 도둑이 다른 도둑들의 칭송에 자신이 최고인 양 우쭐해했다. 아비 도둑은 “아직 멀었다. 스스로 터득한 것이 아니지 않으냐”라고 말했지만 아들 도둑은 건성으로 들어 넘겼다. 어느 날 아비 도둑은 아들 도둑이 보물을 챙기는 동안 창고 문을 밖에서 잠그고 가 버렸다. 갇혀버린 아들 도둑은 쥐가 물건 갉는 소리를 내서 주인이 쥐를 쫓으려 문을 여는 순간을 이용해 빠져나왔고, 돌을 연못에 던져 물에 뛰어든 것으로 위장함으로써 가까스로 도망쳤다. 자신을 원망하는 아들에게 아비 도둑은 말했다. “남에게 배운 기술은 한계가 있지만 마음으로 터득한 것은 무궁하게 응용할 수 있는 법이다. 너를 궁지로 몬 것은 너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였고 너를 함정에 빠뜨린 것..
무왕이 폭군 주왕을 정벌하려고 나서는데 처음 보는 두 사람이 말고삐를 당기며 만류한다. “부친의 장례도 치르기 전에 전쟁을 일으키니 효성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까? 신하로서 군주를 시해하려 하니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무왕의 통치를 거부하고 굶어죽은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다. 고결하게 절의를 지킨 인물의 대명사로 오늘 우리에게까지 잘 알려진 이들이지만, 목숨을 건 전쟁을 치르려 비장하게 출발하는 군대의 입장에서는 권위를 무너뜨리고 사기를 해치는 방해꾼일 뿐이다. 무왕 곁의 군사들이 백이와 숙제를 죽이려 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왕을 보좌하던 강태공이 나서 말리고 보호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허망하게 죽고 말았을 것이며 그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들을 죽여서는 안되는 이유를 강태공은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