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송나라의 어떤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옥을 발견해서 사성 벼슬을 하던 자한에게 바쳤지만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저의 보배이오니 꼭 받아 주십시오”라고 청하는 그 사람에게 자한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옥을 보배로 여기고 나는 받지 않음을 보배로 여기니, 내가 이 옥을 받는다면 우리 둘 다 보배를 잃는 셈 아니겠소?” 재물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참된 보배라는 말이다. 훌륭한 사람의 멋진 말이기는 하지만 세태와는 거리가 너무 먼, 그저 옛날 옛적의 이상적인 관료상일 뿐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재물에 대한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보통 사람들로서는 다음 이야기가 더 와 닿는다. 노나라 정승에 오른 공의휴는 생선을 매우 좋아했다. 이를 안 어떤 손님이 생선을 선물했는데 받지 않았다. 그..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보다도 더 알려지지 않은 나라.” 1929년 헝가리 학자 버라토시가 서문에서 쓴 표현이다. 80여년이 지난 오늘, 한류의 열풍으로 이곳 헝가리에도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려는 열기가 뜨겁다. 머나먼 헝가리 땅에서 유럽 각국의 한국학자들을 초청해 학술대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된 것도, 생각해보면 한류 덕이다. 헝가리 최초 한국학과의 학과장인 엘테대학교 초머 모세 교수에게서 학과 설립과정을 들었다. 1948년 북한과 외교를 수립한 헝가리는 한국전쟁 때 북한 고아들을 초청해 고아원과 초등학교를 설립했다. 이 고아들에 유학생들이 더해져서 헝가리에는 북한공동체가 형성됐다. 이들에게 한국어를 배운 쇠베니는 헝가리 최초의 한국학자가 되었으며, 헝가리어·한국어사전인 웽조사전을 편..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이렇게 시작하는 김민기님의 ‘봉우리’는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등수에 들지 못해 절망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만든 노래라고 알고 있다. 그저 정상의 기쁨만을 바라보며 힘겹게 올랐지만, 막상 오르고 보면 더 높은 봉우리가 이어진다. 높음과 강함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인생에게 이 노래는, 봉우리가 아니라 바다를 말한다.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이 노래를 들으며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올리곤 한다. 물은 높은 데로 오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어, 남들이..
대승(大乘)은 자신만의 깨달음을 구하는 데에서 나아가 더 많은 이들을 구제하는 길로 나서야 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이 말에 ‘적(的)’자를 붙여서 ‘사사로운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라는 의미의 어휘를 만든 것은 일본이다. 한자문화권에서 나름의 출처와 전통이 있는 어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사용하는 것은 문화의 두께를 풍성하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여서 자주 사용하곤 하는 ‘대승적’이라는 말은 전통적 의미와 맥락이 연결되면서 새롭게 담긴 의미도 참 좋은 말이다. 그것을 어느 나라에서 먼저 사용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건은 적절한 사용에 있을 뿐이다. ‘대승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더 약하고 불리한 위치에 있거나 적..
맹자는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지니는 데 있어서 선생님의 장점은 무엇입니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자신은 ‘지언(知言)’ 즉 말을 잘 안다고 대답했다. 맹자가 올바르지 못한 말로 든 것은 편견에 치우친 말, 도를 지나쳐 함부로 내뱉는 말, 사악하고 거짓된 말, 두루뭉술 둘러대는 말이다. 치우친 말은 무언가에 가려진 마음에서, 지나친 말은 어딘가에 빠진 마음에서, 사악한 말은 바른 도리에서 떠나있는 마음에서, 둘러대는 말은 막다른 궁지에 몰린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다. 남의 말을 듣고 그 속에 감춰진 마음을 간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치우친 말이 더 절실하게, 지나친 말이 속 시원하게 들릴 수 있다. 사악한 말이 솔직함으로, 둘러대는 말이 사려 깊음으로 위장되기도 한다. 맹자의 지언은 신비..
홍콩대학이 주최하는 야오종이(饒宗신) 선생 기념 국제학술대회(12월4~7일)에 참가했다. 학술대회의 규모와 내용도 성대했지만, 선생의 100세 생신을 축하하는 수연(壽宴)은 여러 모로 인상 깊은 자리였다. 야오 선생은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화권과 일본, 유럽 등지에서는 살아있는 최고의 석학 가운데 한 분으로 추존되고 있다. 이 노학자의 생신 잔치에 홍콩 정치의 수반인 행정장관을 비롯해서 각계 인사 100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야오 선생의 연구 분야는 문자학, 고고학, 역사, 문학, 서화, 음악 등에 걸쳐 있다. 광범위한 학문 이력이지만, 요컨대 실용과는 거리가 있는 인문학이다. 실리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홍콩에서, 평생을 책 속에 파묻혀 읽고 쓰고 강의한 인문학자 한 사람을 기리기 ..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해서 어찌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많이 알려진 것처럼 한나라 신하 육고(陸賈)가 고조 유방에게 한 말이다. 육고는 고조에게 말할 때마다 번번이 등 성현의 고전을 인용하곤 했다. 인문학적 베이스라고는 거의 없다시피 했던 고조로서는 말끝마다 성현을 들먹이는 육고의 태도가 같잖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이 몸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는데 을 어디에 쓰겠느냐”며 면박을 주었다. 성현의 글 따위가 자신이 맨몸으로 헤쳐온 그 치열한 산전수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은, 고조로서는 경험으로 터득한 진리였다. 그러기에 이렇게 자신에 찬 어투로 육고를 꾸짖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육고는 위의 대답을 시작으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고조의 화를 돋울 만한 말을 쏟아낸다..
까마득한 요순시대 이야기다. 황하의 범람을 다스렸다고 전하는 우(禹)가 어느 날 순(舜) 임금을 모시고 있다가 이런 말을 한다. “임금이 임금 노릇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신하가 신하 노릇하는 것을 어려워해야 바른 정치가 시행되어 백성들이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려워함’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고 지금 하는 일이 완벽할 수 없음을 마음 깊이 알아서 늘 살얼음판을 걷듯이 전전긍긍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성찰하는 자세를 말한다. 우의 이야기를 들은 순 임금은 진심으로 동의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참으로 어렵게 여길 줄 안다면, 훌륭한 건의가 묵살되는 일도, 현명한 인재가 묻혀버리는 일도 없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매사에 어려워할 줄 아는 윗사람이라면 자기주장을 고집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