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지독한 게으름뱅이가 있다. 하도 안 씻어서 머리가 헐고 몸에 부스럼이 나는데도 게을러서 그냥 그렇게 지낸다. 방에서는 앉아 있는 게 귀찮고 길에서는 걸어 다니는 게 귀찮다. 그저 허수아비처럼 두 다리를 쭉 뻗고 멍청히 있을 뿐이다. 이쯤 되면 게으름도 질병 수준인데, 주변에서 아무리 말하고 치료해보려 해도 소용이 없다. 어느 날 그를 고쳐보겠다는 ‘부지런쟁이’가 나타났다. 오랜 공부 끝에 깨달은 바가 있어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백성들을 잘살게 하려고 쉴 틈 없이 일했던 성군들처럼, 만물을 낳고 기르느라 잠시도 쉬지 않는 저 하늘처럼 부지런하게 살아야 마땅하다며 게으름뱅이를 가르치려 들었다. 게으름뱅이는 게을러빠진 눈을 멀겋게 뜨고 이야기를 듣다가 피식 웃고는, 배워..
“제 몸만 생각하는 소인들도 집이 있고 저 형편없는 이들도 녹봉이 있거늘, 복 없는 백성들에게 하늘이 화를 내리네. 부자들이야 어떻게든 괜찮지만 외롭고 곤궁한 이들이 애처롭구나.” 음력 4월에 서리가 내림을 근심하여 지은 ‘시경, 정월’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어려운 시대를 한탄하던 시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이다. 안정된 생활의 터전도 없고 정기적인 보수도 보장되지 않는 이들. 예로부터 재해와 사고는 유독 그런 이들에게 닥치곤 한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19세 청년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정해진 수칙을 지키지 않은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거나 어디서든 있을 수 있는 사고일 뿐이라고 덮어둔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물어야 할 책임..
서쪽 변방의 진(秦)나라가 180여년간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것은 진시황만의 공이 아니다. 그보다 120년 전 상앙(商앙)의 내정 개혁을 통해 강력한 나라로 발돋움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효공이 상앙의 정책에 매우 만족하면서도 반발을 우려하여 선뜻 시행하지 못하자, 상앙이 말했다. “선각자는 원래 세상의 비난을 받게 마련입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결과가 좋으면 모두가 혜택을 누리게 될 테니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상앙이 단행한 개혁의 핵심은, 능력과 실적에 의한 신분 변동, 군사조직과 토지제도의 혁신, 철저한 상벌을 통한 법치의 실현 등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법령을 적용하고 부세를 공평하게 하여 백성에게 신뢰를 주었다...
독일의 축구선수 베켄바워가 한때 세계를 재패했던 것은, 경기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경기의 흐름을 창의적으로 주도했기 때문이다. 수비수이면서 위치에 구애 받지 않고 활약하는 것을 이르는 ‘리베로’가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이제 특정 선수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수시로 위치를 넘나드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현대축구의 추세다. 공자가 말한 ‘군자불기(君子不器)’는 특정한 용도에 국한되는 그릇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나 두루 쓰이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는 분야별 전문성을 간과하고 실용 지식을 천시하는 현상을 낳을 여지도 있다. 막스 베버는 바로 이 점을 동양에서 자본주의가 발달되지 못한 이유의 하나로 들었다. 20세기를 거치며 동양에서도 전문가와 기술자가 각광을 받기는 했지만, 전문성을 바탕..
‘우활(迂闊)하다’는 말이 있다. “사리에 어둡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는 뜻이다. 우활하다는 평을 달고 산 이가 맹자다. 각 나라가 부국강병에 혈안이 되어 있던 전국시대,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묻는 위나라 왕에게 맹자는 대뜸 “왕은 어찌 이로움밖에 모른단 말입니까? 오로지 사랑과 정의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위나라 왕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번번이 전쟁으로 땅을 빼앗겼고 그 와중에 맏아들마저 잃고 말았다. 당장 억울함을 되갚고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한 나라가 필요했다. 그런 왕에게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여 백성들을 감화시키다보면 국익과 병력은 저절로 딸려오게 마련이라고 답했으니, 우활하다는 평을 듣고도 남을 만하다. 맹자의 해법이 과연 당시 상황에서 적절한 것이었는가에 대해서..
춘추시대 제나라의 최저는 자신의 후처를 농락한 장공을 시해하는 난을 일으켰다. 이때 제나라 사관으로 있던 태사 백이 사실 그대로 “최저가 그 주군을 시해했다”고 기록했다. 이를 본 최저는 그를 살해했다. 관례에 따라 그 동생인 태사 중이 사관의 직분을 이어받았는데, 형의 죽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똑같이 기록했다. 그러자 최저는 태사 중도 살해했고, 이어서 사관이 된 태사 숙이 형들과 똑같이 기록하자 그 역시 살해했다. 세 형이 죽어나가는 것을 본 태사 계 역시 사관에 오르자 한 치의 타협도 없이 똑같이 기록했다. 최저는 사관들의 필봉을 한탄하면서도 막내마저 죽이지는 못했다. 사관들이 연이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키려 한 것이 ‘역사는 오로지 사실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원칙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존경하는 벗 홍대용이 죽었다. 박지원은 벗의 죽음을 기리는 비문을 “홍대용이 죽은 지 3일 후, 중국으로 사신 가는 문객이 있었다”라는 건조한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그 인편에 중국에 있는 홍대용의 벗들에게 부고를 전하는 내용과 홍대용이 중국학자들과 각별한 교분을 맺은 사연들로 비문의 대부분을 채웠다. 비문의 목적은 고인을 칭송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필담 몇 번 만에 그의 진가를 알아보고 교유를 지속했음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어떤 칭송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홍대용의 뛰어남을 보여주는 고도의 수사라고 볼 수도 있다. 중국 전역에 홍대용의 부고를 알리고자 한 것 역시, 조선 한 귀퉁이의 비석에 새기는 글만으로는 홍대용을 기억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 비문을 읽는..
“처음 그 한 번! 그게 시작인 거예요. 그렇게 야금야금 돈맛 알아가다 보면 당신같이 되겠지.” 드라마 에서 권력에 빌붙은 선배 경찰의 회유에 맞서 던진 주인공의 일갈이다. 유괴, 연쇄살인 등 실재했던 장기 미결 사건들을 소재로 숨 가쁘게 진행되어 온 이 드라마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종국을 향한다. 10대들의 끔찍한 범죄가 피해자를 나락으로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축소 은폐, 가해자 및 경찰에 의한 인권 침해가 더해지면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그 뒤에는 돈과 권력, 그리고 이기심들이 힘없는 개인을 처참하게 망가뜨린, 드라마보다 훨씬 더 추악한 현실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한비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둑이 조그만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진다”고 하였다. 대수롭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