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마실거리를 찾게 된다. 예전에는 이럴 때 물 한잔을 청하고 권했을 텐데 요즘에는 물 한 ‘병’을 주고받는다. 플라스틱병에 담긴 생수는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었다. 그만큼 폐기물에 대한 고민도 점점 커진다. 에서는 연예인들이 플라스틱 생수병의 대안을 찾는 과정이 그려졌다. 플라스틱에 담긴 생수는 생산과 유통 전 과정에서 수돗물에 비해 온실가스를 700배 이상 배출한다. 무엇보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남긴다. 요즘에는 라벨을 제거하고 깨끗한 생수병을 따로 모으는 분리수거를 유도하고 있지만 그렇게 분리해낸 재생플라스틱으로 만든 폴리섬유는 세탁할 때마다 미세섬유, 즉 미세플라스틱을 뿜어내고 이는 하수구로, 바다로 그냥 흘러간다. 아무리 재활용률을 높인다고 해도 애..
여름 땡볕이 물러간 9월7일, 모종판에 양파 씨앗을 넣고 미리 만들어 둔 산밭에 나란히 놓았다. 모종판이 땅에 고루고루 닿도록 나무판자를 모종판 위에 놓고 자근자근 밟았다. 그리고 50일 동안 양파 모종판에 물을 주었다. 싹이 나기 전까지는 하루에 두 번씩, 싹이 나고 나면 하루에 한 번씩 물을 주었다. 벼농사든 양파농사든 모종을 잘 키우려면 아기 키우듯이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어느덧 양파 모종이 쑥쑥 자라 심을 때가 다가왔다. 해마다 양파 모종 심을 때가 다가오면 앞집에 사시는 하동 아지매(할머니)가 먼저 물어보신다. “이 집에는 양파 모종 언제 심을 끼고. 미리 날을 잡아야 한다이.” “10월27일에 심으려고 합니다. 그날 장대 아지매랑 날짜 비워 두이소. 다른 사람보다 며칠 먼저 심으려고 모종도 ..
매년 이뤄지는 국정감사는 의회가 정부를 감시하는 자리지만, 단순히 정부의 업무에 대한 감찰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 사회가 떠안은 많은 이슈들의 의미와 그 해결방안을 찾아볼 수 있다는 뜻에서도 중요한 자리다. 게임도 대중문화의 반열에 들어서, 자주 국정감사 자리에 불려나오는 테마가 된 지 오래다. 올해 국감에서 특히 주목을 끈 게임 이슈는 장애인 게임 접근성이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와 콘텐츠진흥원에 던진 질의는 디지털 게임 이용이 갈수록 보편화되는 환경 속에서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였고, 주관 부처와 기관은 이 문제제기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답변을 보여주었다.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 이슈는 갑자기 등장했다기보다는 나름 꾸준하게 제기..
나는 안락사에 찬성한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이 나와 몇 마디 나눠보고 안락사를 허용하겠다고 하면 정말 황당할 것이다. ‘왜’를 물으며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게 정치다. 고령화, 끝없는 경쟁, 의료비 부담, 가족주의 등 안락사 희망에는 다른 사회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실타래를 풀지 않고 안락사‘만’ 별다른 제약 없이 허용하면 공동체는 결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윤석열의 공약은 놀랍다. 120시간을 일해야 하느니, 대학에서 무슨 인문학이니 등 그의 말이 어디서 들은 대로 뱉어지는 수준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되어서 하겠다는 다짐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 의견을 취합했다는데, 그걸 어떤 심의도 숙성도 가공도 없이 날것 그대로 정책화한다. 이를 공정이라고 포장하는 나쁜 버릇과..
점심 먹고 산책하던 중이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비명을 질렀다. 새 한 마리가 동료 머리에 똥을 싸고 날아간 것이다. 생애 첫 새똥을 맞아 넋이 나간 동료를 위로하며 편의점에서 급하게 산 물티슈로 맞은 부위를 닦아주었다. 이 사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알리니 ‘복권을 사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었지만 이미 1등 당첨되면 뭘 할 것인지 상상하며 복권을 사고 있었다. 새똥은 동료가 맞았지만 그걸 닦아주는 선행을 했으니 기대해볼 만하지 않은가! 복권을 산 다음날 누리호가 시험 발사됐다. 사무실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심드렁하게 누리호 발사 장면을 보다가 거대한 물체가 하늘로 발사되는 순간, 내 마음도 두둥실 솟아올랐다. 그게 어디로 향하는지 감히 가늠할 수 없지만, 누리..
만물은 변한다. 인간 또한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와 관련된 두 단어 ‘변형’과 ‘변혁’은 받침 하나가 다르다. 어쩌면 말 그대로 ‘한 끗 차이’다. 양자는 변화라는 동일한 방향성 내에서 정도나 양상의 차이를 나타낼 수도 있지만, 표면적 의미의 유사성과 달리 정반대의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즉 변혁이 근본적인 변화를 지향한다면, 변형은 오히려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으려는 욕망과 지향을 지닐 수 있다. 인류세와 자본세라는 새로운 지질학적 명명마저 등장시킨 기후위기의 시대, 한국 사회에서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변화가 추구되고 있다. 5월 말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출범하여 얼마전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발표되었고,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의..
손과 발에 수갑을 채운다. 수갑이 채워진 손발을 다시 밧줄을 사용해 등 뒤로 당겨 묶는다. 서 있는 자세에서는 불가능하다. 얼굴을 바닥에 향하도록 눕혀야 한다. 밧줄로 당겨진 무릎이 하늘로 치켜세워지고, 정강이와 허벅지가 들린다. 활처럼 묶인 몸의 모양이 새우를 닮아서 일명 ‘새우꺾기’라고 불린다고 한다. 바닥에 누워 자세를 따라 해보았다. 손발이 묶여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당장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얼굴로 피가 몰려 머리가 멍해지고 눈이 새빨개졌다. 몇 분 버티지 못했다. 차가운 바닥에 얼굴을 대고 거친 숨을 몰아쉬다 눈물이 났다. 아프기도 했지만,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빼앗긴 굴욕적인 기분이었다. 얼마 전 외국인보호소에서 새우꺾기 고문을 당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는 하루..
당신의 가족은 가사노동을 골고루 나누어 하느냐고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대표적 가사노동인 식사준비, 빨래, 청소를 잘게 쪼개서 다시 묻는다면 그래도 똑같이 대답할 수 있을까? 장을 보고, 냉장고를 청소하고, 남은 식재료 혹은 음식의 재활용 방법을 고민하고, 구매처마다 특가상품을 들여다보고, 구성원들의 건강상태에 따라 음식을 조절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담을 봉투를 사고, 그 쓰레기를 적절하게 내다버리는 일을 표로 만들어보아도 골고루 한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빨래 역시 세탁기 작동 횟수보다 더 넓게 의생활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계절이 바뀔 때 옷장을 뒤집고, 물빨래할 수 없는 옷을 세탁소에 보내고 찾아오고, 나누고 수선하고 버릴 옷을 다 구분해 그에 맞게 처리하고, 옷장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