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열기가 뜨겁다. 지난주 치러진 사전투표 투표율이 36.93%를 기록했다. 사전투표제도가 도입된 2014년 이후 가장 높았다고 한다. 지난 19대 대선 사전투표율(26.06%)과 비교해도 무려 10%포인트 이상 늘었다. 오미크론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에 따라 사람들이 몰리는 선거 당일을 피해 미리 투표소를 찾은 사람이 늘어난 측면도 있겠지만, 추운 날씨에도 일찍부터 투표소 밖으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상기된 표정엔 지난 선거와 다른 긴장감이 팽팽했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선거운동 기간 동안 편 나뉜 민심을 다시 하나로 모으기 위한 현명한 지혜가 필요하다. 투표하기 전 마지막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낸 선거 공보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다양한 후보들의 공약 속에서 이주민·외국인·다문화 관련 정책을 찾아보..
문재인 대통령님, 이렇게 불러보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3월9일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뽑힐 테니까요. 그동안 얼마나 애썼는지요? 머리 숙여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남모르게 흘린 눈물이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그동안 못다 한 일을 하나하나 이루시기 바랍니다. 퇴임 후, 경남 양산으로 돌아가면 그동안 바빠서 하지 못한 텃밭농사부터 해 보시렵니까? 조그만 텃밭에 유기농 거름을 넣고 괭이로 땅을 일구어 상추와 부추 씨앗을 뿌려 보시기 바랍니다. 당근, 쑥갓, 케일, 치커리, 양배추, 청경채, 쌈배추를 좋아하시면 같이 뿌려도 좋습니다. 씨앗이 워낙 작아 장갑을 끼지 마시고 맨손으로 뿌려야 합니다. 모래알보다 작은 씨앗을 손바닥에 가만히 올려놓고, 씨앗이 들려주는 이야..
대학에서 여성학을 강의했던 2008년의 일이다. 페미니즘에 관심 없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새내기들은 ‘잘 몰라요’ 정도로 입장을 드러내던 시절이었다. 싫어도, 최소한 대학 강의실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다. 지금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기초적인 예의가 존재했던 시절이랄까. 그래서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식의 접근도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며 말을 할 수 있었다. 편견을 앞세워 으르렁거리지 말고, 몇 단계만 순리대로 사고를 넓히면 이 표현이 ‘남자인’ 나, 너, 우리라는 개별적 존재를 범죄자 취급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수가 이해했기 때문이다. 잠재적 가해자라는 건 문화, 풍토, 관습이라는 사회구조적 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의 상황을 이해하자는 표현이다. 그러니 사회와 얽혀 있는 ..
또 겨울이다. 또다시 쿠팡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 지난해 12월24일,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일하던 53세 여성노동자가 헛구역질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쓰러진 뒤 50여일이 지난 11일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 동탄물류센터에서는 불과 1년 전에도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만 6명의 노동자가, 배송노동자를 포함해서는 열 번째로 ‘알려진’ 노동자의 죽음이다. 배송 중이던 빌라 계단, 물류센터 화장실, 조리실, 고시원에서, 도로 위에서, 작업장 바닥에서. 노동자들이 쓰러진 죽음의 장소들은 쿠팡식 빠른배송의 회로를 그린다. 물류센터가 더 많이 지어지고, 더 많은 노동자들이 ‘물류노동자’가 될수록 노동자들의 죽음도 앞당겨졌다. 빠름을 내세우는 쿠팡은 정작 노동자들의 죽음을 조사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올해 11월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지난 2일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시리아를 2-0으로 이겨 남은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이어진 10회 연속 본선 진출이다. 이는 국제축구연맹(FIFA) 211개 회원국 중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 5개국밖에 없을 정도로 대기록이라고 한다. 여름밤의 축제로 불리던 월드컵이 올해는 처음으로 겨울에 열린다. 열사(熱砂)의 땅 중동 카타르에서 열리는 까닭이다. 개최국 카타르는 2010년 말부터 약 10년 동안 사막 한복판에 축구장 7개를 만들고, 공항과 고속도로, 호텔을 건설하는 초대형 건설공사..
지난해 11월24일 한국전력의 하청노동자 김다운씨가 일하다 고압선에 감전돼 죽었다. 전기가 혈관을 타고 심장을 관통해 머리에 불이 붙었다. 119 구급대가 도착해서도 활선차가 없어 구조가 지연됐다. 30분 넘게 10m 전신주에 매달려 있던 사진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언론에 공개됐다. 한국전력은 공공기관 최대의 산재다발사업장이다. 하청노동자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안전매뉴얼은 강화되었다. 2인1조 작업, 안전장비 착용, 사전위험성 평가, 작업계획서 등 한전이 마련한 안전장치들은 ‘배전작업 안전작업 수칙’과 같은 수많은 문서에 세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그럼에도 왜 김다운씨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홀로 일하게 되었나? 사고 직후 한전 측은 유가족에게 ‘눈에 뭐가 씌였는지 커버를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됐..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지난해처럼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이웃 마을 청년 농부들과 산타 옷을 입고 산골 아이들을 찾아갔다. 아무 집이나 찾아가는 게 아니다. ‘우리 집에 산타가 와서 아이들을 만나 주고 가면 좋겠다’는 부모들한테 미리 신청서를 받았다. 신청서에는 신청하는 부모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와 방문 요청 시간, 아이 이름과 나이(학년), 받고 싶은 ‘희망 선물’을 적고, 참고로 아이들이 바라는 것과 칭찬할 만한 일을 적으면 된다. 그리고 반드시 신청 사연을 적어야 한다. 가정마다 살아가는 방식과 처지가 다르고 아이들도 저마다 성품이 다르기 때문이다. 올해는 두 조로 나누었다. 나는 청년 농부 수연이와 예슬이, 그리고 숙곰씨랑 한 조가 되었다. 청년 농부들이 ‘희망 선물’을 포장하는 동안..
202×년, 대한민국 최저임금 패러다임이 교체된다. 최저라 할지라도 삶의 존엄성이 무너져선 안 된다는 헌법정신은, “150만원으로도 일하겠다는 걸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냐”는 대통령의 선거 전 주장으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도입된 건, 더 힘들게 살 자유를 보장한다는 ‘최저임금 최저가 경쟁입찰’이었으니 풍경 몇 조각을 보자. 이른 새벽, 인력사무소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오늘만이라도 일용직 노동자가 되길 희망하는 이들이다. 잠시 후 건설현장의 관리자라는 사람이 방문하여 단순직 희망자를 찾는다며 말한다. “자, 최저임금 9160원부터 시작하죠. 네, 9100원 나왔네요. 아, 8500원 손 드셨습니다. 이제 없습니까? 하나, 둘, 아! 7900원? 어? 6900원 나왔습니다. 대박입니다. 마감합니다! 낙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