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이 한 시간에 9160원이다. 하루 8시간 일을 하면 일당으로 7만3280원을 받을 수 있고, 주 40시간씩 한 달 일하면 월급으로 191만4440원을 받게 된다. 그 돈이 다 통장에 찍히는 것이 아니다. 4대 보험과 소득세를 떼면 실제 받는 돈은 172만650원이다. 한 달에 일백칠십이만원. 계산을 해본다. 한 인터넷 구직사이트 설문조사를 보니 직장인 평균적 점심값이 식당 기준 8049원이었다. 사실 요즘 8000원에 식당에서 한 끼 먹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치자. 우리는 사람은 하루에 세끼를 먹는다고 배웠으니 하루 기준 식대가 2만4000원, 한 달(30일)이면 약 72만원이다. 아침을 안 먹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치킨이나 편의점 맥주는 사 먹을 테니 계산하면 ..
누가 제게 ‘산골 농부로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대답은 변함이 없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산골 마을에 들어와 농부로 살고 싶다고 했을 때 빈집을 구해준 사람도, 땅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제게 먹고살아야 한다며 묵은 산밭을 개간해 주고 조건 없이 논을 빌려준 사람도, 지난해 농사를 안 지었으니 먹을 양식이 필요할 거라며 쌀과 콩을 갖다준 사람도, 농사지으려면 거름이 필요하다며 거름을 갖다준 사람도, 옥수수와 땅콩과 상추와 같은 온갖 씨앗을 손에 쥐여주며 심을 때를 가르쳐준 사람도, 풀 매는 시기와 북 주는 시기와 거두는 시기까지 자세히 일러준 사람도, 일손이 모자랄 때마다 자기 일처럼 일손을 거들어준 사람도, 며칠째 몸..
우리말 ‘놀다’에는 놂과 쉼이 함께 들어 있다. 논다와 쉰다가 가지는 이 불명확한 경계는 둘 모두가 노동의 반대편에 서 있기에 비로소 함께 묶일 수 있는 단어가 된다. 노동하지 않는 상황에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놀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휴식이다. 이는 놀이가 독립적이기보다는 노동관계를 이루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쉬지 않고 움직이되, 생산에 관여하지 않는 경우가 놀이다. 지상파 예능 제목으로도 쓰인 “놀면 뭐하니?”를 풀어쓰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느니 뭐라도 만들어보자’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처럼 놀이와 노동이 상반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이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움직임들이 떠오르는 추세다. P2E(Play to Earn), 플레이 투 언이라고 읽는 개념이 대표적이다. 게임 분야에서 최근 등장..
“누가 퀴어 아니랄까 봐….” 우연히 내 글에 관해 비아냥대듯 쓴 코멘트를 봤다. 워낙 ‘무플’에 익숙해서인지 그런 코멘트마저 고맙고 반가웠다. 늘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글을 쓰는 것 같아 고민했는데 내 글이 ‘퀴어’하게 읽혔다니 이보다 더한 칭찬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 코멘트의 의도와는 달리 이 말이 나에게는 꽤 복잡하게 읽혔다. “너 페미야?”라는 질문 앞에서는 늘 망설이게 된다. ‘메갈’로 보일까봐 두려워서라기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 나이브한 페미니스트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퀴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본래는 성소수자나 성적 지향이 다른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로 통용되었지만 요즘에는 보다 포괄적 개념으로 쓰인다. 성소수자가 아니어도 ‘퀴어’일 수 있고,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
청소년들과 이들의 보호자를 상대로 비대면 강연 중이었다. 흐름상 질의응답은 강연 끝에 진행하기로 협의했다. 주제는 인권, 평등 등 꽤나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누군가는 이를 낯설게 받아들이면서 짜증을 감추지 않는다. 불쑥 들어오는 아무개의 이야기를 막을 순 없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왜 학생들 앞에서 동성애를 선동해요?” 나는 동성혼이 세계 곳곳에서 인정받고 있는 건 결혼의 기본값을 이성끼리의 결합‘만’으로 고정시킬 수 없다는 신호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성애자들은 이성애자 만나서 이러쿵저러쿵 원래대로 살면 된다. 선동은, “소수자의 인권이 국민 다수의 인권보다 우선시될 수 없다”는 궤변과 괴담 속에 있다. 누군가가 차별받지 않을 변화가, 누군가를 예전처럼 차별할 수 없다는 이유와 함께 저울추에 올라갈 순..
지난달,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판결문의 인터넷 열람제공 제도개선’을 사법부에 제안했다. 제안의 주요 내용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판결문의 확대 개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유사 사건 확인을 통해 불필요한 소송을 줄여 국민의 편익을 증진하고, 국민에 의한 적절한 감시가 가능하도록 하며, 전관예우 관행을 해소하여 사법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법조계는 판결문 확대 개방에 신중한 입장이다. 개인정보 등에 대한 유출 및 악용 우려가 있고, 변호사가 해야 하는 법률 사무를 인공지능이 법·제도를 교묘히 빠져나가 분석·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당사자의 내밀한 사실관계가 담긴 판결문 공개는 당사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지난달 26일 노태우가 사망했다. 많은 이들이 10월26일이라는 날짜의 공교로움을 이야기했다. 한국 사회 군사독재의 문을 연 자와 닫은 자가 그처럼 같은 날 죽어간 것에 대해. 날짜가 공교로웠다면, 그가 떠나가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했다. 독재자의 딸을 하야시킨 촛불시민의 힘에 기대 출범한 정권이, 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한 국가내란 수괴의 명복을 빌며 국가장으로 예우해 떠나보내다니. 이걸 어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여러 날 가끔 생각해보았다. 10월26일 죽어간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중증장애여성 활동가 김주영. 9년 전 그날, 그녀는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후 발생한 원인 모를 화재에 목숨을 잃었다. 터치펜을 입에 물어 직접 119에 신고했고, 소방차는 5분 만에 도착했으며, 그녀가 숨진 자리에서..
긴 터널 끝에 조금씩 빛이 보이는 기분이다. 지난 2년 동안 전 세계를 휩쓸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이 점차 관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코로나19와 공존을 선택한 나라도 늘어나고 있다. 백신 접종률이 70%를 넘어선 우리나라도 지난 13일 ‘일상회복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지난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 지침을 시작했다. 정부의 외국인정책도 빠르게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주 코로나19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정부는 11월 말부터 비전문취업(E-9)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을 정상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해외입국자로 인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내로 입국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국가와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비교하여 입국하는 인원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