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운이 좋으면 고수, 스승을 만나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는 라는 소설에서, 여행길에 만난 스승 셋을 소개하고 있다. “첫번째 스승은 도둑이었죠. 집에 들어가려는데 열쇠를 잃어버렸지 뭐요. 마침 길 지나던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눈 깜짝할 새 문을 따는 재주를 지녔더군. 직업이 뭐냐 물으니 도둑이랍디다. 그는 날마다 실패하고 또 내일 또다시 도전한다고 했소. 두번째 스승은 개였죠. 목마른 개가 강물에 다가왔는데, 자기 그림자를 보고 무서워 뒷걸음쳤다오. 결국 개는 목마름을 참기 어렵자 정면 돌파를 결심, 강물에 뛰어들었죠. 순간 그림자는 사라지고 말았죠. 세번째 스승은 어린아이라오. 촛불을 들고 오길래 그 불 어디에서 났는지 물었지. 그러자 아이가 양초를 콧바람으로 훅 꺼버렸소. 여기 방금 ..
‘무사 앗사리드’라는 사하라 사막의 청년. 프랑스 고속기차 테제베를 탄 후일담, 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버지의 단봉낙타보다 천배는 빠르고 백마리 낙타가 늘어선 카라반만큼이나 길다. 엄청난 속도 때문에 눈앞에 어떤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현기증이 일고 심장은 더 세게 고동쳤다. 시간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더 이상 거리를 감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내 낙타들과 사막의 침묵 한가운데 누리는 낙타들의 평화롭고 느긋한 리듬으로부터 나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열차 승객들의 조용하고도 태연한 모습이 놀라웠다.”빠른 강물에 빠지면 살아남기 어렵다. 문명조차도 날름 집어삼킨다. 속도 빠른 시대에 살면 제아무리 영웅이라도 이름 없이 사라진다. 역사는 역시 ‘느린 강’에서 비롯된다. 느린 강을 따..
조운파 가사에 길옥윤 작곡의 ‘순례자’라는 찬불가가 있다. 찬송가가 아니라 찬불가. 가깝게 지내는 운문사 승가대의 학장 진광 스님이 처음 이 노랠 가르쳐주었다. 그때 후배 여가수도 옆에서 따라 배워 불렀는데, 녹음실에서 녹음까지 해둔 기억. 내가 배운 첫번째이자 현재까진 마지막 찬불가. “당신은 꿈 찾는 방랑자. 마음의 길 가는 나그네. 인생도 사랑도 끝이 없는 길. 멀고 먼 고행길. 꿈꾸는 바다에 별 뜨면 불타는 사막도 잠들고 외로운 순례자, 거친 산길에 단풍이 깊어가네. 외로운 들판에 무명초. 잊혀진 하늘가 뜬 구름. 별이여 달이여 어린 잎새여. 내 너를 사랑하리. 내 너를 사랑하리.”뒷산에 놀러갔다가 어제 내린 장대비로 퉁퉁 분 개울물이 급히 달음질쳐 내려가는 소리. 찢기고 떨어진 어린 잎새들이 흘..
우리가 쓰는 말을 ‘모국어’라 한다. 아버지의 말 부국어가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배운 말 모국어라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가 뭔 쓰잘데없는 말을 하려고 하면 어머니가 무안을 주면서 입을 딱 다물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머니가 이기고 산다. 아버지가 이기고 사는 집은 희귀하다. 집에서 이기지 못해 밖에 나가 억지 대장노릇을 하려 들면 부작용이 생긴다. 지고 사는 게 안에서나 밖에서나 현명한 처세일 텐데. 수가 많다는 말을 경상도 사람들은 ‘쎄삐릿다, 억수로 많다, 항 거석 있다, 수두룩 빽빽하다, 천지삐까리 많다’고 한다. 전라도 사람들은 ‘솔찬하다, 겁나다, 허벌나다, 오살나게 쎄뿌렀다, 시꺼멓다’ 그런다. 오월 하루, 역사의 현장 광주에 시민들이 많이 모였다. 내가 관장으로 있는 메이홀..
서울사람들은 입마개 마스크를 달고 다니며 입 냄새를 즐기는 묘한 취향들을 갖고 있다. 차라리 매연과 먼지가 입 냄새보단 나을 거 같은데. 조그맣지도 않고 얼굴을 다 가리는 마스크는 가면 수준. 시골에선 마스크를 구경하기 어렵다. 혹시 올빼미를 보면 복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군. 검은 주둥이를 가진 똥개도 동네를 어슬렁거리기도 해. 복면 도둑을 잡자는 것이지 검정 마스크를 쓴 날강도는 아님이렷다.의사 샘들이 마스크를 쓰고 수술을 하는 이유는 혹시 잘못되어도 담당 의사가 누구인지 모르게 하려고 그러는지도 모르겠어. 힛~. 아무튼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늘자 올빼미도 움쩍 뒷발질을 하게 된다.입을 가리면 표정을 알 수 없지. 한 항공회사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내건 구호가 “노 스마일!” ‘웃지 ..
한수 샘, 다음엔 합수 샘 이런 ‘히읗 자’ 연락처가 내게 있다. 한수 형은 가수 정태춘 형. 내 산골짝 집에 몇차례 오시기도 했다. 다음에 윤한봉, 합수 샘은 고향 선배다. 오월 광주의 미국 망명자. 돌아가신 뒤 기념사업회가 전남대학교 앞 공간에 같이 둥지를 튼 일도 있었다. 귀천하신 뒤에도 이름을 감히 지우지 못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인단체 초대로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나그네 망명자 합수 형이 그곳에서 허리띠도 풀지 않은 채 눕고, 침대가 아닌 바닥에 이불 깔고 자면서 오월 동지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전하며 지냈다는 이야기는 감동이었다.망명자의 노래 같은 신산한 노래를 들었다. 정태춘 신보에 담긴 ‘나그네’와 ‘빈산’. 먼 오랜 날 ‘탁발승의 새벽노래’가 스멀거렸다. “승냥이 울음 따라, 따라 ..
살고 있는 동네가 대나무로 유명한 고장이라 가끔 축제 때 판다 분장을 보게 된다. 어린 대나무 잎사귀를 입에 달고 사는 판다. 대숲에서 판다가 굴러떨어질 거 같다. 주민들만 해도 중국 구경을 안 해본 분이 없을 정도. 회갑 때도 가고 칠순 때도 간다. 누구 집 노총각 아들은 중국 동포랑 가약을 맺었는데, 친정 식구들이 건너와 농사일을 거들어 살림이 폈다.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갈 필요가 없는 게 그런 모양으로다가 반은 한국식, 반은 중국식으로 살아가는 집들이 있다. 이곳 외딴 데까지 배달음식은 오로지 중국요리뿐. 누가 중국 댕겨왔다며 백주 한 병 들고 오면 요리 하나를 시켜서 나눠 마신다. 조금만 마셔도 판다처럼 방구석을 뒹굴게 된다. 어려서 성룡의 취권 흉내를 내고 놀았지. 동네 아재들 중에 이미 취권을..
차단을 해도 자꾸 걸려오는 전화 가운데 주택에 태양광을 설치하라는 소리. 시골에 산다고 다짜고짜 노인 취급을 한다. 아버니임~으로부터 시작되는 코맹맹이 소리. 죄송합니다, 라고 전화를 서둘러 끊으면 재차 또 걸려오곤 한다. 짜증이 욱 올라온다. 태양광 소리만 들어도 이젠 뒷골이 땅길 지경이다. 탈곡기를 사라는 전화도 온다. 마을 전화부를 어떻게 알고 이런 전화를 다 하나 싶다. 손전화기로 걸려오는 보이스 피싱도 두어 번 받아보았다. 귀하의 은행정보가 털렸다고 하길래 은행에 저축한 돈이 없는데 괜찮다고 했더니 딱 끊는다. 좀 더 전화를 해도 되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 언젠가는 대출을 해준대서 이미 콩팥 장기까지 팔았다고 했더니 딸칵 끊더라. 대학생인 아들이랑 통화를 하다보면 ‘이 녀석이 요새 돈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