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주 시골구석 ‘울루루’를 거쳐 ‘카타추타’에 왔다. 공부는 실수를 낳지만 찍기는 기적을 낳지. 찍기 식으로 길을 찾으면 백발백중 제대로다. 신기를 받아야 해. 바람이 나를 데리고 왔다는 말도 틀린 말 아니렷다. 카타추타란 여기 원주민 애버리지니 말로 ‘많은 머리들’이란 뜻. 산봉우리가 우쑥부쑥 여러 사람 머리처럼 솟구쳤다. 바람의 계곡에 서니 정말 바람이 설설 불었다. 창문을 뜻하는 윈도(Window)는 바람의 눈이라는 뜻. 바람(Wind)의 눈(Eye)이란 북유럽어 ‘빈드르(Vindr)’와 ‘아우가(Auga)’, 이 두 단어가 합쳐진 말. 노르웨이 목수들이 통나무집을 지을 때 환기를 위해 지붕에다가 구멍을 뚫었단다. 바람이 불면 그 구멍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어. 이 구멍을 가리켜 ‘바람의 눈’ ..
벼농사 마친 들판에 덩그러니 남은 볏짚은 숨바꼭질하기 좋은 장소다. 싹둑 잘린 볏논의 가지런한 빈터에서들 손야구를 즐겼는데, 고무공을 던지면 주먹으로 치는 야구였다. 공이 가볍다보니 투수는 바나나킥 못지않은 마구를 던질 수 있었지. 맨 바람에 볼이 빨개지도록 들에서 놀곤 했다. 그럼 볏짚을 둘러쳐 뚝딱 바람막이 ‘벽집’을 지었다. 볏짚을 태워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했다. 산으로 가면 숨을 만한 곳을 찾아 나뭇가지로 지붕을 엮고 비닐을 덮고, 낙엽을 주워 바닥을 깔았다. 두셋이 들어가면 무릎이 닿았는데 친구들과 지은 첫번째 집이었다. 모험심 강한 아이들은 저마다 비밀기지를 하나씩 두었다. 나는 예배당 뒤에 세례식을 베푸는 시멘트 욕조가 있었는데, 그곳에다 대나무를 썰어다가 엮고 지붕을 만들어 비밀기지로 썼다..
어디는 얼음이 얼었단 소식도 들린다. 유리창에 손을 대면 뽀드득 소리가 나. 뽀드득 소리란 말에 생각나는 얘기가 하나 있다. 택시 합승을 한 아가씨와 할머니. 아가씨가 방귀가 급해 창문에 대고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무사히 실례를 했어. 그런데 할머니가 아가씨를 급 째려봤대. “소리는 잘 처리했는가 몰르겄지만서두 이 냄새는 우짤거여.” 뽀드득 뽀드득…. 들킬 수밖에 없는 냄새. 알츠하이머에 걸려 법정에 출두하지 못한다고 해놓고서 골프장에 간 전모씨. 측근의 변명에 의하면, 골프장을 나오는 순간 자기가 골프를 쳤는지 안 쳤는지 기억을 못한다고 한다. 우와,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지존급. 냄새가 너무 나지만 민주주의 아버지시라는데 어쩌랴. 그이에 비하면 새발에 피지만 나도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었다. 감퇴란 어..
갈색 낙엽이 낙하 중이다. 이런 날엔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을 큰 볼륨으로 듣고 싶어라. 낙엽은 푸른 잎사귀의 죽음. 낙엽을 한 잎 주워 책갈피에 꽂아둔다. 최인호 샘의 글에서 본 기억. 봉쇄 수도원 트리피스에선 단 한마디 말만 할 수 있단다. “형제님. 죽음을 기억합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책갈피 낙엽에 적어두고 싶다. 죽음으로 멈춘 기억들은 남은 자의 몫이겠다.오래전 월간 ‘샘터’에 몇 해 연재를 했었다. 그때 뵈온 동화작가 정채봉, 소설가 최인호, 영문학자 장영희, 사진작가 최민식, 수필가 피천득, 그리고 법정 스님과 류시화 시인까지 모두 시절 인연들이다. 가끔 엽서를 주고받았던 이해인 수녀님도 월간지 인연. 출판사 샘터에서 부탁해와 아포리즘 같은 책..
수능이 다가오는지 아침저녁 쌀쌀함이 배나 더하다. 밤새 내린 이슬로 아침 마당이 촉촉하다. 뽀글이 점퍼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만날 찾아 입게 된다. 아이들아! 대학에 합격하려면 ‘재수 없는 꿈’을 꾸면 된단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야 또 많단다. 입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야무지게 책상에 달라붙어 책을 읽곤 한다. 그러다보면 하루가 금세 휙 지나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깐. 가르치는 일보다 배우는 일이 훨씬 즐겁다. 매주 설교를 하는 목사가 아니라서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하다. 입으로 뱉은 말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자유란 그래 말을 앞세우지 않고 몸으로 먼저 살 때 차오르는 기쁨이 맞다. “울안의 닭은 배불러도 솥 안에 삶아지고, 들판의 학은 배고파도 천지가..
인간은 참 간사해서 언제 더웠는지 기억조차 없다. 더위를 정녕 ‘보’내기 싫으면 가위와 바위를 내면 돼. 훗~. 어디를 쳐다보나 가을가을 한다. 은행잎은 노란리본을 흔들기 시작. 자연은 제 목소리를 분명히 낸다. 입이 달린 모든 생명은 제 소리를 내고 산다. “우리 시대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이 내뱉는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을 기억한다. 거친 아우성이나 침묵은 가을의 진중하면서도 분명한 표현력과는 딴판. 인간은 자연에게서 배울 게 많다.올 들어 처음 군불을 때고 누웠다. 따뜻하니 좋구나. 좋을 일도 참 많다고 그러시겠다. 무엇보다 손발이 따뜻한 게 참 좋아. 나는 얼음송송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아’는 잘 안 마신다. 한여름에..
어디 강의하러 간 김에 친구 얼굴 한번 보려고 방문했는데, 바쁜 일처리로 볼이 빨개 있었다. 같이들 마시라며 커피를 사서 넣어주고 뒤돌아섰다. 나는 다음 역까지 한참이나 걸었다. 영혼보다 빨리 달려가는 바쁜 몸들,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량들. 내뿜는 한숨과 매연에 얼른 이 산골로 돌아오고 싶었다.구절초가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연보라 꽃송이에 꿀벌들이 달라붙어 쪽쪽대는 소리가 요란도 하지. 10월은 구근 식물 옮겨심기에 적기다. 젖먹이들을 물어 옮기는 어미 개나 고양이처럼 여러해살이식물들을 옮기고 새 보금자리를 지정해준다. 후일에도 내 정원은 꽃과 여러 식물들로 나와 손님들을 기쁘게 맞아줄 것이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고 소중히 달라붙어 안전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곳. 정신 차리기에 좋은 곳을 사람도..
아빠랑 엄마랑 하는 말을 엿들은 유치원생 꼬마. “아빠는 내가 무슨 반인지도 몰라. 근심반 걱정반 아니라고요. 나 달님반인데 나한텐 관심도 없어요. 우우~” 귀여미 꼬맹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마음 편할 날 없지. 이게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걱정보따리는 배나 더 클 뿐. 가을이 되면 시인들은 부쩍 ‘센치’해져서 슬픈 시들을 낳고는 한다. 시도 이를테면 시인에게는 자식이나 마찬가지. 자기 시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걱정만 한가득이다. “헤아릴 수 없는 절망, 불만, 환멸을 겪어야 나오는 것이 한 줌의 좋은 시. 시는 말이지 아무나 쓰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나 읽는 것도 아니라네.”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에 담긴 ‘시’라는 시가 시답잖은 내 시를 쏘아본다. 솔직하고 담백한 시집을 읽다보면 주눅이 든다. 시 ..